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외면하고, 되레 손배 청구라니…" 군인권보호관 사퇴요구 봇물

군 사망사고 유족들도 "군인권보호관 균탄한다" 항의 방문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를 기각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해당 긴급구제를 신청한 군인권센터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인권단체 및 군 사망사고 유족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봉쇄하겠다는 것"이라며 김 보호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5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김 보호관은 군인권센터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상대로 각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센터 측은 지난 달 29일 군인권보호위원회가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하자 다음날인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군인권보호관이 국방부의 박정훈 대령 집단린치에 가세"했다고 비판했다. 김 보호관은 해당 비판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부당한 의혹제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긴급구제 신청은 지난달 14일 군인권센터가 박정훈 대령 항명죄 수사 중단, 국방부검찰단 수사 배제, 징계 절차 중지 등을 요청하며 인권위 측에 접수한 진정으로, 인권위는 진정을 접수한 지 진정을 접수한 지 15일 만인 같은 달 29일 상임위 회의를 열고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

기각 결정이 나오는 동안 박 대령에 대한 국방부 징계 처분은 이미 완료(18일)됐고, 이에 군인권센터는 "인권침해가 예상돼 긴급한 조치를 요구했는데 자기가 보름이나 시간을 허비해놓곤, 그 사이에 이미 인권침해가 발생했으니 구제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군인권보호관이 하다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라며 김 보호관을 비판했다. (관련기사 ☞ 안권위,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기각에 "국방부에 가세하나" 비판)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군인을 보호해야 할 군인권보호관이 도리어 박 대령 항명죄에 힘을 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김 보호관이 센터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곳곳에선 "적반하장"이라는 취지의 비판이 나왔다.

고(故) 윤승주 일병, 이예람 중사, 홍정기 일병, 황인하 하사, 남승우 일병, 박세원 수경, 고동영 일병 등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실을 항의 방문해 김 보호관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이들은 특히 "우리 아들, 딸들을 지켜주라고 만든 자리인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군인권보호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누구보다 애써온 군인권센터를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니 어이가 없다"라며 김 보호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군인권보호관 제도는 고 윤승주 일병과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7월 만들어졌다.

이날 오전 외부일정으로 경기 용인시 육군동원전력사령부를 방문한 김 보호관이 오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유족들은 군인권보호관실 앞에서 대치를 이어가기도 했다. 현장을 찾은 인권위 관계자가 "일정을 다시 잡아 진행하겠다"고 해명하면서 유족들은 이날 오후 4시 30분께 해산했다.

인권단체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인권운동더하기 인권정책대응모임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인권단체의 문제제기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면서, 손해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는 것"이라며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는가" 꼬집었다.

특히 이들은 "군인권센터가 군인의 인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군인권보호관이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 대한 긴급구제를 다루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의혹과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상임위원으로서, 군인권담당 위원으로서 의혹을 품을 만큼 석연치 않게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30일 군인권센터의 기자회견에선 김 보호관과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의 불참으로 무산된 긴급구제 관련 상임위원회 회의가 주요 화두로 던져졌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당초 지난달 18일 군인권보호위가 아닌 인권위 차원의 긴급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박 대령 긴급구제 안건을 논의하려 했으나, 김 보호관 등의 불참으로 회의가 무산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 보호관은 같은 달 29일 군인권보호위 회의를 개최해 해당 안건을 논의했고, 최종 기각을 결정했다.

당시 센터 측은 "김 보호관은 군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긴급구제는 상임위가 아닌 군인권보호위에서 논의해야 해서 18일 상임위 개회를 거절했다고 변명하고 있다"라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정책대응모임 측은 이날 성명에서 "국가기구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와 비판은 인권단체들의 소임인데 그것을 이유로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비판의 목소리를 봉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법리를 따지기에 앞서 위기에 처한 군인에게 군인권보호관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 대신에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며 보호하고자 하는 인권과 명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적했다.

군인권센터 또한 이날 성명을 내고 "(김 보호관이) 자기 과오를 반성하고 박 대령에게 사과를 전하기는 커녕 군인권센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하라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라며 "군인권보호관이라는 사람이 군대를 상대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와 전쟁을 벌이려 하니 딱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보호관은 '군인권보호관이 국방부의 외압에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는 센터 등의 비판에 "건강을 이유로 부득이하게 상임위에 불참하게 된 것"이라며 "8월 16~18일 사이 해당 안건을 다룰 군인권보호위를 소집하려 했으나 위원 중 1명의 일정 문제로 소집이 불가능해졌다"고 해명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