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일요일) 저녁, 내란 피의자 윤석열이 구속 기소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54일 만의 일이다. 이 기간 '응원봉 시민'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러나 윤석열은 경호처를 내세워 영장 집행을 거부했고, 급기야 법원이 공격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특히 지난 '1·19 서부지법 폭동'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내란수괴 혐의로 윤석열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부지법 주변에서 불법 시위를 벌이던 수백여 명의 지지자들이 '저항권'을 주장하며 법원을 습격⋅점거하고, 경찰⋅기자⋅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다. '태극기 부대'로 표상되는 아스팔트 극우 집단의 결집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이번에는 파시즘과 테러리즘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주요 외신은 이번 사태를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과 비교하며, 극우 세력의 특성과 정치·종교적 수사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주도의 '공수처·선거법 저지 규탄대회' 참가자들이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해 경찰이 출동하고, 당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폭력적인 지지자들과 시위대를 독려해 비판받은 사례가 있다.
이번 사태는 극우 세력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 중대한 범죄다. 이들은 피의자 윤석열의 선동과 국민의힘의 동조에 기반하는 각종 음모론을 자양분 삼아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시민들이 모인 광장 바로 맞은편에서 극우 대중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극우 세력은 차별과 혐오를 통해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표적으로 삼아왔는데, 이제는 그 대상이 권력기관인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로까지 확장했다. 자신들의 왜곡된 신념을 위해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훼손하고, 법치주의마저 짓밟는 데 주저하지 않는 집단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내란사태 이후 더욱 심화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동 속에서 극우단체에 대한 일부 법적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극우 성향 단체인 자국민보호연대는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미등록 이주민에게 사적 폭력을 행사하고 자의적으로 체포하는 등 이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력범죄를 자행해 왔다. 이에 대해 지난 21일 법원은 이 단체의 박진재 대표와 일당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극우 인사 일부를 구속하고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극우 세력의 근절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극우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 더는 이들의 혐오와 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사회적 규제와 연대의 힘이 필수적이다. 혐오와 폭력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적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폭넓은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이미 '남태령대첩'에서 확인했다. 그간 정치적⋅사회적 관심으로부터 소외됐던 농민들이 상경해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막혔다는 소식이 들리자, 2030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들이 남태령에 모였다. 남태령은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온 농민·노동자·이주민·여성·성소수자·청년들이 연대의 힘을 발견하는 자리가 되었고, 장애인·해고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학내투쟁 청년들의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해야 할 긴급한 일 중의 하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가 없는 공동체를 주장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회적 대화와 연대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협력과 연대의 힘으로 극우를 고립시키고, 평등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극우 세력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파괴와 증오를 조장하는 모든 세력에 단호히 맞서고, 연대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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