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하다는 '그들'에겐 "세상이 왜이래" 외치는 '사익추구자'가 필요하다

[프레시안books] <불온한 공익>,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법 이야기>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총무처에 항의방문을 했다. 2008년이었는데 월급이 60만 원이었다. 이를 문제 삼자 배석한 총무처 직원이 말했다. "다른 학교보다는 나아요." 맞은 편에 앉아있던 노조 활동가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뭐요? 최저임금도 안 주면서 당신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그해 최저임금이 월급 기준 78만7930원이었다. 법도 안 지키면서 뻔뻔하기까지 한 사람이 된 총무처 직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조차 속이 시원했으니 같이 갔던 청소노동자들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법은 휴지 조각'이라는 말, 혹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펼쳐지는 현장을 눈으로 본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약자와 소수자에게 법은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법적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고된 싸움에 나서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런 이들의 곁에 선 변호사들이 쓴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류하경 변호사가 쓴 <불온한 공익>과 최정규 변호사가 쓴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법 이야기>다.

비슷한 일을 해왔기 때문일까. 두 책에서 하는 이야기에는 닮은 구석이 있다. 법적 권리의 확장과 적용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온한 공익>의 저자인 류하경 변호사는 공익이란 것도 깊이 따져보면 누군가의 사익이라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이익을 위해 비장애인의 양보가 필요한 때가 있으며, 경제성장이나 환경운동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도 다르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가 잠정적으로 정의한 공익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다. 그는 이어 공익의 확장은 당대에 불온하다고 여겨지던 사익을 추구했던 사회적 약자들이 벌인 "경기장 자체를 더 넓히는 공사(工事)"를 통해 이뤄져 왔다고 말한다. 노예해방 운동이나 여성참정권 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책에는 류 변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변론 경험이 다수 담겨있다. 더는 삼성에 노조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지만, 이런 세상 이전에 반헌법적 '무노조 경영'에 맞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었다. 처음에 '불온'하다고 여겨진 것은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감옥에 간 것은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며 위법적 노조파괴 행위를 벌인 사측 관계자들이었다.

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육청의 대응을 감시하기 위해 피해자·가해자 분리, 가해교사 징계 내역 등을 알려달라는 '스쿨미투 정보공개' 역시 당연해 보이지만, 법정 싸움을 거친 뒤에야 이뤄졌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교육청은 가해자들이 향후 교단에 서기 어렵다, 현장의 혼란이 예상된다는 등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물론 법원은 '정치하는 엄마들'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스쿨미투 후속 조치 결과 공시의무화 법안은 발의 후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류 변호사는 "최고의 판결보다 최악의 화해가 낫다"고 강조한다. 대화가 아닌 굴복으로 끝난 갈등이 남기는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약자들이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들이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거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달라고 당부한다. 실제 노조 할 권리나, 스쿨미투 정보공개도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류 변호사는 '화해'를 위해 더 많이 가진 자의 양보와 잘못에 대한 사과가 필요할 때가 많으며, 이를 위해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고도 짚는다. 이는 약자들이 뭉쳐서 사회를 시끄럽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우리가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양자택일의 상황에 맞닥뜨릴 때 약자들의 목소리에 무게추를 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불온한 공익>, 류하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법 이야기>에서 최정규 변호사는 법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일상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법 없이도 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법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있는 법마저도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병인 근육긴장이상증에 걸린 현섭 씨는 혼자 걷기 어렵지만, 낙상 위험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하는 회사마저 휠체어를 타는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섭 씨는 교통약자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소송을 제기해 2년 만에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권리를 찾았다.

'1층이 있는 삶'을 위한 소송도 비슷한 사례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휠체어나 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인, 유아차를 끄는 사람 등의 건물 이용을 위해 경사로를 설치하고 턱을 없애는 등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소규모 편의점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변화는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2018년 법원에 제기해 2022년 마무리된 소송을 통해 이뤄졌다. 판결에는 편의점주의 어려움을 고려해 준비기간을 두고, 비용도 점주가 다 부담하지 않게 하는 배려도 포함됐다.

나아가 최 변호사는 한국사회에 앞으로 필요한 법적 변화도 짚는다. 공익신고자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정비, 한국 정부가 시행한 구인과정을 거쳐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을 국가가 지급하고 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하게 하는 제도의 도입, 평생에 걸쳐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는 참사 생존자들의 배상권을 강화하는 법안 등이다.

▲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법 이야기>, 최정규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철수와영희

두 권의 책에는 또 하나 닮은 구석이 있다. 약자나 소수자의 법적 권리를 확장하고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공익·인권'이라고 세상이 불러주든 말든 개의치 않고 불의한 사회 시스템에 의해 피해를 보는 이들과 연대하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 역사를 한 단계 더 진보시키려는 변호사, 활동가가 많다. '공익·인권'의 개념을 확대하기 위해 세상을 상대로 인정투쟁을 벌이고 는 훌륭한 '사익·이권' 투쟁가들을 응원한다." <불온한 공익>

"세상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체념하지 않고 '세상이 왜 그래?'라고 질문하며, 때로는 법이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할 때 '도대체 법이 왜 이래?'하고 따져 물어 가며 투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모여 법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법에 힘입어 우리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어야 할 법 이야기>

책을 읽으며 이 응원을 저자들에게도 돌려주고 싶었다. 저자들과 같은 법조인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변론과 입법활동을 시작하려는 예비 법조인과 법조인들에게 특히 두 책을 권하고 싶다. 글에 다 싣지 못한 저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깊이 있는 고민이 그런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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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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