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공성을 위협하는 정부의 '공적 영역 민영화'

[시민건강논평] 정부는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라

지난달 27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건강관리서비스 시장 확대가 논의되었다. MB정부에서 입법조차 불가능한 비판에 처해 두 차례나 폐기되었던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 디지털헬스케어산업의 주요 전략으로 호명되고 있다.

먼저 밝혀둘 것은 우리도 만성질환에 대한 더욱 체계적인 관리, 즉 발전된 최신기술의 활용과 개인의 적극적인 치료과정 참여에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법이든 만성질환관리에서 효과가 검증되고 비용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된다면 확산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질병관리의 본래 목적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새로 도입하는 기술과 방법이 얼마만큼의 시장과 투자를 창출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는 본말전도의 상황이라면 그런 접근에는 반대한다.

명백하게 산업화전략으로서 추진되는 건강관리서비스는 절차적 측면이나 정책의 합목적성, 정부의 책무성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가진다.

첫째, 디지털헬스케어 시장 확대와 생태계 형성을 위한 정부 개입의 문제이다. 건강관리서비스를 바라보는 역대 정부의 한결같은 기조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국민건강보험을 포함하여 정부가 관리·운영하도록 한 공적제도와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시키고, 본래 자임했던 영역을 민간 시장의 영역으로 이전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정부는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과 윤리·제도상의 문제들로 인해 기업들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구성하기 어려운 규제적 환경에 개입해 왔다(☞관련자료). 지난 3월에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과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을 병행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보험업계의 헬스케어산업 진출을 위하여 금융위원회가 건강관리서비스업을 보험업계의 부수업무화하기로 허용한 것이나, 의료 마이데이터사업의 확대 추진방침, 그리고 13년을 끌어온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 그 사례들이다. 의료전문가나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하여 정부가 길을 만들어주는 노골적인 시장 개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건강관리서비스는 의료비 증가와 인구 고령화 등 엄중한 보건의료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도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도, 박근혜정부 이후 지금까지 법적 효력도 없고 행정기관 내부 업무처리지침에 불과한 가이드라인으로 추진되고 있다. 입법조차 되지 못한 사안의 절차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아예 사라지고 여전히 행정독재를 강행하고 있다.

둘째, 기재부장관의 주장과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질환과 환자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의료서비스와 비의료서비스의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무엇보다 이런 구분은 건강관리라는 목표를 위해서도 효과적인 돌봄 방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여러 보건소에서 수행 중인 건강취약계층 주민들을 위한 방문상담, 혈압·혈당 기초검사,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및 상담서비스 등은 질병관리가 곧 질병의 치료라고 하는 최근의 의학적 관점과 일치한다. 더욱이 건강은 사회적 결정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정부는 거시정책적 개입과 함께 건강문제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주민을 파악하고 통합적인 건강생활 실천을 돕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앙정부는 다양한 지역사회의 경험과 노하우를 확산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의료체계를 확대·강화하려는 목표를 갖는 게 '국민의 건강수명 증가와 건강형평성 제고'를 달성하는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구분하고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불가피한 정책수단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통합적으로 가입자들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단일보험자체제이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 억제를 위하여 미국처럼 민간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을 외부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제2차 국민건강검진 종합계획>(2016년~2020년)에서 생활밀착형 지역사회 건강관리서비스 모형개발이나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사업을 추진한 바 있으며, 모바일앱 서비스(건강 iN)를 통하여 검진결과 맞춤형 건강정보를 제공 중인데 사용자는 2020년에 이미 1422만 명에 이른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제3차 국민건강검진 종합계획>(2021년~2025년)에서는 건강위험군 건강관리서비스와 건강검진결과 정보이용 활성화, 검진결과상담을 위한 가칭 국가건강검진 설명의사제 도입, 지자체에서 개별 시행중인 노인건강진단사업의 국가건강검진과의 통합을 통한 건강검진의 형평성 제고 등의 여러 목표를 밝혔다.

이렇게 축적된 건강정보를 바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 하는 이른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영역의 역할을 축소하고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민간으로 이전하려는 것은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스스로 공공부문의 역량을 강화하고 기능을 쇄신하며, 신속한 의사결정체계를 마련하는 대신 스스로를 비효율과 무능력으로 표상하며 자신에게 위임된 역할을 민간에게 넘기려 하는가. 전가의 보도인 경쟁의 원리는 왜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취약계층의 건강불평등에 개입하여 전체 국민들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보건복지부는 왜 그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 자명한 시장적 건강관리방식을 추진하는가.

보건의료부문에서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고 시장운영원리를 도입한 결과는 자명하다. 국내외의 여러 보건의료 민영화 사례의 공통적인 결론은 환자의 비용부담 상승과 수익성이 낮은 환자의 의료접근성 악화, 노동자들의 급여 및 노동조건 악화 등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로 제시되고 있는 운영 효율성의 증가도 이런 부정적 영향들의 반사 효과이다. 처음부터 재정효율성 제고의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환자나 지역사회 주민들의 건강결과의 개선이나 삶의 질 증진은 아예 평가 지표에 포함되지도 않는다.(자세한 결과는 곧 발표될 시민건강연구소 민영화 연구보고서를 참조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공기관의 매각에 한정된 의미로서의 좁은 의미의 민영화를 넘어선, 국가의 기능 축소와 책임 이전으로 나타나는 공적 영역의 민영화라고 진단한다. 공적 영역의 민영화는 곧 영리 추구를 위한 시장화에 다름 아니다. 소수의 경제적 이익극대화를 위한 시장의 논리에는 형평성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개입할 수 없다.

다수 시민의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공공성의 원리들은 시장에 의해서 결코 구현될 수 없는 원리들이다. 삶에 필수적인 권리들에 대한 개인 구매력의 영향력을 줄이고 이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공공성 강화가 건강관리서비스를 넘어 모든 공적 재화와 서비스의 기본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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