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주식파킹보다 무서운 건 '반(反)여성주의'

[기자의 눈] '여성을 혐오하는 여성부장관'이 탄생한다면?

'반(反) 여성주의 여성부.' 윤석열 정부 아래 여성가족부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김현숙 여가부장관에 이어 김행 장관 후보자를 반 여성주의 여가부의 기수로 낙점했다. "젠더논란은 소모적"이며 "여가부는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해야 한다는 김 후보자는 김 장관에 이어 윤 정부 반 여성정치의 새 국면을 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주식파킹보다도 중요한 김 후보자의 여가부 장관 부적격 사유다.

윤석열 정부의 반 여성주의 정치는 물론 오래된 일이다. 윤 대통령은 출범 이전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을 국정기조의 한 갈래로 내세웠고, 그해 4월 "부처 폐지 임무 부여받은 헌정 사상 초유의 장관 후보"(유정주 여가위원)로 김현숙 현 여가부 장관을 낙점했다. 김 장관도 그해 5월 진행된 국회 여가위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여가부 폐지에 동의한다"며 대통령의 공약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처의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는 부처의 수장, 이는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현 장관 김현숙과 후보자 김행의 공통분모다. 폐지를 설명하는 논리도 흡사하다. 김 장관은 청문회 당시 "여가부가 수행하던 실제적인 역할과 기능"을 인정한다면서도 이 기능들을 "새롭게 강화·보완"하기 위해 여가부 폐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후보자 또한 5일 청문회에서 "효율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을 개편하라는 요구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리는 일종의 온건론으로, "여성가족부 자체가 반헌법적 기관"(하태경),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윤석열) 등 발언이 표방한 대선 당시 강경론과는 차이가 있다. 윤석열식 강경론이 여가부 밖에서 여가부를 때리는 방식이었다면, 두 사람의 논리는 부처를 실제로 운영하면서 부처를 폐지해야 하는 그들의 모순적 입장에 맞춰 구성된 일종의 '역설'인 셈이다. (관련기사 ☞ '김현숙의 역설' … '여가부 폐지'로 여가부 기능을 강화하겠다?)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가 같은 논리를 펼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지금까지의 이력과 행보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이력을 보자. 김현숙 장관은 과거 경제학자로서 출산·보육 문제 주제의 연구활동에 집중한 인물이다. 김 장관은 과거 논문에서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남녀임금격차 등 성별격차 문제를 저출생 문제의 주요 요인으로 다루기도 했다. 물론 그는 장관 후보자가 되자 여가부 폐지 기조에 맞춰 입장을 뒤집었고, 성평등 전담부처에 "인구정책에 집중하기 위한" 인사를 배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최소한의 형식을 갖춘 인사였다고 평할 수 있다.

반면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소개되는 김행 후보자는 '여성'은 물론 '가족'이나 '인구' 분야와도 별다른 인연이 없다. 유일한 연관 이력인 2014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원장 취임 당시에는 "여성관련 활동이나 여성정책 및 성평등, 성인지 교육 등과 관련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한국여성단체연합)는 평가를 들었다. 대통령 부인과의 친분설이 도는 것은 "정치이력을 많이 쌓아왔다"며 억울해 하는 김 후보자의 말과 달리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이력이 전문성을 도약시켰다면 다행일 일이지만, 공공연히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미사여구"라 표현하는 최근의 도어스테핑 이력은 그 같은 기대를 접게 만들기가 충분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해당 발언 지적이 "가짜뉴스"라며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이력을 넘어 행보로 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5일 오전 청문회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부회장직을 역임한 뉴스사이트 위키트리를 언급하며 김 후보자가 "혐오 장사로 주가를 79배 급등시켜서 100억 원대 주식 재벌이 됐다"고 지적했다. 유명 여성연예인 관련 가십을 통해 '사이버불링'을 조장하는 기사, 성폭력 사건 기사를 자극적인 표현으로 보도하는 기사 등 용 의원이 제시한 사례들은 굳이 한국기자협회의 보도원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골적인 '여성혐오' 기사들이었다.

지난달 20일엔 김 후보자가 해당 매체의 2012년 인터넷 방송에서 강간 등에 의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서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가톨릭 국가 필리핀의 법을 긍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남긴 일이 드러나기도 했다. (관련기사 ☞ 김행의 '황당 발언', 강간으로 임신해도 '정서'로 극복?)

방송에서 김 후보자는 "여자가 (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이를 낳았을 적에 사회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로런스가 있으면 사실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키울 수 있다고 본다"는 등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출산을 임신중단 권리보장이나 사회경제적 지원이 아닌 '사회적 관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여성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포장 뒤로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여쭙고 싶다"던 지난달 15일 김 후보자의 발언과도 궤를 같이하는 말이었다.

