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놓고 동상이몽…추석 전 '개문발차'도 어렵다

2025년 정원 놓고 충돌…한동훈 "의사는 적 아냐" vs 한덕수 "개혁 미루면 더 큰 대가"

정부와 여당이 '여야의정 협의체' 등 의료위기 해법을 놓고 당정협의를 열어 머리를 맞댔지만 2025년 정원 문제로 충돌하는 등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25년 정원을 포함해 "의제 제한은 없다"고 재강조하고, 의료대란 관련 실언 논란이 일었던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등을 겨냥 "유감"이라며 에둘러 문책을 시사했다. 반면 한덕수 총리는 "의료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개혁을 미루면 머지않아 더 큰 대가를 치른다"고 강경 기조를 고수했다.

한 대표는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여야의정 협의체와 관련 "의제 제한도 없고 출범을 위한 전제 조건도 없다. 의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하나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와 의료계는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2025년 의대정원 재논의를 의제로 올릴 것인지 여부를 두고 대립해왔는데, 한 대표가 '2025년 정원 재논의를 포함한 모든 의제가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앞서 정부 측에선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협의체는 의제에 제한이 없다"면서도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가능성에 대해선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어 한 대표는 "그간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관계자들의 다소 상처 주는 발언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발언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당의 대표로서 그런 것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앞서 "직접 응급실에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등 주무부처 관계자 인사조치와 정부 측의 사과를 주장해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정부와, 당내에서 정부 측 의견에 발을 맞춰온 추경호 원내대표의 경우 인사조치 및 사과 요구 등에 대해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한 대표는 "여야의정 모두 대화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말고 대화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자"며 "여야의정 협의체의 출발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전공의들에 대한 사법적 대응에 신중해주실 것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며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유연한 대처를 촉구하기도 했다. "의사는 정부의 적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반면 한 총리는 그간 의료개혁과 관련 정부와 대통령실이 보여온 강경기조를 모두발언에서부터 표명했다. 한 총리는 "응급의료 여건이 녹록치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의료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의료체계는 어렵지만 아직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앞선 모두발언에서 "지금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될 때"라고 말해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 반면, 한 총리는 지금의 의료대란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한 총리는 이어 "개혁을 미루면 머지않아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쉽다. 역대 정부가 의료개혁을 미룬 탓에 지금 국민들이 치르는 비용을 정부는 뼈 아프게 생각한다"며 "정부·여당은 겸허하되 심지 굳게 나아갈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는 정부가 의료대란 초기 증원규모 재논의 등 의료계 요구를 거절하며 들었던 논리를 반복한 것으로, 역시 '2025년 정원까지 재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한 대표 측과는 반대 방향으로 읽혔다.

아울러 한 총리는 "정부는 전공의들이 오해를 풀고 현장에 돌아와 주시길 간절히 기다린다. 환자는 물론 전공의 자신을 위해서도 그것이 가장 선하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등 사직 전공의들을 압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또한 사직 전공의에 대한 '신중한 대응'을 당부한 한 대표와는 대치되는 발언이다.

한 총리는 앞서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본인 주재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도 최근 논란이 된 '의사 블랙리스트'에 대해 "정부는 블랙리스트 작성자와 유포자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겠다"고 압박하고, 의료계를 겨냥 "(의료개혁은)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이라며 "의료계가 오해를 풀고 의료 개혁의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다.

한 대표와 한 총리는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 회의에서 2025년 정원 문제를 놓고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대표와 한 총리는 △2025년 증원 유예를 의제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 △최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전공의 집단사직과 관련해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일 등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다.

한 대표가 한 총리에게 "왜 자꾸 의사들을 자극하나", "정부는 지금 이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책임질 수 있나"라는 등 따져물었으나 한 총리는 현재 상황이 '나쁘지 않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한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앞두고 전공의 대표들이 경찰에 소환되는 것과 관련, 정부에 '사법적 대응을 신중히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당과 정부 간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협의체가 추석연휴 전 출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정협의회 종료 후 브리핑에서 "가능한 한 추석 전까지 협의체를 출범시키고자 최대한 노력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가능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의협에 대해 "배제하지 않는다. 계속 추가적으로 들어오실 것"이라며 협의체의 우선적인 출범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당정 간 이견이 불거진 데 대해 "의료계를 최대한 설득해서 같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에선 당정이 다 같은 뜻"이라며 "의료계를 설득하는 데 당정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 중"이라고 봉합을 시도했다. 이 관계자는 한 대표와 한 총리 간의 설전에 대해 "'의료계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해석에 대한 문제"라고 논평했다.

여당 중진들 간에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날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2025년 증원을 1년 유예할 것을 제안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에 대해 "의사 출신 안 의원의 의료대란 해법은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의사들의 손만 들어주는 것으로 의료대란 해법이 아니다. 국민 70%와 일부 야당 중진조차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데 그걸 지금와서 유예하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혼란만 더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의료대란 대책 특위를 가동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와 간담회를 가지고 의료대란 해결을 위해선 '대통령과 정부가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공세를 높였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의료계가 협의체 나와야 사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정부 입장이 바뀔 준비가 돼야 사태가 해결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특위 위원장인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은 "정부가 '2000명'의 근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25년도 정원을 포함한 모든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서 논의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에선 계속 다른 목소리가 나오니 이런 부분이 정리돼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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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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