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IS "우리가 이란 폭탄 배후"…무책임한 '치킨 게임' 중동 위기 키운다

IS, 84명 사망 이란 폭발 배후 자처…미, 바그다드 한복판서 친이란 민병대 수장 제거하며 지역 재차 자극

4일(이하 현지시각)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전날 84명이 숨진 이란 폭탄 테러 배후를 자처했다. 이스라엘 국방 장관은 전후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기구가 통치할 것이라는 구상을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IS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날 이란 남동부 케르만에서 열린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 2명의 전투원이 몸에 묶은 폭발물을 장치한 벨트를 터뜨린 "이중 순교 작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수니파인 IS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이단으로 본다. IS는 지난 2017년 이란 의회 건물과 이란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무덤에 대한 침입과 폭탄 공격으로 적어도 12명이 숨진 사건, 2022년 이란 남부 사원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15명이 숨진 사건에서도 배후를 자처한 바 있다.

IS는 이번 테러를 통해 가자지구 전쟁과 레바논, 홍해에서의 확전 우려로 역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이번 테러로 혼란을 부추기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 아론 젤린은 IS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가자지구 전쟁이 자신들이 잠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역내 분쟁으로 확대되길 바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단 <뉴욕타임스>는 미국 당국자들이 IS가 책임을 이스라엘에 뒤집어 씌우거나 전쟁을 확대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오랜 적을 공격할 기회를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폭탄 공격의 배후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 확전 긴장을 고조시켰던 이란에선 IS의 주장에 대해 일단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란 국영 언론 <IRNA>는 IS가 배후를 자처했다는 소식을 보도했고 테러 방식에 관해서도 폭탄이 원격으로 터졌다는 초기 추정과는 달리 자살 폭탄이 이용됐다는 조사 결과를 소식통을 인용해 게재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긴밀히 연계돼 있고 이란 의사 결정자들 사이 내부 논의에 정통한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 이란이 테러리스트나 다른 조직이 공격 배후로 나선다고 해도 이스라엘이 개입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 테러 사망자는 앞서 95명으로 발표됐지만 중복 집계로 인해 84명으로 조정됐다. 부상자는 284명에 이른다.

역내 긴장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4일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친이란 민병대 수장을 제거하며 이 지역을 또 다시 자극했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 시각으로 4일 정오께 미군이 이란의 대리 조직 하라카트 알누자바의 지도자였던 무쉬타크 자와드 카짐 알자와리(아부 타크와)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알자와리가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고 계획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필요하고 비례적인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공격이 사전에 이라크 정부에 통보됐냐는 질문에 "외교적 사안"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이라크 정부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 대해 "이라크 주권과 안보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테러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규탄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매체는 최근 몇 주 간 미군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들의 70회 이상의 공격에 수차례 대응했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바그다드 내부를 타격하는 것은 피해 왔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란과 연계된 이라크 정당들이 이라크에 주둔 중인 2500명 가량의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최고위 지도자 중 하나인 살레 알아루리가 이스라엘이 배후로 추정되는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살해되며 역내 긴장이 높아젔는데, 이 사건의 불씨도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알아루리의 장례식에 수천 명의 애도자들이 참여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폭탄을 떨어뜨려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사건에 대한 "처벌"을 공언한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5일 관련해 추가 연설을 내놓을 예정이다.

홍해에서 팔레스타인 지원을 명목으로 이스라엘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는 선박을 공격 중인 예멘 후티 반군은 미국의 최후 통첩에도 4일 또 다시 공격에 나섰다. <AP> 통신을 보면 미 해군 중동 작전 책임자인 브래드 쿠퍼 미 해군중부사령부(NAVCENT) 사령관은 4일 예멘 후티 반군 통제 지역에서 출발한 무인수상정(USV)이 홍해의 미 해군 및 상업용 선박에 몇 킬로미터 안으로 접근한 뒤 폭발했다고 밝혔다. 이 공격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이 후티 반군에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공동성명을 낸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고려할 때 예기치 않은 오산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 중동·북아프리카국장 유스트 힐터만은 <워싱턴포스트>에 "이들은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치킨 게임"이라며 "모든 오산, 의사소통 오류, 우발적 공격이 대형 확전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란다 슬림도 매체에 각각의 사건 자체가 전쟁으로 연결되진 않겠지만 누적되고 연이어 일어나면 큰 전쟁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4일부터 다시 중동 순방에 나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분쟁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각국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이 4일 언론 브리핑에서 밝혔다.

한편 전후 가자지구 통치를 두고 미국과 대립했던 이스라엘 쪽에서 통치를 "팔레스타인 기구"에 맡기겠다는 구상이 나왔다. 4일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가디언>을 보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향후 전쟁 및 가자지구 운영에 대한 구상을 담은 성명에서 "가자지구 주민은 팔레스타인인이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행위나 위협이 없다는 전제 아래 팔레스타인 기구가 (가자지구를) 책임지게 된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벌일 권리는 보유하지만 이스라엘 민간인이 가자지구에 들어가진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주변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과 가자지구 주민 이주를 우려하는 가운데 이를 불식시키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이는 갈란트 장관의 안으로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최근 극우 성향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전쟁 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이주시키고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미국과 이스라엘 당국자들을 인용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보좌관들이 "개혁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궁극적으로는 가자지구 통치를 맡아야 한다는 안에 대한 지지를 개인적으로는 표명했지만 총리 자신은 극우를 의식에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4일(현지시각) 후티 반군과 연계된 예멘 해안경비대가 바다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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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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