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100 빌려 봐요"…고금리·물가 시대 서민금융 현실은?

[경제뉴스N시선] 30만원 급전 필요한 사람

지난해 전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1.2% 증가했다. 그런데 물가는 3.6% 상승했고, 먹을거리 물가만 따져도 6%대 상승했다.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가계 실질소득이 동시에 감소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의 권고사직이나 임금체불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가계에 소비할 돈이 없는 시대.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급한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을 받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신용평점이나 소득 기준 등의 이유로 제1, 2금융권 대출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최근 연체율이 상승하고 부동산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과 저축은행은 신용대출 문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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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과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금융 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은 어떨까. 미소금융은 자영업자를 위한 창업자금이나 운영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새희망홀씨대출은 연소득 3500만 원 이하(신용등급 무관) 또는 연소득 4500만 원 이하면서 신용평점 하위 20%라는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위한 은행 대출이다. 소득 상위 기준이 있지만 소득이 없거나 너무 낮아도 대출을 거절당한다. 기존 대출이 많거나 연체 기록이 있어도 거절당한다.

새희망홀씨대출을 제2금융권으로 옮겨놓은 것이 햇살론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이 90%를 보증하는 조건으로 저축은행들이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준다. 햇살론은 '근로자 햇살론', '햇살론15', '햇살론뱅크', '햇살론유스', '햇살론카드' 등으로 나뉘는데, 중·저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15는 금리가 15.9%에 이른다. 원래는 17% 금리의 햇살론17이었는데 그나마 금리가 인하된 것이다.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이라고 하지만 은행권 대출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금리 차이가 까마득하게 크다. 그런데 이 햇살론도 문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직업 및 소득이 있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으며, 기존 대출이 많거나 최근에 연체 기록이 있으면 문턱에 걸린다.

이처럼 햇살론 문턱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 2022년 9월부터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햇살론15 대출을 거절당한 신용평점 하위 10%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을 제공한다. 1인당 최대 1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최초 대출 때 한도는 500만 원.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매달 초에 빛의 속도로 한도가 소진된다.

저신용자에게 최대 100만 원을 긴급 대출해주는 소액생계비대출도 작년 초 출시하자마자 신청이 몰렸다.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와 콜센터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소액생계비대출이) 이 정도까지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줄은 저희도 생각 못 했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 고객지원 담당자의 말이다. 제2금융권조차 이용할 수 없는 신용평점 하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대출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의 일부. ⓒ기획재정부

금융 자원의 배분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현장의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서민금융 대출 한도 증액 조치를 올해 말까지 1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을 뿐, 서민금융의 공급 자체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서민금융을 "작년(연초계획 9.8조 원)과 유사한 수준"으로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35조 원. 부동산PF 연착륙을 위해 공급하는 유동성은 85조 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투입하는 돈이 가장 적다.

숫자가 나온 김에 부자감세 액수도 나열해보자. 공시가격 하락과 윤석열 정부의 공정시장가액비율 하향으로 종합부동산세가 인하되어 2023년에 발생한 세수 감소가 약 2조 원(기획재정부 세입 예산 전망). 정부가 연말에 단행한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로 발생할 세수 감소 예상액은 최소 7000억 원(기재부 주장).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금투세 도입 백지화가 실행될 경우 포기하게 되는 세수가 연평균 1조3000억 원(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 추산). 부자감세만 안 해도 서민과 취약계층 보호에 4조원을 추가로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 의지는 확고하다.

계속되는 '서민경제' 경고음… '카드 돌려막기' 역대 최대치 기록 (23.12.24 뉴스1)

'독이 든 사과' 카드사 리볼빙…연체 막아준다더니 이자폭탄 (23.12.11 SBS)

미래보다 오늘 절실한 서민.. 보험 해약·약관대출 늘었다 (23.11.22 서울신문)

[연합뉴스TV 스페셜] 309회: "돈 빌릴 데 없어요" 전당포 찾는 서민 경제(24.01.07 연합뉴스)

"신용평점 무관 급전대출 가능"…어르신들 이런 말 믿지 마세요 (23.11.22 SBS)

현실에서 정책금융에도 기댈 수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할까? 등록 대부업체를 찾거나,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거나, 카드 돌려막기에 의지한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들은 조달금리 인상, 법정 최고금리 인하, 연체율 상승 등의 이유로 신용대출 영업을 줄이는 추세라고 한다. 금감원이 발표한 '2023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6월말 기준 등록 대부업체 이용자 수와 대출 규모가 모두 감소했다. 대부업체 이용자 수가 감소한 것이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대출 수요가 감소한 결과라면 긍정적인 일이겠지만, 지금의 경제 현실에서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층과 저신용자들이 합법적인 대부업 시장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생계비 마련이 여의치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카드 리볼빙이다. 신용카드사가 제공하는 리볼빙 서비스의 정식 명칭은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이다. 이번 달에 결제해야 할 카드 대금의 일부만 카드사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하는 대신 연평균 16%가 넘는 수수료를 낸다. 신용평점이 낮으면 수수료율은 더 높아진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면 DSR 규제를 피해 대출을 받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당장 카드대금 연체를 막고 신용등급 하락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달 연속으로 리볼빙을 이용하면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어서 위험이 따른다.

