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들, '특별법' 거부권 예고에 눈물의 절규

"피해주택에서 20년 살라는 배려? 인생 계획 포기하란 소리"

"저는 어제도, 그제도 피해자 분들이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것보다, 아무도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는 그 고립감!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그런 고립상태가 지금 피해자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세사기 범죄를 저지른 악성 임대인만큼이나 나쁜 건, 국가의 부동산 정책실패를 인정하지도 않고, 국민의 생명과 최소한의 주거권을 거부하는 윤석열 정권입니다."

전세사기특볍법 개정안이 지난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일이건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안도할 새 없이 용산으로 달려갔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특별법의 국회 통과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제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29일 오후로 예정된 임시 국무회의에 앞서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거부권 행사 말고 피해자들의 구조 요청에 응답해달라"며 마지막으로 눈물로 호소했다.

이철빈 전세사기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지만, 보증금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 전세지옥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며 "그런데, 저와 피해자들은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하자마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소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공동위원장은 "한시가 급한 피해자의 삶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부, 여당, 대통령실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며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않고, 성실히 세금내며 살아온 국민들을 세금 낭비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뒤로는 건설사와 은행에 수십조 원을 퍼부은 이 정권은 전세사기 피해자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그는 특히 국토교통부가 전세사기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불과 하루 전 내놓은 자체 구제책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 안정 지원 강화방안'은 한마디로 피해 주택에 오래도록 거주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LH가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한 후 그 주택을 공공임대로 피해자에게 장기 제공한다는 것인데, 10년간 피해자에게 추가 임대료 부담 없이 살게 하고 이후에도 계속 거주를 희망하면 추가로 10년을 더해 총 20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는 선(先) 구제 후(後) 회수'를 골자로 하는 전세사기특별법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이 공동위원장은 "정부에서 피해자를 '배려'해 피해주택에서 최장 20년간 살도록 하겠다고 한다"면서 "청년인 피해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장·결혼·출산 등 여러 인생계획을 모두 포기하고, 시설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피해주택에서 거액의 대출채무에 깔려 수십 년을 홀로 늙어갈 예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저출산, 인구소멸의 시대? 너무 당연하다"면서 "지금 눈 앞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며 죽어가는 피해자를 살리지 않는데,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다니 말도 안 된다. 이 사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현 정부는 지난 1년간 제대로 된 특별법 보완 입법이나 대책도 내놓은 적 없으면서 개정안 표결 전날 기습적으로 정부 대책을 발표하며 피해자를 우롱했다"며 "피해자와 제대로 이야기 나눈 적도 없으면서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거짓말하고, LH 매입에는 어차피 국가의 예산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돈 한푼 안 들이는 것처럼 국민을 기만한다"고 했다.

또 "특별법 개정없이 시행 가능한 것이라면 진즉 했어야지, 왜 희생자가 8명이 나오는 동안 기다렸느냐"며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면서 찔끔 대책 내놓는 것을 보면 이 정권은 사람의 목숨값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공동위원장은 "이제 저희 피해자들은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 버림받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 파업의 시간에 들어갈 것 같다"면서 "피해자대책위는 포기하지 않고, 전세사기 문제해결을 위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뛰어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공동회견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가 의결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즉각 공포함으로써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면서 "만약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피해자들의 숨 쉴 구멍조차 막아버리는 잔인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인 태도와 국토부가 사실상 거부권을 염두에 둔 지원책 발표로 피해자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구조요청에 즉각 응답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즉각 공포하라"고 촉구했다.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공포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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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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