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차기 대선의 화두가 되어야 할까

[시민건강논평] 체제전환이 대선의 화두가 되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 준비가 본격화된 모양새다. 대선은 다양한 사회적 열망이 표출되고 경합하는 정치적 장이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12.3 내란 사태 이후 지난 두 달 간 탄핵 광장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 안는 선거여야 한다.

그럼 무엇이 대선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 내란세력 심판과 헌정질서 회복이 시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나 이것이 전부일 수 없다. 내란 사태 이전부터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수많은 불안정 노동자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농민 등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편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은 각종 차별과 배제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모두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가 대선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거대양당은 그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에 매몰된 채 광장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주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민주당이 중도층 표심을 잡는다며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제 특례법 도입과 상속세 감면 등 경제 정책의 우클릭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경제성장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일테다.

벌써 건설업과 조선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사업성 악화'와 '미래 먹거리' 등을 이유로 특례 적용을 국회에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장시간 근무체제로 회귀하려는 것 역시 역사적 반동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이 헤게모니가 분명히 예전보다 약화되었고 또 갈수록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정부들의 경험을 통해 낙수효과란 허상에 불과하며 이러한 국정 기조와 정책 방향이 소수의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할 뿐이라는 사실을 점차 많은 시민들이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류 정치세력과 언론은 대중이 성장을 바란다고, 예컨대 주식이 오르고 집값이 뛰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벗어나는 것, 이 냉혹한 각자도생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전과 대안을 기성 정치권이 내놓지 못한다면 정치적 민주주의 역시 갈수록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극우 세력이 준동하는 배경에는 바로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 체제에서 밀려나고 뒤쳐진 이들은 권력 약자인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혐오하고 차별, 억압하도록 조장하는 극우 정치에 포섭될 위험이 크다. 제2의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평등 해소를 통해 극우 대중운동이 증식하는 토양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불평등 심화의 근본 원인은 자본 축적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지역소멸' 위기나 기후 위기, 돌봄 위기 등 여러 구조적 위기들도 이러한 체제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는 다중 위기의 공통 원인인 체제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까지 탈성장이나 체제전환 담론이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통상적이고 단편적인 정책 접근만으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과 감각만큼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중이다.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위기의 순간이 바로 새로운 전환의 시작점일 수 있다. 이 일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이 1년 전 아래와 같은 지향을 가지고 결성한 '체제전환운동'이 이번 탄핵 국면에서도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의 주축이 되어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여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중심에 두는 대안체제를 건설하는 운동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과 억압에 맞서 존엄과 평등을 위한 상호의존과 돌봄의 관계로 사회를 재조직하는 운동."

체제전환은 어느 한 순간 단절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에릭 올린 라이트는 '자본주의 잠식' 전략을 호수에 풀어놓은 외래종이 번성하여 우세종이 되는 것으로 비유했다. 평등과 돌봄 사회라는 시대적 과제가 대선의 화두가 될 수 있으려면 결국 장기 전망 속에서 사회권력의 힘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나 공공재생에너지운동,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 등 지배체제의 가치와 논리에 역행하는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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