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없어 죽은 어머니,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농어촌공사

[엄마가 사라졌다] 소 잃고 고친 외양간, 그마저도 '하나'가 빠졌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수문감시원 사망사고'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받은 직접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선을 그었다.

지난 6월 전남 함평에서 폭우를 뚫고 작업에 나선 수문감시원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는 두 아들의 어머니인 오혜선(가명, 사망 당시 67세) 씨. 오 씨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학야 제수문에는 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장비는 우의, 손전등이 전부였다. (관련기사 ☞ 엄마가 일하다 죽었다, 농어촌공사는 '돈 줄 테니 책임 묻지 마라' 했다)

▲오혜선(가명) 씨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다리 위에서 바라본 수문. 새로 설치된 난간 뒤에 적녹색 수문이 있고, 그 너머로 엄다천이 흐르고 있다. ⓒ셜록

"수리시설 감시원(이하 수문감시원) 사망 관련해서 의원실에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빠져 있더라고요." -윤미향 무소속 의원

지난달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종합 국정감사 현장. 윤미향 의원(무소속, 비례대표)의 마지막 질문이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게 향했다. 윤 의원이 언급한 근본적 대책은 수문감시원 직접고용이었다. 이 사장은 그러나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7337명의 그 감시원들을 다 직접고용하기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수문감시원은 1년 중 농번기(5~9월)에만 농어촌공사와 계약을 맺고 일한다. 계약 형태는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이다. 사망한 오혜선 씨가 받은 보수는 월 43만 9천 원이었다. 오 씨 사망사고 후 농어촌공사는 '수문감시원은 공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노동당국은 수문감시원을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검토에 들어갔다. 동시에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살피는 중이다.

지난달 13일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는 '농어촌공사가 수문감시원 사망사고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이날 윤미향 의원은 이병호 사장에게 "안전사고 예방책을 마련해 의원실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한국농어촌공사는 지난달 24일 윤미향 의원실에 '함평 사건 관련 안전관리 개선방안 보고'를 제출했다. 재발방지 대책의 주요 내용은 △안전대책 시설(난간) 설치 △위험상황 시 '활동 금지' 원칙 도입 △보호 장비 지급 등이다.

▲수문감시원 사망현장의 현재모습 ⓒ셜록

농어촌공사는 사망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학야 제수문에 안전시설을 보강했다. 농어촌공사는 전국 약 1200개 수리시설에 올해 안으로 예산 250억 원을 투입해 난간 등 안전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안전 가이드라인도 개정했다. 개정 전 '수리시설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작업' 조항은 실효성이 없었다. 위험 작업에 대한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2인 1조로 근무하기엔 수문감시원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한 달 전인 지난 5월, 기획재정부도 이 문제를 짚은 적이 있다.

"위험 공종 작업에 대한 범위가 정의되지 않음에 따라, 기관은 야간, 태풍, 폭우 시 작업 등 2인 1조 작업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위험작업에 따른 수리시설 관리원의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도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 심사 결과보고서' 내용 중

재발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농어촌공사는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작업' 원칙을 폐지했다. 대신 '전면 활동 금지' 조항을 삽입했다. '위험 상황'은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용·배수로 진입이 필요한 경우 △추락사고 우려가 높은 시설에서 작업하는 경우 등으로 규정했다.

농어촌공사는 도급계약서에 '구명조끼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한 후에 작업해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시켰다. 사고 당시 오혜선 씨에게는 구명조끼가 없었다. 오혜선 씨가 사망하자 농어촌공사는 지난 7월 초 수문감시원들에게 구명조끼를 보급했다. 전남 함평군 역시 오 씨 사망 이후인 지난 7월 말 군에서 지정한 수문관리원 225명에게 구명조끼를 지급한 바 있다.

