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나 닭은 안 불쌍해?'라는 물음을 넘어서

[프레시안books]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하고 많은 권리 운동 중에 '동물권' 운동은 특히나 그 환경이 가혹한 면이 있다. 현 세계에서 재현되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부터 모순적인 데가 많다보니, 동물권을 인식하는 그 순간 많은 이들이 가장 처음 경험하는 건 자기모순일 때가 많다.

혹자는 그 모순을 아프게 조롱하기도 한다. '돼지나 닭은 안 불쌍해?' 가령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사랑이 동물권으로까지 연결될 때, 주로 그걸 비웃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흔히 듣곤 하는 이 말은 그에 담긴 악의와 무관하게 핵심을 관통하는 데가 있다.

비 인간 존재를 끝없이, '효율적'으로,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착취하는 인간사회의 소시민이 동물권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너도 똑같잖아' 하고 말하는 누군가의 비웃음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탈피할 수 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손 닿는 만큼만 노력하고자 해도, 나의 '손 닿는 만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적어도 '보신탕'은 먹지 않겠다는 다짐? 펫샵 불매? 혹은 동물전시 반대? 나를 포함해 공장식 축산에 불편함을 가지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비육식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동물복지 계란을 사 먹는 것으로 불편함을 덜어내는 것이 최선일까?

그 자기합리화마저도 지갑사정에 의해 쉽게 꺾여버릴 때면, '돼지나 닭'을 운운하며 동물권 논의에 파토를 놓는 이들의 목소리가, 사실 적어도 나보다 솔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고 마는 것이다. 위선도 선이라는 한 마디로 나의 위(僞)를 덮을 수 있나.

그러나 모순 속에도 진심은 있다. 수의사 변재원의 책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변재원,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김영사

덜 비겁하고 더 용기 있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동물권 논의는 더디더라도 착실히 발전하고 있다.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언론의 시각은 탁월해졌다. 이제 동물권이라는 단어는 시민사회를 넘어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최근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는 청주동물원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국내 최초의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은 동물의 편의를 고민하고 구조동물을 보살핀다. 그들에게 '전시됨'을 강요하지 않아 '없는 동물원'으로 불린다. 대중에게는 갈 곳 없던 '갈비사자' 바람이가 찾은 안식처로 유명세를 탔다.

저자도 "동물을 상품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동물원을 찾다가" 이곳에 당도했다. 다만 청주동물원은 그가 찾은 고민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고민의 연장선이자 실천과 경험의 이어짐에 가깝다. "훗날 더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의사에게 손에 닿는 한 마리의 동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판'의 양상이고, 한국과 청주동물원은 겨우 그 판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에 섰을 뿐이니까.

책은 이를테면 비슷한 고민을 해오고 해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격려이자 응원과 같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모순을 고민하는 다른 모든 이들처럼, 손에 닿는 동물들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저자 또한 자책과 분노와 후회를 경험해왔다.

품 안에서 죽어간 비버가 '새 상품'으로 교체될 거라는 턱 없는 위로에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는 자기고백. 자해로 꼬리를 잃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태일이'를 필사의 노력으로 보호하고도, 태일이가 옮겨가는 시설에 대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대답을 듣게 될까 두려워" '좋은 데로 가겠지' 스르로를 위안하던 경험. 아쿠아리움의 바다코끼리를 치료하기 위해 그 동물의 '경제적 가치'가 인정돼야 했던 결정 구조.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모순적인 상황들과 '책임'에 대한 물음이 책에 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하고, 나아가며, 교감하고 마침내 그들의 평안을 바라는 작은 개인의 마음이 책에 담겼다. 그래서 책은 동물원 밖의 우리들이 몰랐던 '실상'을 더 세세하게 전달하는 고발의 성격을 넘어, 그 실상에도 불구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헤메이던 이들에게 실천에 기반한 연대감을 선사한다. 연대할 수 있다는 감각, 권리에 대한 모든 운동도 그 지점에서 시작하지 않나.

저자가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강아지 '몬돌이'를 위해 수의사를 꿈 꿨던 저자는 잠수사 생활 중 마주한 바닷속 풍경에 매료돼 아쿠아리움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동물 취급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당시부터 이어져온 그의 실천의 시작점은 역시나 선의와 호감이라는, 작다면 작은 개인의 마음이었다.

반려견 몬돌이를 향한 애정에서 시작된 그의 마음이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살리는 간절한 치료행위로, 동물원 자체는 물론 동물원 바깥의 동물들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인간이 인식하고 가져야만 하는 책임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하는 일련의 과정엔 '돼지나 닭'이 표상하는 누군가의 비웃음도 비집고 들 틈이 없다.

모순에 아파해 본 모든 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어떤 잘못과 실수를 해왔는지, 왜 현재로서는 동물원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공간인지, 현재의 동물원이 동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전하려 했다.

그래서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아직은 마음이 불편한 곳이더라도, 훗날에는 더 이상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이 내몰리지 않기를, 생명이 상품처럼 소모되지를 않기를, 그러다 마침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편안한 동물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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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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