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홍 일병 유족의 눈물 "한동훈 장관님, 약속 지켜주십시오"

군 과실 사망자, '이중배상 불가' 패소 … 법무부 약속한 개정은 '아직'

"한동훈 장관님. 홍정기 일병 엄마입니다. 다시 한번 강하게 요청드립니다. 직접 말씀하셨던 그 약속, 빨리 지켜주십시오."

한동훈 장관이 고(故) 홍정기 일병 사건을 언급하며 지난 5월 입법을 예고한 국가배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5개월째인 지금도 여전히 발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 사이 홍 일병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의 1심이 판결이 진행됐고, 유족은 결국 패소했다. 유족들은 한 장관에게 "약속을 빨리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홍 일병 유족은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서 이중배상금지 조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우리 정기 이야기에 목메어 하시던 (한동훈 장관의) 모습이 꾸며진 것이 아니라 진심임을 보여달라"라며 법무부가 지난 5월 입법예고한 국가배상법 개정안의 신속 발의를 촉구했다.

홍 일병 유족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판결은 지난 13일 이뤄졌다. 해당 소송은 지난 2016년 골수성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로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에 대한 △오진 △진료 여건 미보장 △민간 병원의 진단 무시 및 환자 방치 등 군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 2019년 유족이 제기한 소송이다.

법원은 앞서 지난 2월엔 피고 대한민국이 홍 일병의 죽음에 군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하라는 취지의 화해 권고를 내리는 등 홍 일병 죽음에 대한 군의 의료과실 책임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어진 13일 판결에선 '순직자로 분류된 홍 일병이 보상을 받았으므로 유가족의 위자료 청구는 헌법상 이중배상금지에 위배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 국가 책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아예 내리지 않았다. 국방부 또한 지난 2월의 법원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유족에 대한 사과 및 위로 역시 진행되지 않았다.

판결 이후 유족이 한동훈 장관의 이름을 언급한 데는 지난 5월 법무부의 국가배상법 개정안 입법예고가 배경으로 자리한다. 한 장관은 지난 5월 24일 법무부 브리핑에서 홍 일병 유가족들에게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으로서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홍 일병 사건의 재판을 예로 '이중배상 금지' 원칙의 불합리함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한 장관은 '이중배상원칙의 불합리를 합리적인 법으로 바꾸어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과 경찰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배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국가배상법의 개정 의지를 밝혔다. 한 장관은 이어 6월 5일 순직교도관 충혼탑 제막식 추도사에서도 고 홍정기 일병이 생전 집필한 글을 발췌해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하루 뒤인 같은 달 25일 법무부는 실제로 국가배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실시했지만, 실제 법안 발의는 이후 5개월째인 지금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법무부는 유튜브 쇼츠로 (한 장관이 홍 일병 사건을 언급한) 이 장면을 홍보하며 국가배상법 개정의 의지를 밝혔으며 한 장관은 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입법예고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배상법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되지 않은 상태"라며 "법제처 심사는 진행되었는지, 관계 부처 간 협의는 어찌 되고 있는지, 법안이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 상정되기는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야심차게 입법을 준비한 듯 발표하더니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무부가) 법안 낸다고 한 것이 5개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지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라며 "그러던 사이에 1심 선고에서 바뀌지 않은 법으로 인해 이중배상금지라는 악법을 적용한 판결을 받았다. 참담하다"고 이번 1심 판결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박 씨는 홍 일병 유족에게 위로와 공감을 표했던 한 장관의 지난 발언에 대해서는 "국방부장관에게 듣고 싶던 사과를 법무부 장관이 해주어 큰 위로가 되었다"면서도 "하지만 기대가 자꾸 실망으로 이어진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법안이 발의되질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앞에서 이중배상금지 조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우리 정기 이야기에 목메어 하시던 모습이 꾸며진 것이 아니라 진심임을 보여달라"라며 "다시 한 번 강하게 요청드린다. 직접 말씀하셨던 그 약속, 빨리 지켜달라"고 한 장관에게 호소했다.

임 소장은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는 생색만 내지 말고 조속히 입법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라며 "홍 일병 유가족을 포함해 마땅히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함에도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묶여 배상 청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숱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결하라"고 법무부에 요구했다.

한편 법무부는 홍 일병 유족들의 이날 기자회견이 언론 등에 보도되자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법무부는 △전사·순직 군경 유족의 위자료 청구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국가배상법 및 △병역의무 대상 남성에 대한 국가배상액 산정 시 예상 군복무 기간을 취업가능기간에 전부 산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배상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오늘(10월 19일) 위 법안들은 차관회의에서 의결·통과되었고,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의결되면 국가배상법 개정안은 이달 중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국가배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들은 시행일 기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될 예정"이라며 "법무부는 국가와 동료 시민을 위해 병역의무를 다했음에도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법안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에서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진 고(故) 홍정기 일병의 유족 등이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국가배상소송 패소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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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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