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양당제인 한국 정치판의 속성을 감안하면, 선거 승리 전략에서 상대방에 비해 비교 우위를 점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국민의힘에선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윤핵관'의 상징인 장제원이 불출마했고, 표면적으로 공천을 주도하고 있다는 한동훈이 지역구 출마를 포기했다. 민주당은 어떤가?
한동훈을 황교안에 비교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놀랍게도 지금 황교안의 길을 가려는 것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은 나아가 '윤석열의 길'을 걸어가려 하고 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요인들 중 하나는 '오만한 야당' 덕이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야권 차기 주자 지지율 1위를 찍으며 부상한 황교안은 기세등등했다. 스스로 '미래통합당'을 창당해 당색을 '황교안 색'으로 바꿨다. 공천 과정에 깊숙히 개입한 당대표 황교안은 김형오 당시 공관위원장과 갈등을 빚었고, 미래한국당(위성정당) 비례 공천 과정에서 '친황'을 내세운 극우 인물들을 발탁했다. 최악의 장면 중 하나는 황교안이 공천 결과를 뒤집고 자신의 측근 민경욱을 공천하라며 공관위에 압력을 가한 장면이었다. 황교안은 '사당화'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당시 '전광훈'과 같은 자들이 공천에 개입하려고도 했다.
야권은 '차기 주자 황교안'을 내세워 코로나19 상황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한 여당을 공략했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대패였다.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2020년 총선 당시의 여당(민주당)에 비교할 게 아니라, 정권 심판론을 내걸었던 당시 야당(미래통합당)에 비교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2022년 대선 과정을 보자. 당시 윤석열과 경쟁했던 국민의힘 인사들이 어떻게 됐는지 다 알고 있다. 유승민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윤심'을 업은 후보에 밀려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친윤계는 '공정한 경선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그랬을 수 있지만, 유권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윤석열에겐 '정적을 제거했다'는 이미지가 씌워졌고, 유승민은 지금 유폐 상태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유승민 제거'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끝까지 따라붙는 레테르가 될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어떤가. 박용진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과 경쟁했던 경쟁자다. 박용진이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당이 판단 기준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뒷말은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강북을 지역구에서 박용진의 경쟁자는 정봉주다. 정봉주는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민주당이란 희한한 정당을 만들었던 해당 행위 전력자다. 그는 개인 유튜브 방송에서 시청자에게 '개XX' 등 '욕설'을 퍼부었던 인물이며,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나를 시정잡배, 개쓰레기로 취급했다"고 비난하던 자다. '열린민주당'을 창당해 더불어시민당의 표를 잠식했던 그런 자가 지금 '친명'을 팔고 있다. '이재명이 함량 미달의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대선 경쟁자를 제거하려 한다'는 서사는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건 윤석열과 황교안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친명·비명' 프레임은 이미 강력하게 형성돼 있다. 그게 보수 언론의 악의적 프레임 전략이든 어쨌든간에, '무도한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란 이재명의 서사는 '강력한 사당화'의 권력자로 바꿔치기당한다. 한번 형성된 프레임은 견고하다. 그리고 이재명은 '새술은 새 부대에'와 같은, 상대편이 원하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발언을 스스로 내놓고 있다. 냉철함을 잃은 것인가? 이제 이재명이 할 일은 '사당화가 아니다', '자객 공천이 아니다'라는 해명으로 남이 만든 프레임 안에 갖힌 채 7주 남은 총선 캠페인 기간을 보내는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16년 총선을 보자. 당시 민주당이 1당을 차지해 국회의장 직을 확보한 것은 박근혜 탄핵의 가능성을 열어제친 일이었다. 그때 상대 당은 김무성의 '옥쇄 저항'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사당화'의 프레임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그 총선에서 1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당(민주당) 공천 관리자가 '차기 대선주자'가 아니라 사당화 논란을 불식시킨 제 3의 인물(김종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컨대 지금 이재명이 공천을 관리하고자 한다면 '친명'을 공천하려는 공관위를 견제하고 공천 주도자(이재명) 희생을 부각시키는 '역발상'에 기반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상대의 '프레임'을 깰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재명은 과거의 교훈에서 뭔가 배울 수 없는 정치인이 된 것 같다. 이재명은 자신이 주관하는 공천이 공정하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재명 외에 아무도 그걸 믿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재명식 공정'의 역설이다. 이미 기울어진 프레임 속에서 '공정'은 '이재명 사당화' 인상을 굳힌다. 이를테면 다선이라는 이유로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당장 6선을 노리는 '신명' 조정식 같은 인물의 경우 무난한 공천이 예상된다면, 그 공천 결과를 누가 납득하겠는가?
양당 대표도 비교해보자. 총선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국을 뛰어다니는 한동훈과 지역구에 매여 '두 개의 전장(인천계양을과 전국 선거)에서 뛰는 이재명은 비교될 것이다. 당장 '인천 계양을' 시장통에서 벌어지는 후보 태도에 관한 사소한 시빗거리가 전국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이슈로 번질 수도 있다. 이재명은 '두 배의 리스크'를 안고 선거를 뛰려는가?
다시 말하지만 선거 승리 전략에서 상대방에 비해 비교 우위를 점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예측 불가능성이다. 당 내에선 '친명'대 '반명' 구도에서 예측 불가능성이, 총선에선 '국민의힘'대 '민주당' 구도에서 예측 불가능성이 나와야 비로소 유권자들은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재명은 보수 진영이 만든 '사당화' 프레임에 그대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과거 이재명의 장점은 '예측 불가능성'과 '파격'이었다. 이재명에 호의적인 한 언론계 원로 인사는 "이재명이 '매력'을 잃은 정치인이 돼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력'은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 이재명을 만들어가는 건 그가 행해왔던 무수한 행동과 말들의 누적된 '아우라'다. 언제부턴가 그런 것들이 더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다. 이재명의 목표가 '친명 국회의원'을 많이 만들어 '대선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게 아닐 것이다. 본인 나름대로의 진정성으로 '공천 개혁'을 하고 '정권 교체의 교두보'로 만들고자 하는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선한 의지'라는 건 없다. 유권자는 보여지는 대로 해석한다. 이재명은 이런 지적과 비판들을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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