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인요한은 영어로 생각하는 게 맞다"…사과 거부

"커뮤니케이션 상당히 어려움 겪어"…사회적 약자 공격해놓고 "혐오로 몰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자신이 영어로 말을 건 일이 '인종차별' 또는 '귀화인 배제'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이 분은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씀하시는 게 맞다"고 사과를 거부했다.

이 전 대표는 15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뒤 "인 위원장이 (언어를) 쓰시는 걸 보면, 예를 들어 저한테 언론을 통해 요구하시는 게 '이준석 씨와 밀실에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며 "밀실 정치가 어떤 어감인지를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인 위원장이 이중국적이시고 특별귀화를 하신 분이기 때문에 양해를 하는 거지, 사실 글로 옮겨놓고 보면 섬뜩한 말"이라며 "'밀실에서 대화하고 싶다'? 제가 무슨 뒷거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하지 않나?"라고 했다. 인 위원장의 정치하지 못한 언어 사용을 '이중국적자의 한국어 능력 문제'로 규정한 셈이다.

그는 "악의는 없다고 보는데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며 "제가 (인 위원장을) 만났다고 쳐보자. 그럼 인 위원장이 악의 없이 '내가 어제 이준석 씨를 밀실에서 만났다'고 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 위원장한테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는 이 분이 바이링구얼(bilingual)이고 저도 나름 영어가 되니까 이야기했던 것"이라며 "이거를 인종차별의 의도로 몰아가고 이런 거는…(맞지 않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자신에게 빈번하게 제기되는 '사회적 약자(정치적 소수자) 배제·혐오'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혐오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모르고 사람들이 쓰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문화사회, 예를 들어 미국 같은 데 살아본 사람이면 '너 인종차별주의, 너 레이시스트(racist)야' 하는 게 얼마나 센 말인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영어로 소통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너는 레이시스트다' 이런 것은 거의 극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에 인 위원장에게 정확한 뉘앙스를 전달하고 싶어서 영어로 한 게 잘못됐다면 인 위원장 다시 만났을 때 '당신이 불편하면 나는 앞으로 그렇게 안 하겠다' 정도로 제가 반응하면 되는 것"이라며 " 그런데 인종차별의 의도를 갖고, 이거 외국 사람들이 들으면 당황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에 살아본 사람이면 당황할 것'이라는 이 대표의 말과 달리,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나종호 예일대 교수는 지난 5일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말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실제로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인종차별로 가장 쉽게 쓰이는 표현"이라며 "이준석이 인요한 위원장에게 '미스터 린튼'이라고 영어로 응대한 것은 이같은 맥락의 명백한 인종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나아가 "'혐오' 이런 것도 참 조심해야 되는 게,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지하철을 막아세우는 시위를 하는 것은 잘못된 시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을 혐오로 몰아버리면 앞으로 전장연에는 어떤 지적도 할 수 없게 된다"며 "보훈단체나 보수 성향의 단체가 지하철을 세워도 저는 똑같은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 제가 보수 혐오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전장연의 시위 방식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전반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나온 바 있지만 '장애인혐오'라는 비판을 받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보수단체가 지하철 시위해도 비판할 텐데 그럼 보수단체 혐오냐'는 이 전 대표의 말은, 같은 비판이라도 기득권에 대한 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것은 전혀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그가 왜 그런 비판을 종종 받는지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여성혐오만 문제가 아니라 '남성 혐오'도 문제'라는 주장이 그 자체로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5월 이 전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당분간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오는 것이 좋겠다. 학부를 공학을 했으니 이번에 미국에 가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이 전 대표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지점인 '안티-페미니즘 정치' 역시 그 핵심은 현존하는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5월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며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언급을 했다. 그는 또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라며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했다.

방송 인터뷰나 SNS 등을 통해서도 그는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보증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비판에는 "개별 범죄를 끌어들여서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역비판을 가했다. 지난 대선 당시 성범죄 엄벌주의를 주장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 씨가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자 이 전 대표(당시 현직 대표)는 이를 강력히 반대해 결국 무산시키기도 했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제가 똑같은 기준으로 사람들 말꼬리 잡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정치가 구질구질해지는 게, 예전에 윤석열 대통령은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그게 아프리카 혐오"라며 "그 나이대에 그런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지적 안 하고 다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이미 당시부터 노동 비하, 아프리카 국가 비하 등 혐오발언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수 차례 받은 바 있다. '그렇게 따지면'이 아니라, 그냥 그게 혐오 맞다는 지적이 예상된다.

이 전 대표는 또 "'벙어리'라고 하면 장애인 혐오고, 이렇게 하나씩 걸기 시작하면 쓸 수 있는 말이 사라지는 부분이 있다"라며 "당연히 사회가 진보하면서 그런 표현들 조심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제가 그 기준으로 사람들 잡고 다니기 시작하면 굉장히 다들 고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과 미국 보수진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PC(정치적 올바름) 반대' 주장에 소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서의 문제와 엄연히 존재하는 성·인종·계급 등 사회적 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다.


이 전 대표는 현직 대표이던 시절, 당선 직후부터 대선 국면에서까지 <프레시안>이 '한국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수 차례 건넸지만 한 번도 답을 하지 않고 "이미 말씀드렸다"고 회피하기만 했었다. '이미 말했다'는 것은 앞서 신문·방송 인터뷰나 SNS 등을 통해 밝힌 차별 부정·옹호 입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을 '미스터 린튼'이라고 부르며 영어로 말을 걸어 귀화안 배제·차별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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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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