▲8대 카드사의 카드대출․결제성 리볼빙 수수료율. ⓒ안진이

최근 리볼빙 잔액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여신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11월 신한·삼성·현대 등 8개 카드사의 리볼빙 이월 잔액은 7조5115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달 만에 419억이 늘어났다.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도 연중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당장 카드대금을 내기 어려운 서민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서민 급전 창구인 보험계약대출 잔액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1~8월 생명보험사들이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 해약환급금은 30조819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51.9% 증가했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고, 보험계약대출도 지난해보다 23%나 증가했다.

어떤 사람들은 전당포(법적으로는 대부업체로 분류)에 금, 보석, 전자제품 등을 맡기고 돈을 빌린다. 43년째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송모씨는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전당포 고객 중에는 "카드 막는 사람"이 제일 많다고 증언한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가 많다고 한다. 이야기 속에나 있는 줄 알았던 전당포가 성업 중이라는 뉴스는 지금 생활고를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케 한다.

또다시 질문. 신용대출도 정책금융도 이용할 수 없고, 카드 리볼빙도 다 끌어다 쓰고, 해약할 보험도 남아 있지 않고, 대부업체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그 지푸라기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대출중개 사이트 중 하나인 '대출○○'라는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이 '대출 문의' 게시판에 양식대로 글을 쓰면 대출상담을 원하는 업체들이 글 밑에 업체명과 링크를 남긴다. 사람들이 대출을 받으려고 남긴 글의 일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휴대폰 미납 때문에요." (24/01/07)

희망금액 62만 원, 부산, 직업 있음, 36세 여성

"급하게 100 빌려 봐요." (24/01/06)

희망금액 100만 원, 강원, 직업 있음, 38세 남성

"30만 원 급전 문의요." (24/01/05)

희망금액 30만 원, 경기, 직업 있음, 46세 남성

"퀵서비스 근무자 100 대출." (24/01/05)

희망금액 100만 원, 충북, 직업 있음, 34세 남성

"기대출 2000만 원 무직 당일대출." (24/01/03)

희망금액 400만 원, 경남, 직업 없음, 26세 여성

"연체자 급전 200 문의." (23/12/31)

희망금액 200만 원, 인천, 직업 있음, 25세 여성

전국 각지에서 20대부터 40대의 남녀가 올린 글에 대부업체들이 연락처를 달아놓았다. 글 1개당 3개~9개 업체가 달라붙는다. 이 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가 훌쩍 넘어가는 고금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언론이 '불법 사금융'이라 부르는 위험한 영역이다. 대부분 200만 원 이하의 긴급 생계비가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다른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생계비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는 손을 내밀어주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까. 서민금융의 역할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대답이다. 한편으로는 소액의 생계비나 주거비가 없어서 힘든 사람들에게 대출을 계속 늘려주는 것만이 해법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지금 서민과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코로나 때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심각하다면 긴급 생계비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자주 개최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는 바로 이런 주제를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를 바라보는 이 정부의 시각 자체가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물가는 하향 안정세, 경기는 수출 중심으로 회복세 전환, 고용은 양호,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완화되며 위기 진정 국면 진입"이라고 밝혔다. 최상목 신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윤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 추진한 결과 큰 위기 없이 혹독한 겨울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일까? 믿고 기다리면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다 같이 성장하게 될까? 우리의 체감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성장을 못 해서 문제라기보다 성장의 과실을 고르게 분배하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었던가. 그 문제가 누적되어 이제 성장 동력마저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달리 의지할 데가 없어서 전당포로 발길을 돌리는 청년들을 생각해서라도 경제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수출 대기업을 지원할 테니 서민들은 각자도생하며 기다리라는 식의 정책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2024년이 되기를 바란다.

▲정책금융에도 기댈 수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할까? 등록 대부업체를 찾거나,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거나, 카드 돌려막기에 의지한다. 사진은 3일 서울의 한 은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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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더불어삶 회원들과 함께 해고노동자 지원, 인터뷰, 강연 기획 등 노동 현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어서 경제 뉴스와 각종 문헌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더불어삶 뉴스레터 구독 링크 https://livetogether.substa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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