▲오혜선 씨(가명)의 둘째 아들 지현배(가명) 씨는 전남 나주시 한국농어촌공사 본사 사옥 앞에서 지난달 16일부터 약 2주간,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했다. ⓒ셜록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또 다른 주요 문제는 고용 방식이었다. 정희용 국회의원(국민의힘, 경북·고령·성주·칠곡)은 이병호 사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가기 위해서 이런 계약 방식(도급계약)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오혜선 씨의 첫째 아들 지근창 씨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윤미향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실상 수문관리원은 공사의 업무 지시를 받고 공사의 시설을 대신 운영한 위탁 관리자로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실제 계약 방식은 하청 개념인 도급계약으로, 사업자도 아닌 개인에게 도급계약을 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병호 사장은 농어촌공사가 수문감시원 직접고용이 불가능한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농어촌공사가 윤미향 의원실에 제출한 재발방지 대책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농업용수 관리 특성상 근로자와의 사용종속관계를 전제로 공사가 수리시설 감시원에게 지휘·명령을 하며 일률적으로 전국의 농업용수를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7일 한국농어촌공사에 '직접고용이 불가능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었다. 농어촌공사는 "자율적으로 관리돼왔던 농업용수를 일괄적인 지휘·명령에 따라 관리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부 관계자는 <셜록>과의 전화 통화에서 "수문은 2000년 공사 출범 이전부터 농업인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관리해왔다"며 "기상 상황, 재배 작물 등 여러 요건에 따라 수문의 관리 방법이 다르고 정형화되지 않아 농민이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하천·계곡 지킴이 활동 모습 ⓒ양주시

이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할 순 없는 걸까. 한국농어촌공사가 참고할 만한 '현실적'인 사례가 있다. 경기도 내 지자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경기 하천·계곡 지킴이(이하 지킴이)'다.

경기도는 하천 주변 불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2021년 경기 하천·계곡 지킴이를 도입했다. 지킴이는 지역 주민만 할 수 있고, 1년 중 8개월(3~10월)만 일한다. 수문감시원도 지역 주민 중에서 선발되고 농번기인 5~9월 사이에만 일한다. 업무 성격이 감시와 점검인 점도 유사하다. 지킴이는 하천과 계곡을, 수문감시원은 농업용수와 관련된 저수지, 농수로 등을 관리한다. 요청 시 재난 대응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결정적 차이는 지킴이는 경기도 지자체가 고용한 근로자지만, 수문감시원은 농어촌공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수급인이란 점이다.

경기도 하천과 관계자는 "지킴이 분들은 4대보험을 적용받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며 "2021년 도입할 때부터 단기 근로계약직 형태로 제도가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지부장이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지부장 제공

한편 노동계는 한국농어촌공사를 고발했다. 민주노총 나주지부는 지난 2일 이병호 사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박근서 민주노총 나주지부장은 고발장에서 "수리시설 감시원은 농어촌공사가 정한 업무를 운영지침에 적힌 방법대로 수행하고, 업무 수행 중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자에게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야 하는 등을 볼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발 취지에 대해 "피고발인(한국농어촌공사 대표 이병호)은 폭우 시 수리시설 감시원이 위험에 노출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직접고용이 수문감시원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근본적 대책이라고 본다. 수문감시원이 공사의 직접적 책임 하에 놓여야 공사도 적극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거란 입장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끝끝내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고, 고용 형태도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더 큰 불행들이 오겠죠. 전국에 약 7400명의 수문감시원이 있는데, 그분들 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죽어 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

▲전남 함평군 학야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이 지난 6월 사망한 오혜선(가명) 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셜록

오혜선 씨는 마을 부녀회장이었다. 생전 오 씨에게 도움을 받은 기억이 많다는 한 노인은 이런 말을 했다. 기자가 오혜선 학야리 마을회관을 찾았을 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사람 죽고 나서 난간이며 조명이며 뭐며 새로 해놓으면 뭐대(뭐해)? 이미 사람은 죽었는디."

안전은 늘 누군가가 죽고 나서 보강된다. 죽으면 대책을 내놓고, 또 죽으면 대책을 더하는 식이다. 죽기 전에 안전이 세워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수문감시원들을 '근로자'라는 울타리 속에 들여놔야 한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 문제'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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