[단독] 교보문고, '노조 문구 조끼' 입은 노동자에 "가려달라"

교보문고 "직원 개인 판단, 재발 방지하겠다"…노조 "결국 기업의 책임"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경비직원이 서점에 입장하려는 조선하청 노조 조합원에게 조끼에 붙은 선전물을 가리라고 안내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교보문고는 "직원의 개인적 판단"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노조에서는 내부 방침이나 교육을 통해 이런 일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업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노조할 권리가 헌법적 권리라는 점을 간과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X(옛 트위터) 이용자 A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계정에 "거통고 동지와 어제(지난 10일) 교보문고에 갔다. 교보문고에 들어가자마자 '조끼나 뒤에 붙은 멘트를 가리거나 떼라'고 했다. 노동자는 책도 못 읽나"라는 글을 올렸다. '거통고 동지'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 박태준 씨로, 박 씨는 서점 출입 당시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상용직 고용 확대" 등 노조 요구사항이 적힌 선전물이 부착된 조끼를 입고 있었다.

A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평소 광화문에 정치적 피켓을 들고 계신 분이 정말 많고, 저도 피켓을 들고 서점에 간 적이 있는데 (직원이) 잡은 적이 없다"며 "노조 조끼만 잡은 것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인 박 씨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입구 들어갈 때 경비로 보이는 분이 와서 '(조끼) 뒤의 문구 좀 안 보이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X 이용자 B씨는 11일 교보문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접 항의 의사를 전달하고, 민원 처리 경과를 자신의 계정을 통해 알렸다.

B씨는 고객센터에 "교보문고의 창립이념이 '누구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인데, 해당 경비직원의 행동이 이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하며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다만 해당 경비직원에게 일신상 불이익이 가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이에 교보문고 측은 12일 박 씨와 민원을 제기한 B씨 등에게 따로 보낸 답변에서 "확인된 바로는, (해당 경비직원이) 특정 고객님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보호자 동반의 어린이들이 혹여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판단하고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에서 해당 직원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이러한 조치는 당사의 기본 원칙인 '열린 공간'이라는 가치에 어긋나며, 특정 의류나 문구를 이유로 고객을 제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이어 "고객님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다시금 사과드리며, 이번 일을 사례로 삼아 향후 이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통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경비직원도 회사 방침에 따라 일을 할 것이고, 평소 이런 경우에 대한 교육은 없었을 것"이라며 "개인의 일탈만으로 보기는 힘들고 결국 기업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상화 된 노조 혐오와 이 사건 간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본다. 노동조합을 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것인데, 결국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기업이 노조에 적대적 태도를 취해 노조 혐오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데 대해 "특히 기업이 그러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 기업이 민주주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 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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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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