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역사 지우기'에도 위안부 '양심' 지킨 고노 담화 주역, 고노 요헤이 별세

산케이 "증거 없는데도 위안부 강제성 언급해 화근 남겨" 비판적 태도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한 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일본 언론들은 요헤이 전 의장의 주요 업적으로 '고노 담화'를 꼽았다.

10일 일본 <교도통신>은 관계자를 인용해 자민당 총재를 역임했던 고노 요헤이 전 의장이 지난 8일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장례식의 경우 생전 가까운 인사들과 치렀다고 전했다.

통신은 고노 전 의장에 대해 "1993년 미야자와 내각의 관방장관으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야당 시절의 자민당 총재를 지냈으며, 당내에서 '온건파'의 상징적인 존재로 알려졌다"고 보도해 그의 가장 주요한 업적으로 고노담화 발표를 꼽았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관방장관 시절인 1993년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옛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다만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고노담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옛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언급해 화근을 남겼다"며 담화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보였다.

고노담화는 1993년 8월 4일 고노 당시 관방장관이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1991년 12월부터 조사해 온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위안부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담당하였으나 그 경우도 감언, 강압 등에 의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으며"라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고노 관방장관은 "전지(戰地)로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한반도는 일본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 등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고노 장관은 "본건은 당시의 군의 관여 하에 수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금 그 출신지의 여하를 떠나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お詫び)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며 공식 사죄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다뤄질 때마다 고노담화는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담화가 나온 이후부터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첫 번째 집권기인 2007년 3월 16일 당시 일본 내각은 의회 답변서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없었다'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내리면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베 신조 두 번째 집권기인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의회에 제출한 고노 담화 작성 경위 검증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요식적이었다면서 담화를 무력화하려고 시도했다.

또 같은해 3월 12일 스가 요시히데 (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 차원의 위안부 강제 연행이 없었고, 강제 연행을 증명하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제1차 아베 내각이 국회 답변에서 밝힌 바 있다"라며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발표해 한국 정부가 반발한 바 있다.

이렇듯 일본 정부 차원의 담화 부정 시도가 있었음에도 고노 전 의장은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일본 정부의 조사 및 담화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 검증이 이뤄지던 2014년 6월 21일 야마구치(山口)시에서 열린 강연에서 "군 시설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많은 여성이 (위안소에)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노 전 의장은 특히 특히 위안부 모집이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지만, 위안소에 들어가면 군의 명령을 받고 일했다면서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고노 전 의장은 1967년 중의원 선거에서 예전 가나가와 3구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처음 당선된 이후 연속 14선 의원을 지냈다. 그는 1993년 자민당의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이후 자민당 총재로 취임했는데, 역대 자민당 총재 중 유일하게 총리가 되지 못한 인물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그는 1994년 자민·사회·사키가케 3당 연립을 통해 무라야마 내각이 출범하며 자민당이 정권 구성을 다시 했을 때 부총리 겸 외무대신을 맡았으며, 이후 오부치와 모리 내각에서도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2003~2009년에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는데 2029일의 재임 일수는 오시마 다다모리 전 의장에 이어 일본 헌정사상 두 번째로 길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했다.

신문은 그가 중증 간 기능 장애를 앓고 있어 지난 2002년 장남인 고노 다로 전 외무대신으로부터 생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 지난 2000년 7월 14일 고노 요헤이(왼쪽) 당시 외무상이 김대중대통령을 예방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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