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의료전달체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서리풀연구通] 일본 의료전달체계의 교훈: 한국 의료전달체계 개혁의 방향성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으로 시작된 갈등이 현재 진행 중인 가운데, 의료개혁 관련 정책 논의의 중심이 의사 수와 전공의 수련 등 인력 문제에서 의료전달체계로 옮겨가는 추세다. 정부는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발표하며, 왜곡된 의료 공급·이용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및 희귀질환에 집중하는 진료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진료 비중을 50~70% 늘리고 일반병상을 5~15% 축소하며, 수술료·병실료 등을 인상하는 것이 핵심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상급종합병원의 구조 전환이 가능하려면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1·2차 의료기관의 기능 강화가 전제가 되어야 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의료전달체계는 국가의 행정구역 또는 생활권에 따라 진료권을 나누어, 소규모 지역 단위에서는 경증의 1차의료를 1차 의료기관이 담당하고, 1차 의료기관에서 맡기 힘든 환자는 더 넓은 지역 범위의 2차 의료기관이, 중증도가 높은 환자는 광역 범위의 3차 의료기관이 맡도록 하여 의료체계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발전해왔다.

197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알마아타 선언을 계기로 1차의료 강화와 함께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가 주목받았지만, 영국 등 서구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병원'이라는 제도는 서구 사회에서 초기에는 종교 기관의 자선병원 또는 빈민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립병원으로 시작되었으며, '의원(clinic)'은 병원과는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의 저자인 가토리 데루유키(香取 照幸)는 일본의 의료 정책의 어려움은 병원이 공공 또는 비영리 단체의 소유인 서구와 달리, 일본에서는 의사들이 의료 법인을 설립하고 사적 자본을 활용해 병원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논문 바로가기: 일본의 의료전달체계 - 역사적 발전부터 초고령 사회 과제까지). 일본에서 공공이 소유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전체의 14%, 병상 수 기준으로는 22%에 불과하며, 이는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료기관 소유의 문제는 규제가 약하고 시장에 의존하여 의료를 제공하는 일본의 의료보장제도와 결합되어 서구와는 다른 의료체계의 특성을 나타낸다.

서구와 달리, 일본에서는 의료 이용자가 의료 제공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 진료 과잉으로 이어지곤 한다. 의료 제공자 역시 일본 어디서든 사적 소유의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병상을 운영할 수 있으며, 병원과 의원 모두 1차의료와 병원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의료전달체계 내에서 의료기관 간 역할과 기능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채 서로 경쟁하게 된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아닌 의사들은 의원 또는 병원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서구의 개방형 병원(open-type hospitals)과 같은 형태가 기능하기 어렵다. 민간 의원이 자본을 축적하여 병상을 보유한 병원으로 성장한 일본 병원의 역사적 경로는 일본 의료체계 내 민간 병원과 병상 비율이 높은 구조를 만들었고, 각 의료기관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의료기관을 운영한 결과 의료기관 및 병상이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지 못하게 되었다.

1차 의료기관(의원)을 개설한 의사들도 대부분 특정 전문 진료과목을 표방하여, 1차의료뿐만 아니라 서구 의료전달체계에서 2차 또는 3차 의료서비스에 해당하는 진료들도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GP(일반의)나 가정의학과 의사가 체계적으로 1차의료를 제공하는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1·2·3차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들이 모두 동일한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단계별 진료서비스의 중복이 상당하여 서구와 같은 의료전달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본은 서구와 같은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지 않았음에도, 보편적인 의료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정체, 출산율 감소, 인구 고령화와 같은 경제적·인구적 변화에 더해, 만성질환 중심의 질병 구조 변화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 의료전달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전달체계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일본의 의료전달체계는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형성과정을 거쳤으며, 양국 모두 경제 성장 둔화,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의료 체계의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노인 부부 가구와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돌봄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고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 가토리 데루유키는 기존의 일방향적 피라미드 형태의 서구 의료전달체계 모델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는 급성기 의료기관이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지역사회의 1·2차 의료기관도 응급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여러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를 효과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의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요양원, 가정간호, 재택의료 등 다양한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상급종합병원의 구조 전환은 개별적인 정책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의 관점에서 1차의료 강화와 2차 의료기관의 역량 강화를 포함한 총체적인 방안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의 전반적인 개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서구에서 수입된 '의료전달체계 지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의료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역사적 토대에 기반한 새로운 지식과 대안이 만들고 모색할 필요가 있다.

*서지 정보

Katori, T. (2024). Japan's healthcare delivery system: From its historical evolution to the challenges of a super-aged society. Global Health & Medicine, 6(1), 6-12. https://doi.org/10.35772/ghm.2023.01121.

▲6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어린이 전문병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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