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하다 죽었다, 농어촌공사는 '돈 줄 테니 책임 묻지 마라' 했다

[엄마가 사라졌다] 사과도 책임도 빠진 '성금' 봉투…공허한 엄마의 '목숨값'

밤 10시, 둘째 아들 지현배(가명, 42세) 씨가 욕실에서 씻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 오면서 외쳤다.

"사라졌시야! 현배야, 엄마가 사라졌시야!"

아버지는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한 가지 문장만을 반복했다. '엄마가 사라졌다.'

현배 씨는 우산도 없이 급히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논밭을 가로질러 수문이 있는 하천 쪽으로 뛰었다. 집에서 500m 정도 거리에 엄마가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약 1시간 30분 전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수문을 살피러 나갔다.

"엄마! 엄마!"

정신없이 빗속을 뛰어가면서 소리쳤다. 하천 주변에 다다르자 뜀박질 속도가 느려졌다. 폭우로 불어난 흙탕물이 매섭게 흐르고 있었다. 밤눈엔 땅과 하천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수문 인근에 여러 불빛이 모여 있었다. 아버지의 트럭, 그리고 경찰차와 소방차까지.

현배 씨는 서울에 사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형.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뭐라고?"

"엄마가... 아버지랑 수문에 갔는데 그 뒤로 돌아오질 않아."

엄마가 실종됐다. 전남 함평에 시간당 70mm의 폭우가 내린 지난 6월 27일의 일이다. 엄마는 이틀 뒤, 실종 지점인 엄다천 학야 제수문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오혜선(가명) 씨가 마지막에 서 있던 학야제수문의 현재 모습 ⓒ셜록

지문철(가명, 75세) 씨의 아내이자 두 형제의 어머니인 오혜선(가명, 67세) 씨는 수리시설 감시원(이하 수문감시원)이었다. 수문감시원은 한국농어촌공사와 계약을 맺고 농번기에 수문을 관리한다.

혜선 씨의 사망 이후, 수문감시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문감시원이 근로자로 인정돼야 '일하다 사망한' 혜선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처리되고, 또 그래야 농어촌공사가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 때문이었다.

농어촌공사는 사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오혜선 씨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농어촌공사는 수문감시원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는다'는 게 이유였다. 책임 인정도, 공식 사과도,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도 '아직'인 상황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21일 전남 함평을 찾았다. 오혜선 씨의 남편 지문철 씨는 이미 한 차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상황이었다. 취재진은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지문철 씨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는 편지만 남겨두고 왔다. 얼마 후 아버지 지 씨와 함께 사는 둘째 아들 지현배 씨에게서 답장이 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셜록>은 지난달 23일 첫째 아들 지영배(가명, 44세) 씨를 만났다. 이어 지난 5일엔 다시 한 번 함평으로 가 지현배 씨를 만났다. 엄마를 잃은 두 아들에게 각각 엄마가 사라진 그날에 대해 들었다.

5일 함평,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캡 모자를 쓴 현배 씨의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그는 턱을 손으로 감싸 쥐며 아버지에게서 들은 그날의 기억을 전해줬다.

▲지난 6월 27일 폭우가 쏟아진 밤에 오혜선(가명) 씨가 실종됐다. 사진은 당시 수색대가 혜선 씨를 찾는 모습. ⓒ연합뉴스

그날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혜선 씨는 수문 6개 중에 4개를 미리 열어뒀지만, 저녁 8시 30분경 남편과 함께 다시 한 번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나머지 수문도 개방해야 하천이 넘쳐 논이 잠기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남편의 트럭을 타고 학야 제수문에 도착했다. 이미 발아래 엄다천은 무섭게 불어나 있었다.

"영배 엄마(오혜선 씨), 그냥 돌아가."

남편의 만류에도 혜선 씨는 고개를 저었다.

"금방 하니까 차 돌려놓고 있어요."

혜선 씨는 손에 장대를 들고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장대는 남편 문철 씨가 대나무 끝에 낫을 묶어 직접 만들어줬다. 수문을 여닫을 때 거치적거리는 풀이나 쓰레기 따위를 제거하는 용도다. 다리를 따라 놓인 6개 수문 중에 세 번째 수문 앞에 섰다. 오후에 열지 않고 남겨둔 수문 중 하나였다.

