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추가 10% 관세가 발효되며 중국도 보복 관세 및 대응 조치를 밝혔다. 미·중 간 무역 전쟁 발발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곧 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혀 협상 여지가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반감을 드러내 온 만큼 관세가 반복해서 도구로 등장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거세다. 같은 날 관세 발효 예정이었던 멕시코와 캐나다 정상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뒤 30일 유예를 얻어 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AP> 통신 등을 보면 4일 미국의 대중국 관세가 발효된 직후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원유, 농기계, 대배기량 자동차, 픽업트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관세 부과가 (미국의) 자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중·미 간 정상적 경제 및 무역 협력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중국 상무부는 텅스텐,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인듐 등 광물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첨단기기에 활용되는 이들 광물 중 상당수가 미 지질조사국(USGS) 선정 "미국의 경제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중요한 광물 명단에 올라 있다.
상무부는 타미힐피거와 캘빈클라인 등 유명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PVH그룹과 생명공학업체 일루미나 등 미국 업체 2개를 '신뢰할 수 없는 업체'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이 목록에 오르면 중국 관련 수출입 활동과 중국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금지될 수 있다. 상무부는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에 대한 WTO 제소 사실도 확인했다.
같은 날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반독점법 위한 혐의로 미국 빅테크 기업 구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중국에선 구글 검색 서비스가 차단돼 있지만 일부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한다.
<AP>는 미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연구소 소장 스티븐 도버가 중국의 대응이 계산되고 절제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것이 모든 곳에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하락, 미국 인플레이션 상승, 달러 강세, 미국 금리에 대한 상승 압력을 초래할 수 있는 보복 무역 전쟁의 시작일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앞서 캐나다와 멕시코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뒤 관세 30일 유예를 이끌어 낸 데다 관세 발효 전까지 중국이 비교적 절제된 태도를 보여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CNN 방송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중국과 "아마 향후 24시간 내" 대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방송은 중국 쪽에선 통화 관련해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홍콩에 기반을 둔 금융서비스업체 가베칼의 중국 연구 부국장 크리스 베도르가 중국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그들은 분명히 협상과 거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낙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 노무라증권의 수석 거시전략가 마츠자와 나카가 "공급망에서 (중국을) 차단하거나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핵심 기둥 중 하나기 때문에 중국이 경제적으로 큰 양보를 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조치를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수석 경제학자 개리 응 또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비해 중국은 "트럼프의 경제적, 정치적 요구에 동의하는 것이 분명히 더 어렵다"며 "양국이 일부 문제에 합의하더라도 관세가 반복적 도구로 사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BBC는 중국 푸단대 미국연구소장 우신보 교수가 "트럼프 대통령 팀엔 중국에 대한 매파, 심지어 극단적 매파가 상당수 있다"며 "향후 4년간 양국 관계가 심각한 혼란에 직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멕시코 관세는 30일 유예…"트럼프 '모호한 조건' 제시는 필요시 승리 주장 위함"
앞서 3일 캐나다와 멕시코는 정상 간 소통을 통해 관세 발효 시한 30일 유예를 얻어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나다가 안전한 북부 국경을 보장하고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펜타닐과 같은 치명적 마약을 종식시키기로 마침내 합의했다"며 "토요일(1일) 발표한 관세는 30일간 유예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캐나다가 국경에 1만 명을 배치 중이며 "펜타닐 차르"를 임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세 발효 유예 소식을 알리며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매우 우호적인" 통화 뒤 멕시코에 부과될 예정이었던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가 1만 명의 군인을 미국과의 국경에 배치해 미국으로의 펜타닐과 불법 이주를 막는 임무를 수행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에 더해 미국 또한 멕시코로의 고성능 무기 밀매를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3일 캐나다와 멕시코 양국에 부과될 관세 발효 시한을 2월4일에서 3월4일로 변경한 새 행정명령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변경된 행정명정에서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가 취한 조치를 "인정"하고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관세 발효를 유예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유예 조치로 캐나다와 멕시코는 한숨 돌리게 됐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영국 BBC 방송은 "펜타닐 차르"와 같은 눈에 띄는 새 조치를 제외하곤 캐나다가 트럼프 대통령에 제시한 국경 안보 계획 대부분이 이미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사항이라고 짚었다. 양국 정상이 강조한 국경 보안 관련 13억캐나다달러(약 1조3120억원) 규모 투입도 캐나다 정부에서 이미 두 달 전 내놓은 내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위원회도 사설을 통해 멕시코군이 국경에 배치된다고 발표됐지만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마약 밀매 조직과 싸울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미국과 멕시코 관계에서 멕시코의 협력 약속을 포함해 마약 단속은 반복돼 온 문제라고 덧붙였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가 아군과 적군에 대한 실패 없는 외교적 무기라고 자랑해 온 것"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를 "승리"라고 말할 "필요성"이 크지만 실제론 도출된 결과 중 어느 것도 "관세가 천재적 권력 게임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가 펜타닐 유입을 위한 것인지 기존 무역 협정을 뒤집기 위한 것인지도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외국 정상들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25% 관세는 한 달 안에 다시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산업계 및 일자리가 걸린 노동자들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캐나다 민간부문 최대 노동조합인 유니포(Unifor)는 3일 성명을 내 "관세 30일 유예에 아무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며 "잠재적 무역 전쟁"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BBC는 "사업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라며 30일 유예로 정치인들은 안도했겠지만 "최고경영자(CEO)들에겐 좀 더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송은 최근 몇 년간 많은 기업들이 관세를 피해 공급망을 재편해 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목표물이 될 나라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다음 투자처를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위협을 통해 마약, 이민, 무역 등에 대한 실질적 해결보다 국내 문제를 외국에 전가하고 지지자들에 대한 정치적 신호를 보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목표물' EU "관세 전쟁 어리석어…단호하게 대응"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곧"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한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단호한 대응"을 다짐했다. <AP> 를 보면 3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기자들에게 EU와 미국의 유대는 "가장 중요한 관계" 중 일부지만 "새로운 도전과 불확실성이 분명히 커지고 있다"며 "불공정하거나 자의적인 표적이 될 경우 EU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그린란드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동맹과 싸우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유럽에 강경한 조건을 내걸면 우리도 집단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의 직접적 위협과 중국의 확장" 앞에 "동맹 간 갈등"은 "잔혹한 역설"이라며 "이 완전히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관세 전쟁 혹은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유럽인들이 더욱 단결하고 더 적극적으로 집단 안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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