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우먼 파이터2>에서 심사를 보던 모니카는 "리아킴이 말한 것 같은 많은 선입견들. 그게 결국엔 상업성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될 거다"고 말했다. 대중문화 예술계에서 상업적 활동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한국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통찰과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쇼미더머니>가 등장했을 때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으로부터 비판 받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은 비판의 대상이 아닌 성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예술성이 상업성과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 현대사회에서 예술가가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은 여러 편견을 내외부적으로 만들어 왔다. 영국의 경우 창의성이라는 담론으로 이러한 비판을 해결하기도 했다. 예술적 가치를 상업화하는 것도 창의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풍조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담론을 해체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개념들이 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전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화적 다양성이다. 먼저 원론적인 문화 다양성의 의미를 살펴보자. 유네스코는 문화를 일반 경제상품이나 소비품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각국은 문화 정체성을 위해 현실에 맞는 다양한 규제나 제도를 채택해야 하고, 문화 다양성의 보호는 윤리적 의무임을 선언하였다. 적어도 문화 다양성은 소비주의적 상품의 다양한 선택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K-pop(이하 케이팝)이 문화 다양성에 기여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용된다고 주장되곤 한다. 최근 글로벌 추세에 맞춰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지속 가능보고서를 공시하고 있으며 윤리 경영과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케이팝이 기여한다는 ‘문화 다양성’이 유네스코의 정의와 일치할까? 한류의 글로벌화와 문화 다양성 추구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진정성과 ESG 워싱 논란, 내적 다양성의 부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아이돌 제작 방식은 이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익숙한 방법이지만 외부의 인식과 자기 정체성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케이팝의 초국적 소비에 대한 산업 및 기업의 대응은 상호 문화의 이해와 협상보다는 경제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돌은 한국계이거나 동양인이며,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중국인 아이돌에 대한 국내 팬덤의 거부반응 역시 케이팝 산업이 문화 다양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게 하는 사례다.
케이팝의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내부적 관점과 외부적 관점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부'는 국내 팬들의 관점을, '외부'는 해외 팬들의 관점을 의미한다. 국내 팬덤과 다국적 팬덤 간의 지속적인 갈등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국내의 경우, 학교 폭력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연예인의 행동에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해외 팬덤은 이러한 논란에 덜 민감하며, 대신 은퇴한 연예인이나 해체된 아이돌 그룹에 대한 향수를 더 강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르세라핌 가람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하이브의 태도 변화나 (여자)아이들의 맴버 수진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신속한 계약 종료가 의미하는 것은 글로벌 팬덤이 아닌 국내 대중과 팬덤의 윤리적 기준이 케이팝 아이돌 관리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케이팝의 한국적 소비와 토착적 수용의 주체를 이해하는 데 글로벌화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보편적 해석은 과도한 일반화를 의미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혹자는 피프티피프티를 비롯해 많은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이 미국 흑인 음악 및 유럽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을 이유로 한국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아이돌은 음악 장르적 형태보다 상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현상으로서 한국적 특성을 대변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문화예술이 동시대적 특성을 가지고 혼종화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화 전유나 문화 다양성과 같은 용어가 한국적인 특성을 부정하거나 과도한 보편주의적 시선으로 해석되는 현상은 지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아이돌 그룹인 SB19은 최근 빌보드 순위에 오르는 등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자신들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 이후로 필리핀 정체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탈 케이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타자적 시선으로 이들을 K로 호명하게 되면, 문화적 다양성 인식에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서구 중심의 담론인 대중문화 속 정체성 정치의 강조가 또 하나의 억압이 되는 구조 역시 서구 중심의 문화 다양성이 가진 역설을 대변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재해석한 실사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에서 흑인 배우 겸 가수 할리 베일리가 주연을 맡았다. 이에 대해 인어 공주의 원작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한국과 중국에서 매우 강했다. 그런데 대형 미디어 기업들은 이러한 다양성 전략을 통해 정치적 통합과 함께 경제적 수익 창출을 꾀하고 있다. 인종적 다양성 차원에서 흑인을 캐스팅한 할리우드의 시도는 미국 사회 내의 맥락을 거쳐 이뤄졌다. 이를 한국의 잣대로만 해석하려 하는 건 탈맥락적일 수 있고, 오히려 서구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왜곡을 낳을 수 있다.
문화 다양성 담론에도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단순화된 방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말한다. 한편 셀프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이 자신을 서양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럽 중심적인 시각과 식민지 역사는 우리의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서 RM이 과거 스페인 언론과 진행했던 인터뷰를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의 지나친 노력이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는 질문에 RM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서양에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제국주의를 그 원인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위 질문의 태도가 내포하는 한국의 개발주의나 노동 착취에 대한 타자적 시선은 다분히 오리엔탈적이다.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해 한국적 문화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 이러한 시선은 한국의 근대적 성장에서 공동체의 헌신을 국가의 억압에 따른 주체성 결여로 바라본다.
일부는 RM의 언어를 능력주의로 해석하면서 아이돌 산업의 폐해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RM의 맥락에서 K를 프리미엄 레이블로 지칭한 것은 과거 세대와 한국 사회가 공동체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했음을 뜻하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RM은 "방탄소년단의 워낙 큰 성공은 시대의 운과 많은 사람 덕에 이뤄낸 기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능력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과도한 능력주의적 해석은 개인의 노력을 폄하하는 식으로 전유될 수 있다. 문화적, 또는 경제적 성장과 성공에 대한 자랑스러운 감정은 단순한 국뽕으로 비하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그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거나 옹호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아이돌 시스템을 단순히 비인간적 산업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아이돌 산업의 토착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며, 실질적 문제를 개선하는 비판적 사고를 저해하고 특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최근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관련 주가조작 혐의는 단순히 한 기업의 범법행위가 아닌 케이팝 산업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팬덤이나 아이돌이 이해관계자로 부각되기 보다는 상품과 소비자로 인식되는 데 그친다. 상업적 수익을 추구하되,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주체가 케이팝 생태계를 구성하는 방법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고 양적 성장만을 중시하는 지금의 케이팝 방법론은 미국의 주주 이익 담론을 무분별하게 들여와 한국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각자의 목적에 맞춰 변형한 사례로 여겨진다. 진정 지속가능한 케이팝은 케이팝이 가진 사회적 가치와 문화다양성에 대한 공공의 합의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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