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석연료, 땅 속에 버려두자

[초록發光] 한반도 에너지 전환과 우리 안의 화석연료 의존주의

예상치 못하게 남북한 정상이 만났던 2018년 '한반도의 봄'은 흔히 꿈과 같았다고들 표현한다. 봄이라는 따뜻하고 생동하는 단어가 들어갔기에 꿈이라는 비유가 적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동일한 사건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 2018년 판문점에서 남북한 정상이 상봉한 장면을 주목했을 때, 나는 두 사람이 아닌 한 물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설 때 북한 측 건물인 판문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눈에 들어왔었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우리 사회가 에너지 생산방식을 핵발전과 화석연료(석유, 석탄)가 아닌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강렬한 각성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처럼 지역 단위 분권형 재생에너지 체계를 도입하려는 전환의 실천이 전국 곳곳에서 시도되면서 더는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형 화석연료 기반 전력 생산-공급방식이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전환 정책의 철학은 널뛰기를 해왔다. 특히 보수정권은 핵발전을 "녹색성장"이나 "탄소중립"으로 포장했다. 그에 따라 핵발전이 곧 에너지 전환이라는 당혹스러운 모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 에너지 정책노선의 유동성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형 전력 생산방식을 고수하려는 고착성과 만나면서 에너지 전환의 확산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전 국토를 태양광 패널로 뒤덮는 물리적 공간의 변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중앙집권형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체계의 비중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사회세력들의 쟁투를 수반하는 권력관계의 문제이다.

다시 2018년 한반도의 봄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는 판문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보고서 전환의 공간을 휴전선 아래 한국에서만 찾지 말고, 한반도로 확장함으로써 지지부진했던 남북 교류 전환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한 기대감은 당시 에너지 전환을 연구하는 학자, 활동가들도 공통으로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가 공동으로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화두로 삼아 2년 가까이 세미나와 연구를 진행했고 최종결과물인 <한반도 에너지 전환: 탈탄소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 공동체 구상>(생각비행, 2021)을 발간했었다.

이 책은 당시 문재인 정권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마냥 호의적이지 않았다. 가령, 몽골에 대규모 풍력 및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하여 일본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아시아슈퍼그리드를 제안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이 접촉한 이후 발표된 문재인 정권의 동북아 슈퍼그리드 계획을 보자.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생산-공급 체계를 표방했다는 점에서는 에너지 전환의 철학에 가깝지만, 이 거대한 청사진은 동북아 지정학적 관계(전력망이 통과할 국가들의 상이한 정치 체제, 남북한 분단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성장주의 담론에 과도하게 경도되고, 전력망이 통과할 지역사회 및 생태계에 미칠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는 난점들을 갖고 있음을 책은 비판했다. 책의 필자들은 대안적으로 다양한 층위(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의 전환경로를 섬세하게 평가하고 전환 시나리오를 제시하려 했다.

특히, 이 책에서 필자가 제기한 논점은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역대 정권이 화석연료 의존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추진되지 못했지만 2018년 남북한 정상이 만나면서 에너지 부문의 협력 방안으로 한국의 노후화한 화력발전소들에 "평화"를 붙여 북한으로 이전시키는 계획이 고려되었다. 북한에 매장된 풍부한 화석연료를 활용한다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취지였다. 당시 진보 성향 언론은 경제성이 큰 지하자원들이 북한에 매장된 사실을 두고 '재벌이 땅 밑에 있다'는 식의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 안의 화석연료 의존주의는 한반도 에너지 전환의 활동반경을 제한한다.

▲북한은 전력에 대한 수요가 끊임없이 증대되는 속에 여러 단위들에서 생산된 전력을 최대한 효과있게 이용하고 한 와트라도 극력 절약하기 위한 사업들이 적극화되고 있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김금성 김일성종합대학 태양빛전지제작소 연구사는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는 데 중점을 두고 분산형 태양빛발전소를 창안하고 건설해 운용해왔다"며 "분산형 태양빛발전소는 설치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일정한 공간에 집중적으로 태양빛발전체계를 설치할 수 있어 전력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해에는 평양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에도 발전소들을 확대하려 한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대안적으로 필자는 북한에 매장된 화석연료를 채굴하지 말고 땅속에 내버려 두는 것을 유지하는 남북한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화석연료를 땅속에 내버려 두는 것은 탄소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화석연료가 매장된 북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생태적 파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의로우면서도 실용적인 제안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접하는 우리 영토로 북한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하는 상당량의 미세먼지가 넘어오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북한의 화석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화석연료를 땅속에 묻어두는 방안이야말로 합리적이다.

화석연료를 땅속에 내버려 두는 것은 현재 남북한 당국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필자의 이전 글에서도 논했지만 북한 당국은 최근 탄소중립에 대한 정책적 중요성이 높아졌다(☞관련기사 바로 보기). 윤석열 정부 또한 탄소중립 실현을 지지하고 있다. 다만 "저탄소 에너지 확충 방안"에 핵발전을 포함한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93쪽).

이처럼 북한의 화석연료를 땅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탄소중립 실현과 나아가 한반도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남북한 당국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화석연료를 채굴하지 않음으로써 북한 당국이 포기하게 될 경제적 이득을 우리 당국이 보전해 주는 것도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은 제재 대상인 북한 광물자원의 수출을 일정 부분 허용하고, 해당 대금으로 식량, 비료, 의약품 등의 인도적 물품 구매를 허용하는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제안한 바 있다. 수출을 위해 광물자원을 채굴하는 대신에 채굴을 안 하는 것에 대한 해당 대금을 인도적 물품 구매로 허용하는 방식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안에서 충분히 가능함을 시사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모든 화석연료 매장지의 채굴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일부 지역의 채굴을 제한하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와 9.19 군사합의 파기로 남북한 군사적 긴장이 고조하고 북·러가 한층 밀착하는 현 정세에서 한반도 에너지 전환을 논한다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현 정부에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이미 정부가 담대한 구상에 밝혀 놓은 프로그램을 실제 추진함으로써 실낱같은 남북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정권이든 화석연료 의존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한반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정철학을 갖추는 것이 한반도 평화 조성의 필수 조건임을 깨닫게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지금 한반도 에너지 전환의 활발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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