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9월 16일자 "尹 대통령, 세계 각국 전투식량 직구해 사먹는다는데…"라는 기사를 보고 실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전투 식량을 직접 인터넷에서 구매해 맛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인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젊은 장병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투 식량'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진심은 추석인 17일 오후 강원도 최전방 부대인 육군 제15사단을 방문해 "잘 먹어야 훈련도 잘하고, 전투력도 생기는 법"이라며 "격오지에 있는 부대들에 대해서는 통조림이나 전투식량 등을 충분히 보급하라"고 지시한 데에서도 느껴졌다. 대통령은 '전투 식량'을 아마 일반 병사들이 실생활에서 먹는 걸로 착각한 모양이다. 통조림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얼마나 고색창연한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영감을 얻은 전투 식량을 보급해봐야 병사들은 평소에 먹지 않는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1~2주 야외 생활을 하는 훈련 때도 '식사 추진'이란 이름으로 밥차를 동원해 '일반식'을 식판에 담아 먹는다. 반합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훈련 프로그램 속에 '전투식량' 먹는 날을 하루 정도 따로 정해두긴 한다. 대부분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 보급품 제고를 처분하기 위한 목적이다.
대통령의 인식대로 군인이 전장에서 전투 식량을 먹을 정도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식사 보급 자체가 어려운 극한 전투 상황일 것이다. 대통령이 최근 '전쟁 위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 우리 나라는 우크라이나 원정 지상군 수준의 전쟁을 치르게 될 상황이나, 과거 베트남 전과 같은 상황, 혹은 6.25와 같은 전쟁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나라인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은 전쟁을 겪어 본 적이 없고 군대에 다녀온 적도 없다.
대통령은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았다. 대통령이 전세계 각국의 '전투 식량'을 맛 보는 것이 '장병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단순하게 대통령이 요리를 좋아한다니, '전투 식량'의 종류와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면 장병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일 수 있겠다고 이해해 보려 한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실이나 국가보훈부, 국방부를 통해 부쩍 강조되고 있는 대통령의 '장병 사랑' 미담 속에서 간혹 이물감 드는 일들이 생기는 데 대해서는 꼭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이 '제복 영웅'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다. 이 말은 과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가 '천안함 용사들'을 언급할 때나 간혹 쓰던 말이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이 전 대표가(산업기능요원으로 합법적인 병역 대체 의무는 마쳤다) '제복 입은 영웅'이란 낯선 단어를 사용할 때 뭔가 어색함이 느껴졌는데 순전히 개인적으로 추정컨대,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이 전 대표가 '군복'이나 '경찰복' 같은 근대적 상징물에 모종의 판타지를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제복 안 입은 영웅들(일반 공무원들)도 국가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건 마찬가진데, 꼭 '제복 영웅'을 짚어서 얘기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군인이나 경찰을 지칭하는 자신만의 '수사'라 생각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제복 영웅'이란 생경한 말이 공식 자료에 등장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6.25전쟁 기념일을 맞았을 때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6·25 참전용사 단체복을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특별 제작해 지급하면서 '제복의 영웅들'이라는 말을 띄우기 시작했다. 민간에 '영예로운 제복상'과 같은 행사들이 있긴 했지만, '제복 영웅'이라는 말이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국가가 '제복' 입은 공직자들에게 조금 다른 대우를 하는 것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데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대통령 개인의 콤플렉스의 발현이라던가.
제복은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간 영역에서도 항공사 직원들이나 선사 직원들, 은행원이나 (요즘은 잘 없지만) 택시기사 등이 제복을 입고 근무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입는 '교복'도 '제복'의 한 종류다. 제복(制服) 말 그대로 절제된 복장을 말하는데, 단어 자체나 유래와 관련해 다소 뜻이 다르지만, 영어로는 '유니폼'(uniform)이란 말이 우리가 흔히 쓰는 '제복'이란 말과 가장 의미가 통하는 단어다. 국어사전에선 "학교나 관청, 회사 따위에서 정하여진 규정에 따라 입도록 한 옷"이라고 돼 있다.
제복의 여러 의미 중에 특정 직업군을 떼 와서 '제복 영웅'이란 말을 만들어 붙여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의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정부에서 사용하는 '제복 영웅'은 주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물리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대부분 군인, 경찰, 소방관이다. 하지만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나, 교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들은 모두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들이다. 그들로부터 '제복 영웅'을 분리해 특별히 기리겠다고 하는 게 어색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제복은 권위이기도 하지만, 통제이기도 하다. 이 정부가 말하는 '제복 영웅'의 핵심을 잘 짚어낸 발언을 소개한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탄원서를 제출하며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말한 것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한 걸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이런 일'이라는 건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중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가 목숨을 잃은 채상병 사건을 말한다.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된 존재가 죽었던들, 그 존재를 지휘하는 사단장이 그런 '작은 희생'에 물러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대체 대통령은 어디서 배운 '군인 정신'인지 모를 말을 하고 있는건가. 그렇게 희생된 사람을 '제복 영웅'으로 극진히 기려주면 그만이라는 것인가. 이 정부가 '제복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요란하게 마케팅을 펼치면서 정작 지우고 있는 것은 제복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다. 군인은 제복 입은 영웅이기 이전에 제복 입은 시민이다. 이를테면 해병대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제복 입은 사람은 '시민'이 될 수 없고 희생하는 '영웅'이 되라고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면 홍범도는 '제복 영웅'이 아니다. 그는 '일본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 살고 있는 '조선땅'의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국가 없는 군인이 되었다. 하지만 '제복 영웅'은 정규군만을 지칭한다. 정규군이 아닌 사람은 '제복 영웅'이 될 수 없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총칼을 들었든, 숭고한 희생으로 독립의 꿈을 안겨줬든, 소련식 군복을 입고 감히 사진을 찍은 홍범도 장군은 육사 교정에 '제복 영웅'으로 존재할 자격이 없다는 게 이 정부의 논리다. 쉽게 말해 대통령의 인식에서 '제복 영웅'은 딱 6.25때까지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야 비로소 제복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고, 그 이전의 영웅들은 '제복 영웅'이 될 자격마저 박탈당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많이 본 논리다. 뉴라이트의 인식이 딱 그런 꼴이다. '제복 영웅' 칭송 프로젝트에서 '공산 전체주의'같은 급조된 신조어의 냄새가 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군부대 시찰을 갈 때마다 '제복 영웅'을 운운할 때 드는 이질감의 정체를 정리해보고자 이 글을 쓴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해 '제복 영웅'같은 특별한 수사를 동원해 사기를 올리겠다고 하는 의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한때 '제복 영웅'으로 2년 넘게 군에서 복무하며 시민의 의무를 다 한 사람으로서, 제복 입은 영웅보다 제복 입은 시민에 대해 더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군 미필자의 콤플렉스를 이런 식으로 해소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시민의 의무인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서, 억울한 병사 사망 사건의 은폐의 핵심으로 지목당하고 있는 대통령의 '제복 영웅론'을 보며 든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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