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건폭' 발언에 대해 "과도하다"며 예방책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그러나 이같은 인권위 의견 표명에도 '건폭' 발언은 문제 없다는 식의 입장을 배포해 '고용부가 노조 혐오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이 21일 확보한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 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건설노동조합‧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이 제기한 '국가기관 등의 노조 조합원에 대한 비하, 모욕 등 차별행위' 진정 사건에 대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가 윤 대통령에게 의견 표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진정인들은 윤 대통령과 원 전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과 국민의힘 의원 등 정부‧여당 인사 13명이 "건폭", "기생충", "노동자 빨대" 등 노조와 노조원에 대한 혐오 및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국무회의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발언해 '노조 혐오'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에 인권위는 "이 사건 진정의 피진정인들이 그 발언의 파급력이 크고, 공론의 장을 왜곡시키지 않을 책임이 있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라는 점에서, 피진정인들의 주장처럼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한 비판과 평가라 하더라도 그 표현이 과도해서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할 우려가 크므로,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국가기관은 노동조합과 노조원의 불법행위를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불법행위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으나, 이를 넘어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 사회 내에서 노동조합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왜곡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폭", "건폭", "노피아", "기생충", "노동자 빨대" 등은 시민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함으로써 노동조합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의 의견 표명 사실이 알려지자, 고용노동부는 즉각 반발했다. 고용부는 21일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그간 건설현장에는 금품 요구, 채용·장비 사용 강요, 협박·폭행 등 불법·불합리한 관행이 형성, 건설 공사기간 지연 등이 사회 문제화 돼 반칙과 특권을 근절하기 위한 건설현장 집중 단속을 비롯하여 불법적 집단행위 등에 대해 엄정 대응해 왔다"고 했다.
이어 "('건폭' 등) 일부 발언은 이러한 불법행위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것일 뿐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담은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불법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는 만큼, 앞으로도 엄정한 법 집행으로 산업현장에 공정과 상식, 정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이러한 고용부 입장을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21일 논평을 통해 고용부 입장에 대해 "정부가 추진하는 계획에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서라면 상대에 대해 혐오적 표현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라며 "그 대통령과 그 노동부답다"고 했다.
노조는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매일같이 혐오 표현을 하니 그것이 혐오인 줄조차 모르고 인권위 결정에 반대하며 공개적으로 혐오를 두둔하다니 창피하지도 않은가"라며 "노동부가 앞장서서 이러한 입장을 내놓다니 앞으로도 노조 혐오를 이어갈 것이고 부처 이름에서 노동은 필요 없다는 선언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반성의 성찰을 하나 찾을 수 없고, 그 정도는 혐오도 아니라는 노동부는 김문수 내정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정부의 대통령부터 장관 내정자까지 혐오에 찌들어 자신들도 함께 노조 혐오에 앞장서겠다 밝히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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