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짜 요양보호사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 함께돌봄상 수상자 강선경 장기요양요원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헌신하는 장기요양요원들이 현장에서 겪은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써냈습니다. 이 중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2024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에서 수상한 다섯 작품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아우 정말 나 어떻게 해…어르시인…" 조용한 새벽 요양실 병동에선 내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진땀 흘리고 선배 요양보호사 따라다니며 요양 일을 배우길 2개월 되던 차, 나이가 구십도 넘으신 임 어르신은 기저귀 케어가 끝나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네주셨다. 선배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은 콧줄을 하고 계셔서 입으로 물을 드시면 흡인성 폐렴이 오실 수 있다. 절대 물을 먹여 드리면 안 되고 콧줄을 통해서만 물을 드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 어르신은 왼손은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셨고 오른손은 장갑이 씌어져 침상 난간에 묶여 계셨다. 틈만 나면 콧줄을 빼서 보호자님의 클레임이 많다며 장갑이 벗겨지지 않게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인계받았지만, 혼자 근무하던 야간에는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시니 조금 헐겁게 묶어 놓았었다.

라운딩을 돌고 와보니 콧줄이 어르신 침상 머리 맡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아 어르신을 보니 모른 척 눈을 감고 계셨다. 콧줄 빠진 날이 주말이라 출장간호사님이 오시지 않아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보호자의 사정으로 병원으로 바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할머니는 그날 하루 굶으실 수밖에 없었다.

물도 못 드리고 종일 경관식도 못 드시니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굶으니까 좋으세요? 왜 그러신 거에요"라고 투덜거리자 할머니는 "배 안 고파. 콧줄 안 하니까 좋아”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걱정과 달리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하루 종일 편히 쉬셨다.

몸을 케어하는 것보다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콧속에 코딱지가 있어도 불편하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빼버려야 시원한데 늘 줄이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니 줄을 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 예전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임 어르신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콧줄을 빼셨고 결국 전문요양실로 이동하셨다.

여기서 일하면서 구십의 나이에도 건강하신 시어머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됐다. 어머님은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돈을 벌고 계신 거라 하시니 기뻐하셨다. 이제 저 기저귀 엄청 잘 간다며 "어머니 아프셔도 걱정 마시라. 내가 다 갈아드린다" 라고 하시니 어머님이 깔깔 웃으시며 돌아가신 시아버지 얘기를 꺼내셨다. 내가 40대 때 병원에 입원하신 시아버지 기저귀를 결국 못 갈아 드렸는데 시어머님이 때가 되면 할 수 있다고 넘어가 주신 게 생각났다.

시아버님 기저귀도 못 갈던 내가, 아이들 기저귀도 많이 갈아보지 못했던 내가 지금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파킨슨을 앓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며 친정 엄마가 세심하지 못하다고 아버지 편만 들었었는데 이젠 친정에 방문하면 엄마 손부터 잡아본다.

처음 3개월은 처음 배우는 일에 신이 나고 내가 남을 돕는다는 즐거움에 얼굴에 빛이 났었는데 이제는 그때만큼 즐겁지 않다. 하면 할수록 몸도 아프다. 그래도 시아버지 기저귀 못 갈아 드리던 며느리, 아픈 친정 아빠가 맘에 쓰여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던 딸이던 전보다 마음의 키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을 돌보며 사람이 되어가려 공부하는 중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일하는 동안 첫 번째 시련이었던 임 어르신을 겪으며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되었고, 마주하는 요양보호사 모두에게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말하던 어르신의 지혜를 배운다. 나는 매일 매일 배울 것이 많은 초짜 요양보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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