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가 예쁜 인형세트? 표준화된 걸그룹 문법을 거부한다

[케이팝 다이어리] 현재진행형인 '다른 케이팝', 뉴진스 이펙트

뉴지너레이션의 탄생

다른 아이돌 팬덤이 동의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온통 뉴진스 세상이다. 유튜브, 틱톡, 멜론, 스포티파이 등 뉴진스는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 생산하는 유희 콘텐츠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촌스럽게 뉴진스가 생성한 각종 국내외 음악 차트 신기록의 수치 나열은 생략하기로 하자. 그런 기록들은 검색만 하면 다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데뷔 갓 1년이 조금 넘은 신인 아이돌 그룹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조금 섣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뉴진스의 음악 스타일, 뮤직비디오 제작방식, 안무 편성 등이 기존 케이팝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생산하고, 대중은 그 감각의 표현에 열광하는 일종의 '문화열'(cultural fever)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뉴진스의 춤은 커버 놀이 집단의 댄스 복제 원형이 되고, 패션스타일은 B급 향수, 동화적 판타지를 발산하며 힙한 밈을 형성한다. 음악은 데뷔 후 지금까지 '경이로운 소문'을 타고 나오는 곡마다 히트하며 이른바 '뉴진스표' 유행가 신드롬을 낳았다. 2022년 7월 22일에 데뷔한 뉴진스는 데뷔 1년 만에 케이팝의 지형도, 케이팝의 흥행 문법에 균열을 일으켰다.

흔히 뉴진스를 4세대 아이돌의 귀여운 막내로 호명하지만, 이 그룹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매우 복고적이다. 물론 알다사피 5명의 멤버는 모두 MZ세대라 부르기에도 어린 10대 소녀들이다. 그러나 사운드와 패션 모드는 1980년대 뉴웨이브 문화의 역사 향수주의를 생산한다. 뉴진스는 드라마 <시그널>처럼 과거와 교신하며 올드스쿨 클럽 사운드의 쿨한 유령으로 출몰한다. 복고적이기에 오히려 쿨하고, 쿨하기에 퇴행적이지 않은 새로운 청바지 소녀 크루들의 출현. 멤버들은 혹시나 뮤지컬 영화 <그리스>의 여주인공 올리비아 뉴튼 존이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지>의 강수연의 현존체가 아닐까?

뉴진스가 표현하는 스타일, 사운드, 퍼포먼스는 진화하는 4세대 걸그룹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른 맥락을 가진다. 음악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리듬-비트의 계열은 대체로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저지클럽이나 볼티모어 클럽 사운드의 복고적 톤을 유지한다. 여백 없이 숨차게 휘몰아치는 복합장르 곡의 전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칼군무'를 구사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달리 뉴진스는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뉴진스는 아이브보다 덜 인공적이고, 에스파보다 아날로그적이다. 르세라핌보다 탈규율화되어 있고, 엔믹스보다 유동적이다.

▲뉴진스. ⓒ어도어

세가지 이펙트: 음악적 이펙트

아마도 뉴진스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표준화된 걸그룹의 관습적이고 통상적인 문법을 거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뉴진스라는 그룹 이름이 함의하듯 새로운 세대문화의 도래를 색다른 유행형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러한 뉴진스의 새로운 문화코드를 '뉴지너레이션'(new jeaneration), 혹은 '뉴진스 이펙트'로 명명하고 싶다.

'뉴지너레이션'은 뉴진스라는 걸그룹이 생산하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합성어이다. '뉴진스 이펙트'는 뉴지너레이션이란 합성어가 말하고자 하는 케이팝의 새로운 문화효과를 말한다. 뉴진스는 어떤 점에서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감지하는 아이콘일까? 뉴진스가 발산하는 케이팝의 문화적 이펙트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적인 이펙트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뉴진스의 곡들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음악 스타일과는 생산방식이 다르다. 통상 아이돌 그룹의 곡은 구성원의 파트와 역할을 고려하여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혼합하는 혼성모방(partiche) 스타일을 보여준다. 한 곡에 일렉트로닉, 힙합, 록, 알앤비, 펑키 등 각기 다른 음악 장르들이 아주 빽빽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뉴진스의 곡은 대부분 하나의 음악적 일관성을 가지고 제대로 각인될 수 있는 동일한 멜로디 라인을 강조한다. 동시대 아이돌 그룹의 곡이 '배치'가 중요하다면, 뉴진스의 곡은 '반복'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동일한 비트-리듬에 감성적인 후크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아이돌 그룹의 곡이 여러 장르의 레퍼런스를 짜깁기하는 '멀티테이킹'(multi-taking) 방식이라면 뉴진스의 곡은 주로 하나의 레퍼런스를 리듬-비트 라인으로 선택하는 '모노테이킹'(mono-takinng) 방식이다. 뉴진스의 음악적 레퍼런스는 아주 단순하다. '어텐션'(Attention), 'Ditto', 'OMG', 'ETA' 등 대부분 곡이 형식의 배치보다는 표현의 반복, 음악적 모듈의 조합보다는 음악적 플로우의 감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뉴진스의 곡은 리스너의 신경을 자극하고, 몸에 체화되는 강도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스타일과 퍼포먼스의 이펙트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뉴진스 이펙트는 퍼포먼스 스타일이다. 뉴진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가역적이다. 음악이 간결하고 일관적인 라인을 강조한다면, 퍼포먼스는 변이와 차이를 생산한다. 뉴진스의 음악적 조리과정은 자극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는 심심한 음식에 가깝다. 음악의 빌드업도 그다지 역동적이지 않다. 대신 듣기 좋게 귀에 감기는 후크 멜로디가 강하고 감상용으로도 좋다.

