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이 미국 등이 경고에도 최대 규모 공격을 가하며 미국이 예멘 내부 공격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genocide)을 저지른 혐의로 제소된 이스라엘에 대한 심리가 11~12일(현지시각) 진행돼 주목된다.
10일(이하 현지시각) 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기자들에게 "바로 어제 (홍해에서) 무인기(UVA), 미사일을 동원한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을 받았다"며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후과가 있을 것"이라며 후티 반군 쪽에 경고했다.
같은 날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홍해 항행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러한 공격이 계속될 경우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적절한 다음 단계에 대해 긴밀히 조율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3일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4개 정부는 공동 성명에서 "후티가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최후 통첩'을 내보낸 바 있다.
전날 후티 반군은 홍해에 대규모 무인기 및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9일 오후 9시 15분께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예멘의 후티 장악 지역에서 홍해 남부를 향해 이란 설계 무인기 18대와 대함순항미사일 2발, 대함탄도미사일 1발을 이용한 공격에 나서 모두 격추했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이것이 홍해 항로를 향한 후티의 26번째 공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후티 반군 쪽은 10일 성명을 내 전날 공격이 지난달 말 미 해군의 공격으로 후티 반군 선박 세 척이 침몰하고 선원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매체는 반군 쪽이 "시온주의 단체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미국 선박을 겨냥해 대규모"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지만 이것이 9일 공격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군 당국자들을 인용해 공동성명 등을 통한 경고가 미 정부가 예멘의 후티 영토에 대한 보복 공격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군 당국자들은 매체에 지금까지 미국은 예멘의 불안정한 휴전 상태를 흔들지 않기 위해 예멘 내 후티 반군 기지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왔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예멘 내 미사일 및 무인기 기지와 후티 반군이 선박 공격에 사용하는 고속정을 보관하는 시설을 타격할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2014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정부군에 공세를 가하며 시작된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은 수도 사나를 비롯한 북부를 장악했다. 지난해 3월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며 대리전 성격이 짙었던 예멘 내전에도 임시 휴전이 이어졌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더 이상 합의 없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정부도 후티 반군에 대한 서방의 추가 군사 행동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랜트 섑스 영국 국방장관은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전날 후티 반군의 대규모 공격 관련 질문을 받고 서방 동맹들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러한 공격이 "계속될 수 없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며 "이 공간을 지켜보라"고 답했다.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상업용 선박에 대한 후티 반군 공격을 규탄하고 즉각적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15개 이사국 중 11개국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러시아, 중국 등 4개국은 기권했다.
한편 11~12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벌인 행위가 집단학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심리가 열려 주목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해 12월 말 집단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ICJ에 제소하며 이스라엘의 "행위와 부작위"가 "팔레스타인 국가, 인종, 민족 집단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집단학살의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공습을 통해 가자지구를 직접 타격하는 것과 민간인 피해 방지에 실패한 것을 동시에 지적한 것이다.
집단학살이라는 개념 자체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에 의한 조직적 살해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 라파엘 렘킨에 의해 1944년 개발된 용어라는 고려하면, 이스라엘이 해당 혐의로 ICJ에 제소된 것은 역설적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의하면 지난해 10월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3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가자지구 인구의 1%에 해당하는 2만 3357명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숨졌다.
이스라엘 쪽은 "집단학살을 자행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마스"라며 반발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말 "이스라엘군은 가능한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남아공의 주장을 반박한 바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ICJ 심리 하루 전인 10일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을 다룬 '하마스 학살: 반인도 범죄에 대한 기록'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이 숨졌고 240명이 가자지구로 납치됐으며 그 중 130명 가량이 아직 인질로 억류돼 있다.
ICJ 판결은 형식적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집행 수단은 마땅치 않다. 2022년 3월 ICJ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군사 작전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상징적인 데 그쳤다. 영국 BBC 방송은 남아공은 ICJ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을 즉시 중단하라고 명령하길 바라지만 이스라엘은 그러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무시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짚었다.
다만 국제 법원 및 재판소 전문가인 남호주대 법학 강사 줄리엣 매킨타이어는 <워싱턴포스트>(WP)에 ICJ가 군사 작전 중지와 같은 분명한 명령보다 가자지구에 구호품 지원을 보장하는 것과 같은 "훨씬 더 미묘한 명령"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그러한 결정이 미국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이스라엘에 가하고 있는 압력을 키울 명분은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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