문철 씨가 아내 말대로 트럭을 집 방향으로 돌려놓던 찰나였다. 차창 밖으로 두 손을 높이 들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나 먼저 돌아가란 뜻인가?' 아리송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트럭에서 내렸는데 아내가, 온데간데없었다. 장대는 두 동강 나 있었다.

"어머니께서 수초를 제거하려다가 장대가 부러졌고, 그 반동으로 급류에 휩쓸리신 것 같아요. 사고 현장에 CCTV가 있긴 했는데 녹화가 안 됐대요. 확인을 못 하니까 추정만 하는 거죠. 그때 다리에 난간만 설치돼 있었어도..." -첫째 아들 지영배 씨 인터뷰

▲오혜선(가명) 씨가 사용한 수초 제거용 장대. 사고 당시 부러져 아랫부분이 없다. ⓒ지영배(가명) 제공

첫째 아들 군대 보낼 때 빼고는 운 적이 없는 문철 씨가 울부짖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일단 집으로 가서 둘째 아들에게 소식을 알린 그는 마을 이장 집으로 향했다. 울면서 찾아온 문철 씨를 대신해 이장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밤 10시 50분, 학야 제수문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수색을 시작했다. 새벽 3시경엔 형 영배 씨가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차를 몰고 현장에 왔다.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 하나는 정신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형이 버텨줬지요. 저는 '엄마가 집에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집에도 가봤어요. 혹시 와 있나 해서. 사실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내내 넋이 나가 있었고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학야 제수문 인근 도로에 수색을 위한 캠프가 꾸려졌다. 실종 첫날, 현배 씨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둘째 날엔 억지로라도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날, 공황 발작이 심해졌어요. 식은땀이 나고 이유 모를 공포감이 막 심해지면서... 환청이 시작됐어요.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렸어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실종 3일째인 29일 오전 10시, 캠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현배 씨는 직감했다. '엄마구나!' 엄마는 실종 지점인 학야 제수문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하천 교각 아래에서 발견됐다. 넋이 나간 두 형제와 문철 씨 대신 시신을 확인한 외삼촌이 말했다. "시신에 멍이나 상처는 없었다"고.

국화꽃 사이에 엄마 사진이 놓였다. 엄마 이름 앞엔 '고(故)'자가 붙었다. 곳곳에 놓인 십자가와 근조화환들을 봐도 엄마의 죽음은 믿기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어요. 현실 같지가 않았거든요. 드라마 세트장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느낌.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내가 있는 듯한 느낌."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언론에선 엄마를 두고 '올해 장마 폭우 첫 사망자'라고 했다. 근조화환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것도 있었다. 농어촌공사 사장 이름도 보였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장례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섰지만 남편 지문철 씨가 완강하게 거절했다.

▲ 오혜선(가명) 씨의 장례식장에 윤석열 대통령,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등이 보낸 근조 화환이 놓여있다. ⓒ지현배(가명) 제공

헤선 씨가 서 있던 학야 제수문 다리에는 추락방지 시설도 구명조끼도 없었다. 녹화 기능도 없고, 그렇다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던 CCTV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수리시설감시원 안전관리 행동요령(한국농어촌공사)'에 적힌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작업'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어디에도 ‘안전’은 없었다.

그런데 안전의 책임자인 농어촌공사는 공식 사과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농어촌공사는 7월 한 달간 임직원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금했다. 공사는 이 돈을 보상금이나 합의금이 아니라 '성금'이라고 불렀다. 책임은 빼고 위로만 담겠다는 뜻이었다.

장례가 끝난 뒤 7월 중순부터 농어촌공사는 첫째 아들 영배 씨와 만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주 뒤부터 농어촌공사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쪽에서 합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합의를 하면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저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어요. 또다시 '마음을 결정하셨을까요?'라고 묻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내용도 모르고 사인할 순 없으니 합의 내용이 뭔지 문서로 달라고요. (직원들한테) 모았다는 성금은 8월 말까지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 지영배 씨 인터뷰

농어촌공사가 보낸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고 오혜선(가명) 씨 유족들은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농어촌공사 측과 원만하게 합의하였으므로, 한국농어촌공사 및 공사 임직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향후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유가족에게 전달한 합의서 초안 ⓒ지영배(가명) 제공

