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다시 온다면, 장애인 투쟁 현장으로 오실 것"

'성소수자 축복' 이동환 목사, 성탄절 맞아 전장연과 예배행사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 억울한 사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오늘날 오셨다면 절박한 기다림이 있는 이곳,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은 이동환 목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 현장을 찾아 이들의 이동권 투쟁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 목사는 25일 오전 서울지하철4호선 혜화역 인근 공터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 크리스마스' 예배선전전을 개최하고 "우리 시대의 베들레헴은 어디인가" 물으며 "예수께서 오늘날 오셨다면 절박한 기다림이 있는 이곳, 이동권 투쟁 현장으로 오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소재 도시 베들레헴은 기독교에서 예수가 태어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이 목사는 "장애인들이 내동댕이쳐지는 혜화역 승강장, 해고 노동자들의 천막, 이태원 유족들이 바닥을 기는 길바닥, 세월호 유족들이 10년째 눈물을 뿌리는 그곳, 가게에서 쫓겨난 이들의 농성장, 일상이 차별과 배제인 성소수자들의 삶" 등을 '이 시대의 베들레헴'으로 호명하며 "가장 억압이 심하고 폭력적인 곳이 바로 역설적이게도 새 희망을 열어가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특히 지난해부터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와 경찰 측을 두고 "장애인들의 지하철 탑승을 막더니 이제는 침묵시위와 예배드리는 것조차 불법이라며 폭력적 연행을 일삼고 있다"며 "날이 갈수록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폭압은 심해져 간다"고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애초 이날 오전 11시께 혜화역 역사 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예배에 불허 입장을 견지,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장애인 활동가 및 종교인들과 20분가량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이들을 강제로 퇴거시켰다. 이 과정에서 몇몇 활동가들은 강제연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최근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특별교통수단 예산이 국회 본회의 예산안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증액에 그친 상황과 관련해서도 “(국회와 정부는) 재벌의 법인세는 십 수조 원이나 깎아주면서 최소한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예산은 한 푼도 책정 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기약 없는 절박한 기다림 속에 있다"고 비판했다.

전장연 측은 앞서 2024년도 예산안상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예산에 변동이 없자 지난 22일 '내년 1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재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는 21일 본회에에서 해당 예산과 관련 9억 7500만 원 규모의 증액에 합의를 봤지만 이는 "특별교통수단을 운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 증액안"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장연 측의 입장이다. 이들은 해당 예산에 대해 271억 원 규모의 증액을 요구하며 국회 예산안 통과 시한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보류해왔다.

전장연은 앞서 올 7월 특별교통수단 운행 확대 정책이 시행될 때부터 2024년도 예산안 내 '특별교통수단 광역 및 24시 운행' 운영비를 두고 정부 등과 대립해왔다. 해당 정책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해 시행된 정책이지만, 전장연은 "(정책에) 운영비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기시간은 길어지고 장애인의 이동권은 또다시 제약받게 된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이후 서울시 등 관계당국과 정부 측이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는 전장연의 일부 시위 방식을 집중 공격하면서 당국과 전장연 측 대립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지난 7월 지하철 탑승 시위를 유보한 상황에도 기차교통방해·업무방해·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이후 박 대표 등은 휠체어 이용자의 버스 탑승을 시도하는 '버스 시위' 등으로 시위 방식을 변경해 이동권 투쟁을 계속해왔다.

관련해 전장연 측은 내년 1월 2일 오전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날 오후 2시부터는 국회의사당역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신년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하겠다도 전했다.

이날 현장 예배에 함께 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0년을 넘도록 장애인의 이동권을 요청했던 시민들에게 권력이 한 것은 권리보장이 아니라 탄압이었다"라며 "그 탄압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너무나 심해졌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오면서 겪은 바와 같다"고 장애인 이동권 예산 및 투쟁에 대한 정부·국회의 태도를 비판했다.

앞서 이날 오전 혜화역 역사 내 강제퇴거 조치 당시에도 현장을 지킨 장 의원은 특히 "매번 이렇게 혜화에서 경찰들에게 공사 직원들에게 들려나오곤 하지만, 결국엔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늙고 병들고 연약해져서 소멸하게 되는 인간이란 걸 알고 있다"라며 "이 사람들이 연약해졌을 때 차별받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싸우자"고 이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최한 이동환 목사는 지난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로부터 출교 판결을 받았다. 경기연회는 이 목사가 과거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에 대한 축복식을 진행해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조'했다는 이유로 출교조치를 내렸다.

▲25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 공터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및 종교인 관계자들이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 크리스마스' 예배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