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부의 회계공시 요구 거부해야 한다

[노조의 자주성을 지키자] 정부 회계공시 개악 수용은 조합원에 대한 모욕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은 노골적이고 전방위적이다. 정부가 민주노총에 '불법'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 중 하나가 회계공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대중조직으로서 모든 내역을 공개할 뿐 아니라 10원 하나도 유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럼에도 회계공시를 들이밀며, 국가권력이 노조의 운영과 조합원 명단까지 볼 수 있는 회계공시를 할 수 있도록 노조법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악했다. 명백한 결사의 권리, 자주성 침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2023년 10월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에 비정규직운동 연대체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잘못된 결정을 다시 바로잡기 바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제언한다.

회계공시는 의무가 아니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부패를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노동조합을 부패집단으로 취급했다. 그러면서 회계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노조법과 소득세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탄압과 통제를 위한 시행령 정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9월 21일 15차 회의에서 '탄압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회계공시를 전면 거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10월 24일 중집은 갑자기 회계공시 수용을 결정한다. 소리 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꿨다.

중집의 회계공시 수용 결정, 동의할 수 없다

말문이 막힌다. "이게 뭐야?", "왜?" 여기저기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의아해 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퇴진' 투쟁을 결정해놓고, 정작 싸워야 할 시기에 발목을 묶는 결정을 내렸다. 싸우지 않는 것도 화가 나는데, 무릎까지 꿇는 결정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순식간에 1000인 이상 노조·산하조직 739개 중 675개가 회계를 공시했다. 한국노총은 94%, 민주노총은 94.3%, 상급단체가 없는 기타 노조는 77.2% 참여했다. 전체 91%가 공시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조에 대한 망나니 칼춤을 추던 정부는 신이 났다. 하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노조도 여러 곳 있다. 조합원 2091명인 당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회계공시 거부를 결정했다.

작년 연말 민주노총과 일부 산별노조에 임원 선거가 있었다. 회계공시 문제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선거기간 내내 후보들에게 회계공시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27개 노조와 단체가 참여했고, 1294명의 조합원이 서명했다. 그리고 임원선거 시기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들에게 회계공시 입장을 질의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당선된다면 회계공시 수용 여부를 원점에서 다시 토론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도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 정책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답했다. '회계공시 수용은 문제가 있다'고 모두 답변했다.

노조 자주성 침해하는 회계공시 수용, 조합원에 대한 모욕이다

회계공시는 자주성 침해다. 민주노총은 자주적, 민주적 운영을 위하여 조합비와 회계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은 30년간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왔다. 조합원 누구도 민주노총을 부패한 집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부가 노조의 회계와 운영을 파악하고 개입하는 것은 명백히 자주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투쟁의 정신이 실종됐다. 민주노총은 투쟁하는 조직이다.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엄혹한 시절에도 구속과 해고를 각오하며 투쟁했다. 양경수 위원장과 중집은 말로는 투쟁을 외치고, 투쟁을 회피하는 결정을 했다.

중집은 자주성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린 변명 중 하나로 '조합원의 이익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다시 말해 회계공시를 하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을 모욕하지 마라. 매달 조합비 5만 원을 낼 경우, 회계공시를 거부하면 연 9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못 본다. 그 돈 때문에 자주성도, 투쟁성도 포기하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조합원들은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 아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투쟁을 결정하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함께 싸운다. 노동자들의 자존심은 돈으로 바꿀 수 없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거리에서 삶을 걸고 수년씩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천지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정부는 노동개혁의 결실이라며 회계공시 수용 결정을 대환영했다.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는가. 부끄럽고 치욕스럽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관료적 결정이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중집에서 단번에 결정해도 되는가? 중집은 조합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토론과정도 없이 회계공시 수용 여부를 결정했다. 김명환 집행부의 노사정 합의 추진이 오버랩된다. 그때와 다르지 않다.

회계공시, 전면 거부하자

2월 5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린다. 비정규직이제그만은 정기대대에서 ‘회계공시를 전면 거부하자’는 현장발의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조합원들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

▲지난해 7월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노동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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