아들들은 합의서가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형이 합의서 내용을 얘기해줬을 때 딱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받으면 손발이 묶이는 거구나.' 기분이 나빴죠. (농어촌공사 측에서) 책임을 안 지겠다는 거잖아요. 엄마 돌아가시고, 어느 날 보니까 수문에 난간이 설치됐어요. 그렇게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걸 지금까지 놔두다가 이제 와서야 고쳐놨더라고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영배 씨는 가족들의 의견을 담은 합의서를 새롭게 작성해 농어촌공사 측에 전달했다. 가족들이 요구한 것은 △위로금 지급 △5년간 기일마다 고인을 추모하는 꽃바구니 전달 △유사 사건 재발방지를 위한대책 △공식적인 사과 성명 발표 등이었다.

지난달 8일 한국방송(KBS)이 농어촌공사에서 성금을 지급하기 전에 유가족에게 합의안을 제시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후 약 일주일이 지나자 농어촌공사는 '이미 모아둔' 성금을 그때서야 지급했다. 그러나 공식 사과를 포함해 유가족이 요구한 나머지 조건은 이행하지 않았다.

▲농어촌공사는 사망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추락방지를 위해 난간을 설치하는 등 시설을 정비했다(오른쪽). 왼쪽은 정비 전 모습(구글 로드뷰 화면)이다. ⓒ셜록

"엄마는 자기 몸이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보람을 느끼던 분이셨어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오혜선 씨는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의 논농사를 거들면서 집 근처 텃밭도 가꾸고, 동네에선 부녀회장으로 활동했다. 30년 가까이 나주시청에서 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조리원이기도 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니까, 거의 30년 동안 (조리원 일을) 하셨죠. 나이가 들고 몸이 이곳저곳 아프니까 일을 그만두셨어요. 수문감시원은 작년에 아는 분이 그만두면서 엄마가 맡게 됐어요.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엄마도 흔쾌히 수락하신 것 같아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농촌 지역에서 '수리시설 감시원'은 소액이지만 고정적 수입원이 생기는 일자리다. 수문감시원은 5~9월 약 5개월간 40~60만 원 사이의 보수를 받고 일한다. 업무는 수문 개폐 등 물 관리, 시설물 점검 및 조작, 긴급 상황 대응 등이다.

조리원을 그만두고 별다른 수입원이 없던 오혜선 씨는 지난해 5월부터 수문감시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혜선 씨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작업일지도 작성했다.

"일년 농사용 양수장 전원차단하였습니다." (2022년 9월 27일)

"중배물 수문 마무리 하여 방유하였고 문 5개 열어노아씁니다." (2022년 10월 2일)

"3일간 많은 비가 와서 가뭄해갈이 대엇다 중배 수문도 물 방유를 하였다." (2023년 5월 4일)

▲오혜선(가명)씨가 수첩에 작성한 수문 감시 작업일지 ⓒ지현배(가명) 제공

엄마는 일을 힘들어했다.

"물은 어떻게 관리를 해도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거든요. 이쪽 논에서 필요하대서 물을 텄어요. 그러면 다른 쪽에서는 '왜 텄냐'는 말이 나오고, 또 반대로 이쪽의 요구대로 물을 닫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물이 필요하다'고 하고... 누구한테든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엄마가 갑자기 머리도 빠지고 그랬어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혜선 씨는 올해도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학야 제수문을 비롯해 엄다천 인근 수문을 관리할 예정이었다. 보수는 월43만 9000원. 즉 혜선 씨는 계약서를 기반으로 정해진 기간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았다. 농어촌공사는 '수리시설감시원 안전관리 행동요령'이라는 일종의 안전 매뉴얼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농어촌공사는 혜선 씨가 '근로자'가 아니란 걸까. 수문감시원이 근로계약이 아니라, 도급계약을 맺는 탓이다. 수문감시원들은 농어촌공사 측에 분명 노무를 제공하지만, 농어촌공사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기에 안전문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엄마가 사라진 날부터 약 3개월이 흘렀다. 초록색 들판은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땅을 빌려 논농사를 짓는 문철 씨는 이제 학야 제수문 근처에 있는 논에 가지 않는다. 사고 이후, 문철 씨의 문장에선 아내가 사라졌다. 딱 한 번 아내를 언급한 순간은 밥상 앞이었다.