반면에 뉴진스의 안무와 퍼포먼스 스타일은 매우 자율적이고 분자적이다. 대체로 아이돌 그룹의 안무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속도감 있고 고난도의 칼군무, 즉 '싱크로나이징'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뉴진스는 반대이다. 곡 스타일은 하나로 유지하는 원테이킹 방식을 취하는 반면 안무는 멤버들 각자 개성을 살려 다르게 추는 브리콜라주 형식을 취한다. 대표적인 곡이 'Cool With You'이다. 현대무용 혹은 한국 무용의 산조무(散調舞) 같은 'Cool With You'는 질서정연하지 않지만, 각자 개성을 분사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왁킹 댄스를 차용한 'Super Shy'나 현장감을 살려준 경쾌한 'ETA' 펑키 스타일의 안무도 스펙타클한 이미지로 볼 땐, 칼군무의 형식을 취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차이들을 배치함으로써, 표현의 자율적인 감각을 드러내고자 한다. 'Hype Boy'와 'OMG'의 도입부 퍼포먼스 역시 누군가 한 명은 다른 포즈를 취한다.

뉴진스의 패션스타일 역시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면서 미소녀 판타지를 생산한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러한 패션과 퍼포먼스 스타일이 이른바 "롤리타 콤플렉스"를 연상케 하는 성적 판타지와는 다른 맥락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뉴진스의 세 번째 이펙트이다. 뉴진스의 세 번째 이펙트는 향수, 추억, 연대를 서사화하는 새로운 세대의 '젠더 어펙트'(gender affect)라 말하고 싶다. 혹자는 뉴진스를 민희진이 제작한 예쁜 인형 세트로 말하곤 한다. 자기 목소리가 없이 기획된 대로 움직이는 영혼없는 '뉴바비 인형'으로 호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뉴진스의 5명의 멤버들은 소아적 성애 판타지, 성적 관음증을 상상하게 만드는 롤리타 아이돌로 치환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한 적어도 뉴진스의 멤버 정체성, 음악 스타일, 뮤직비디오, 시각 이미지, 텍스트에서 성애적 관음증이 강하게 드러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주어진 텍스트와 상관없이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 왜곡된 성애적 관음증이 아닐까?

소녀정동의 이펙트

뉴진스는 과연 자율적이고 독립적일까? 뭔가 색다른 것을 기획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품화된 새로운 아이돌 아이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정말 민희진의 마리오네트들인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뉴진스의 음악과 스타일을 소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뉴진스의 음악과 서사는 그 시절 그때 소녀들의 정서와 감정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Attention', 'Ditto', 'Hype Boy', 'OMG'가 다 그렇다. 뉴진스의 사운드가 복고적이고, 영상이미지가 과거의 추억과 회상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서 현재의 관계를 결속하고자 하는 정서적 연대감을 상상하게 만든다. 뉴진스의 풋풋한 소녀다움의 이펙트는 정서적 교감과 스타일의 젠더적 고유함을 유지하려는 어펙트, 즉 정동의 감정을 발산한다.

뉴진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프로듀서 민희진의 외적인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 민지, 하니, 다니엘, 혜린, 혜인 이 5명의 멤버는 여전히 10대 소녀이고 거창한 단어로 그들의 문화를 규정하기에는 성장형 상태에 있다. 그러나 적어도 뉴진스가 지금까지 보여준 웰 메이드 된 음악과 정교한 가사, 심리적 깊이가 있는 영상과 개성 강한 패션스타일은 하나의 잘 짜여진 상품이라는 정의로는 해명이 안 되는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뉴진스의 '뉴지너레이션'은 매우 도발적이다.

NewJeans (뉴진스) '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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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 예술정책, 공연기획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예술마을프로젝트 총감독,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 전주세계소리축제 부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예술@사회>, <예술과 삶>,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 <문화자본의 시대>, <문화부족의 사회>, <게임의 문화코드>, <아시아문화연구를 상상하기>, <아이돌>(공저), <예술마을의 탄생>(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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