과거의 개별 발언만으로 현재의 인물을 평가할 순 없다. 더군다나 여성혐오는 어떤 개별적인 행위를 넘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이자 구조다. 가장 신중한 페미니스트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혐오를 내재할 수 있고, 가장 급진적인 여성운동가도 어느 순간엔 반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을 주변의 모두에게 해명하진 않는다. 다만 김 후보자는 여성정책과 성평등추진체계의 전담부처 장관 후보자다. 청문회를 진행하는 여가위원들, 그 장면을 대중에 전달하는 언론들, 이를 듣고 보고 판단하는 국민들에게는 김 후보자가 현재 본인의 그 '혐오의 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이를 극복할 비전은 무엇인지 묻고 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 김 후보자는 이 과정에서 설명과 설득에 실패했다.

가령 김 후보자의 필리핀 낙태 관련 발언이 알려진 날, 다수의 언론은 낙태금지법으로 불법낙태에 내몰리는 필리핀 여성들의 현실을 지적하는 내용을 기사에 포괄했다. 낙태의 금지가 불법낙태로 이어지고, 이것이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룰 통해 알려진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내 여성단체들은 올 7월부터 논란이 된 영아살해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이 문제해결의 핵심적인 요소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영아 살해'라는 범죄로 '내몰린' 여성들이 있다)

김 후보자가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고 여가부장관으로서의 비전을 설득하려 했다면, 이 같은 문제와 논의들에 대해 공감 혹은 최소한의 반박이라도 전해야 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이나 사회경제적 지원에 앞서 관용이 필요하다는 본인의 11년 전 발언과 관련해, '여성권리 보장 및 사회경제적 지원'을 수행해야 하는 여가부장관 후보자로서 변명이라도 전해야 했다. 그래야 논쟁이 성립한다.

김 후보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을 향한 보도들에 대해 "기초적인 국문 해독도 안 되는 기자의 가짜뉴스"라며 "제가 언제 강간당해도 낳으라고 했습니까?"라고 호통 쳤다. '임신중단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궁금하다'는 한 기자의 질문은 납작해졌고, 여가부의 담당분야인 성·건강·재생산권리에 대한 더 나은 논쟁의 기회는 사라졌다.

급기야 김 후보자는 5일 청문회에서 위키트리의 '혐오장사'를 지적한 용혜인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이게 현재 대한민국(언론)의 현실이기도 하다"며 동문서답을 남겼다. 본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부끄럽다"면서도 2021년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했으니 "(성평등 보도 기준에 대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것이라고 답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9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김현숙 장관이 자신의 '역설'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회피였다. 그는 청문회 당시엔 "구조적 성차별은 없는가"라는 질의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고, 인하대·신당역 등 여성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남녀대결보다 추모가 먼저'라는 식의 태도로 여성폭력 전담부처의 책임을 회피했다. 올 8월 일어난 신림역 등산로 여성살해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피하며 정부당국의 이상동기범죄 대책에 '묻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김행 후보자의 논란 대처 방식에서는 적극성이 돋보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19년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낙태죄가 여전히 입법공백에 놓여있는 일은 "여야와 여성단체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언론사가 혐오성 기사를 쏟아내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입법공백으로 사각지대가 생기고 언론의 여성혐오가 한국의 현실인 건 맞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낙태죄를 없애고 입법공백을 해결하라는 여성단체의 20년 외침이나 이를 비난하며 "싸움"을 만들어온 반대세력의 이야기가 빠져있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실"에 일조하는 개별 언론사의 책임이나 그 같은 '구조적 성차별'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본인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인터뷰 이야기도 빠져있다.

누락된 이야기들 위에 홀로 서서, 그는 "가짜뉴스, 살인병기"에 맞서 싸우는 "가짜뉴스 퇴치부 장관 후보자가 된 것 같다"고 본인을 형상화한다. 적극적인 자기변호와 물러나지 않는 전사적 기질, 각각 블랙리스트, 뉴라이트, 여성혐오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유인촌-신원식-김행 신임 후보자들의 특징이 재확인된 셈이다.

혐오를 인정하지 않는 장관의 존재, 각종 여성정책 예산의 삭감, 또는 정책 및 보고서 내의 '여성 지우기' 등으로 "여성가족부가 오히려 여성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이미 만연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장관 후보자의 등장이 '반 여성정치의 새 국면'을 열 것이라 예상하는 건 김 후보자의 이 같은 적극성 때문이다.

현 장관의 회피력에 차기 장관의 전사기질까지 더해진다면 여가부는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여성 지우기에 나설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수를 필두로 여성가족부 또한 정부의 새로운 '이념전쟁' 선두에 서게 되진 않을까? 머지않아 '여성을 혐오하는 여성가족부'라는 표현을 숱하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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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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