"지금은 고모들이 해주신 반찬으로 제가 밥을 차려드리거든요.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네 엄마가 해준 맛이 아니다.'"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수초가 끼어 있는 수문 ⓒ셜록

엄마의 공백은 가족 모두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현배 씨는 하루의 시작부터 엄마가 없다는 걸 실감한다.

"엄마가 항상 저보다 먼저 일어나니까, 제가 일어나면 부엌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요. 엄마가 식사하거나 음식만드는 소리. 하지만 요즘은 안 들리죠."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지나치게 고요한 아침처럼 지금 현배 씨에게 고통스러운 건 일상 그 자체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하루하루.

"제가 몸이 자주 아파요. 두통이 느껴질 때, 제가 비록 나이를 좀 먹었지만, 엄마가 머리를 만져주시곤 했어요. 저는 엄마가 머리 만져줄 때 그렇게 좋더라고요. 엄마가 성격이 밝고 장난기가 있으셨거든요. 엄마 말에 제가 장난 식으로 반박하면 엄마가 '너는 입만 살았다!' 하면서 입을 톡 때려주시곤 했어요. 근데 사실... 저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너무 그리운 순간이죠."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엄마가 사라졌다'는 감각은 후유증으로 남았다. 실종 이튿날부터 시작된 환청이 요즘도 현배 씨를 습격한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데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마치 엄마가 온 것 같은" 느낌에 놀랐다가, 반가워했다가, 다시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아들 지현배(가명) 씨가 간직하고 있는 엄마의 유품 모자 ⓒ지현배(가명) 제공

형제는 농어촌공사 측에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얼마 전에 농어촌공사가 매년 안전 비용으로 약 1조 원을 쓴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저는 정말 궁금해요. 대체 그 돈을 어디에 쓴 건지. 어머니와 같은 수문감시원을 위해선 대체 얼마를 어떻게 쓴 건지. 공사 직원 개인이 찾아와서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건 공식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료를 내든, 현수막을 붙이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에 공사 이름으로 한 사과가 공식 사과 아닌가요?" -첫째 아들 지영배 씨 인터뷰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국회의원(해남·완도·진도)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공공기관 안전관리등급심사에서 3년 연속 ‘4등급(미흡)’ 평가를 받았다. 혜선 씨를 비롯해 농어촌공사가 도급을 맡기거나 발주한 현장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3명이 사망했다.

"농어촌 특성상 수문감시원은 고령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농어촌공사는 (안전 관리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사고가 안 난 게 희한할 정도거든요. 어머니 사건만 하더라도 일기예보로 폭우가 온다는 건 다 알고 있었고,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책임은 안 지고.... 이게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 싶어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한국농어촌공사 함평지사 ⓒ셜록

농어촌공사 측은 사고 현장인 학야 제수문에 난간, 구명조끼 등 안전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인정했다.

농어촌공사 전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지난 6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안전시설 등이 미비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시정조치를 진행했다"며 "매년 저수지, 양수장 등 농업 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를 하지만 제수문까지는 구체적으로 (챙기지) 못한 게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사는 '공식 책임 인정'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섰다. 관계자는 "공사의 책임에 관해서는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다"며 "현재 수사기관과 노동청에서 조사를 하고 있으므로 조사 결과에서 공사의 책임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성금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모금한 것이고, 합의를 위해 전달을 미뤘다는 내용의 기사는 오보이며 굉장히 억울하다"고도 했다.

▲'위험 접근금지' 팻말이 있는 돌다리. 오혜선(가명) 씨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곳이다. ⓒ셜록

지난 추석, 형제는 엄마 없는 첫 명절을 보냈다.

"(엄마는) 보통 이틀 전쯤에 장을 보고 하루 전부터 음식을 만들기 시작해요. 기본적으로 산적, 감태무침, 형수님이 좋아하는 양념게장, 그리고 갈비. 명절이 되면 엄마가 '이제 나이 먹어서 입맛이 둔하다'고 항상 저한테 마지막 간을 봐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엄마가 음식 만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기름 냄새도 안 나고....

또 이번 추석에는 처음으로 엄마랑 성묘를 가는 게 아니라 엄마를 성묘하러 가게 된 거죠.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엄마가 집에 있어야 되는데.... 성묘를 끝나고 돌아가도 집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진짜 미친 듯이 슬프더라고요." -둘째 아들 지현배 씨 인터뷰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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