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자지구 미국이 소유해 개발"…중동 분쟁도 '부동산' 다루듯

사실상 가자지구 주민 인종청소 발언… "국내외 문제 회피 목적"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 뒤 가자지구 주민 전체를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해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식민주의적 영토 야욕이 표출된 데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부동산 개발업자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자지구 재건엔 막대한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돼 이날 발언은 트럼프 정부 기존 기조와 모순된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가자지구 휴전 논의를 피하고 국내 문제에서도 눈을 돌리기 위해 폭탄 발언을 던졌다는 추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이하 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와 만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접수해 거기서 일할 것이다. 우리가 그곳을 소유해 위험한 불발탄 및 다른 무기들을 책임지고 해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가자지구 "부지를 평평하게 하고 파괴된 건물을 제거"할 것이며 "그곳을 개발해 수천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지구에 "장기적 소유권 지위"를 가질 것이며 "이것이 중동의 이 지역에 큰 안정성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에 대해 "주요 분쟁에 대응하는 세계 지도자가 아닌 부동산 개발업자"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캐나다, 파나마 운하에 이어 세계의 점령하고자 하는 영토 목록에 가자지구를 추가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개발 중인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인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 전체가 아랍 국가로 이주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가자지구는 죽음과 파괴의 상징"이고 "사실상 모든 건물이 파괴된 철거 현장"이라며 "1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를 떠나 "여러 곳 혹은 하나의 큰 부지"로 옮겨 "총에 맞아 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 비용은 "부유한 이웃국들"이 지불할 것을 제안했다.

가자지구를 "지옥"으로 만든 주체가 지난달 휴전 직전까지 15달간 가자지구를 공습한 이스라엘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일한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건 이후 가자지구의 거주민을 누구로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세계 사람들"이라며 "팔레스타인인들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발된 가자지구가 "중동의 리비에라(해안 명승지)"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부동산 투자자 출신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또한 지난해 2월 가자지구 민간인 이주를 주장하며 "가자지구 해안 부지는 매우 가치있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랍 국가로의 가자지구 주민 강제 이주안은 이미 이웃 국가들로부터 거부됐다. 1일 카타르,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외무장관은 공동성명을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그들의 땅에서 이주시키거나 뿌리 뽑는 것을 장려하는 어떤 노력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요르단 등 이웃국에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주시킬 것을 제안한 뒤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해 이날 회견에서 요르단과 이집트가 "이미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이후 이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필요한 땅을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그 땅을 미국이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의 기존 정책인 2국가 해법에 위배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질문을 받고 자신의 제안은 "2국가나 1국가나 다른 국가에 대한 게 아니다"라고 얼버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지지하냐는 질문을 받고 "논의 중"이며 "사람들이 그 생각을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아마 향후 4주 안에 구체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를 서안지구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언급"이라고 설명했다. 1기 집권 때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인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뒤 이스라엘 극우는 서안지구 합병을 주장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습적 사고를 깰 의지"를 갖고 "틀에서 벗어난 신선한 생각"을 해냈다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주민 전체 이주안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집단 실향 '나크바(대재앙)'의 상처가 여전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 자명하다. 미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가자지구에 대한 모든 공식 선언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결여돼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이라고 꼬집었다.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 국제법을 전복하는 "21세기 식민주의"라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계 미 하원의원인 리시다 틀라입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인종청소를 촉구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가자지구의 우리 국민은 이 계획이 통과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점령과 침략을 끝내는 것이지 그들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리야드 만수르는 "가자지구 일부가 파괴돼도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지도자들과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접수" 및 재건 주장은 미국이 국외 분쟁에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반대해 온 기존 입장과 모순된다. <로이터> 통신은 유엔이 이스라엘 폭격 뒤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 잔해가 5000만톤 넘게 쌓여 있으며 이를 치우는 데 20년 이상, 비용도 최대 12억 달러(약 1조7352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윗코프 또한 미 매체 <악시오스>에 가자지구 재건에 10~15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200만 명에 달하는 가자지구 주민 전체 이주 과정에서 무장 조직 등의 저항으로 인한 미국 인력 손실 가능성,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 및 무력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낮아질 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 기조와 크게 멀어진다.

미국의 숙원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수교도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야망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5일 성명을 내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없이는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겠다고 재강조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주장이 거래를 이끌어내거나 국내외 주요 문제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중동 담당 선임 국장 윌 웩슬러가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올 협상을 예상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골대를 옮기는 그의 일반적 각본을 따르고 있다"며 "이 경우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미래에 대한 협상"이라고 추측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애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미국이 가자지구를 접수하는 것에 대한 대소동으로 인해 우리는 회담의 진짜 이야기를 놓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 주장을 편 이유는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가자지구 휴전 연장에 대한 논의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함이라고 추측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견에선 가자지구 휴전이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 발언 뒤 관련 세부 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가자지구를 접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 등은 며칠간 여기에 집중할 것이고 트럼프는 억만장자들이 정부를 장악해 일반 국민의 돈을 훔친다는 진짜 이야기에서 모두의 주의를 돌리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를 앞장세운 미 국제개발처(USAID) 폐쇄 등의 사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머피 의원은 "미국의 가자지구 침공은 수천 명의 미군 학살과 수십 년의 중동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고 비난했다.

BBC는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의 브라이언 캐털리스 선임연구원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즉흥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이후 계획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캐털리스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첫 집권 때도 "사람들을 약간 미치게" 하고 "논쟁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도발적 발언을 해 왔다고 지적했다. <로이터>는 이날 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감탄하는 반응을 보일 뿐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고 짚기도 했다.

캐털리스 연구원은 "문제는 그것(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 발언)이 실제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에게 그의 말도 안 되는 발언에 집중할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주지만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주진 못한다"고 비판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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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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