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尹 면전서 특검·민생지원금 '15분 전면 압박'

李 "거부권 사과하고 채상병 특검 수용…가족 등 의혹 정리하자"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오후 2시 회담에 돌입했다. 4.10 총선 이후 여야의 역관계가 달라진 가운데, 대통령과 입법부 실권자가 민생과 누적된 정치 현안들을 놓고 벌이는 담판이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차담 형식으로 시작된 이번 회담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선거운동 하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다들 건강 회복하셨나"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용산에 와서 여러가지 얘기 나누게 돼서 반갑고 기쁘다"면서 "편하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씀 하시라"고 했다.

이 대표가 "오늘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가 좋다"고 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님과 만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다 고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날씨를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재명 "여기 오는데 700일국정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

화기애애한 시작 분위기와 달리 이 대표가 모두발언용으로 준비해 꺼내 읽은 A4용지에는 전방위적인 국정 기조 전환 요구가 담겼다.

이 대표는 "오다보니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데 700일이 걸렸다"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년 여 만에 이뤄진 첫 회담에 대한 뼈있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약간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떄가 가장 빠르다"면서 "오늘 이 만남이 우리 국민들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드리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며 "대통령의 성공, 정부 성공이 국가와 국민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 뜻을 잘 따르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 삶이 어렵다"면서 "국민들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건 대통령께서도 절감하실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또한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서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이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것 아닐까 이런 걱정들을 하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는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에 대해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고도 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소위 말 폭탄이 진짜 폭탄되는거 아닌가 이런 걱정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 나타난 국민 뜻이 잘못된 국정을 바로 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국민들께서는 선거를 통해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와 안전을 지키라고 명하셨다"고 했다.

또한 "민생의 어려움과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유능한 국정, 모두가 법앞에 평등한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정, 편가르기나 탄압이 아닌 소통과 통합의 국정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주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의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국민들의 말씀에 귀기울여 주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민생회복지원금 수용해달라추경 시 R&D 예산 복원도 함께하자"

특히 이 대표는 민생 경제 해법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25만 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이 대표는 "민간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며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민생회복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거듭 "지역화폐로 지급을 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13조 원의 재원 마련을 위해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R&D(연구개발)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가능하면 민생 지원을 위한 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료개혁 쟁점과 관련해선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다.

다만 "의정 갈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어서 꼬인 매듭을 서둘러 풀어야 될 것"이라며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그리고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전공 필수 지역 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서 대화와 조정을 통한 신속한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정부도 이미 증원 규모에 대해서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민주당 제안했던 국회공론화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연금개혁에 대해선 "대통령께서 정부, 여당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개혁안 처리에 나서도록 독려해 주기를 바라고,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하고 채 상병 특검·이태원 특별법 수용해달라"

이 대표는 이어 "대한민국은 삼권분립 국가"라며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정 업무 수행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어렵게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서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 또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조치들은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시면 참으로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나 또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며 "채 해병 특검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며 우회적으로 영부인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 의혹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결단도 촉구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간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사과 메시지를 내고 각종 특검 수용을 약속할지는 불투명하다.

이재명 "국민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면 진심으로 돕겠다"

이밖에 이 대표는 저출생,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먼저 "저출생의 핵심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따라서 그 대책은 불안의 해소"라며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저출생 대책으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혼, 출산, 양육, 교육, 취업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기후 위기, 그리고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이해서 재생에너지 정책의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만 구매하겠다는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춰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력에도 조금 더 관심 가져 달라",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만으로는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특히 한일 관계도 언급했다. 그는 "독도, 과거사, 핵오염수 같은 대(對)일관계 문제에서 국민의 자긍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인사 때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서 국정을 운영하겠다',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언급을 상기하며 "이 같은 초심을 잊지 않고 잘 실행하시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님과 정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두려워하고 존중한다면 대통령과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서 돕겠다"며 "발목 잡기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으로 국민에게 편안함과 희망을 만들어 드리면 좋겠다"고 했다.

약 15분 가량에 걸친 이 대표의 모두발언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다"며 "평소에 이 대표와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부터 각종 대형 의제를 망라해 제안한 만큼, 1시간으로 예정된 이날 회담은 연장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 측은 천준호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회담에 배석했으며, 배석자 없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독대하는 시간이 마련될지도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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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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