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는 주민등록증이 있다!

[노동하는 자유인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⑥]

다른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음만 바꾸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 신분은 정확히 말하면 노동노예입니다. 이렇게 지적하면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본에 종속된 임금노동 노예 신분이 바뀌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런 삶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기업의 틀 안에 갇혀 있는 한 노동자들의 삶은 결코 자유인의 삶으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주식에 투자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주요 고객으로 쿠팡과 아마존 사이트에서 '구매하기'를 누르고 배달앱으로 체인점의 치킨을 시켜먹는 삶을 지속하는 한 자본주의를 튼튼하게 지켜주는 노예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어느 순간 마음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꾸기만 하면 곧바로 다른 신분과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또는 이중의 신분과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해 집니다. 아무리 자본의 힘이 막강할지라도 사람의 경제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의기투합해서 모이면 협동경제의 조합원 '일꾼'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의 종속에서 해방되어 자신이 스스로 기업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길을 열어줍니다.

일꾼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노동자라는 표현이 주로는 임금노동자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로버트 오언이나 '몬드라곤의 기적',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의 일제 강점기 협동조합운동 등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충분히 입증된 경제이기에 굳이 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시급이 문제지 프리랜서 '자유' 노동자로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실상을 분석한 필 존스는 미세노동이 역으로 노동자의 독립성과 유연성을 쟁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노동자는 지역 주민이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극단화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복합 재난 시대에 더 확실하게 노예노동에서 탈출해 확실하게 자립과 자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미래 생존의 길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농민의 삶입니다. 농촌과 농업입니다. 도시인들이 몰라서 그렇지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굶어죽는 일은 없습니다.

노동자는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딸 아들과 같은 가족 정체성에서부터 친구, 동창회 등 모임과 단체 회원, 지역 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기후재난과 불평등을 이웃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체성과 신분이 지역 주민 정체성입니다. 그동안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으로 기업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 노동자에게 집과 지역은 거의 하숙집이나 잠깐 머무는 장소에 불과했습니다. 노동자는 이제 생존을 위해서 마음과 세계관을 바꿔 스스로 지역 주민 정체성을 강하게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의 구 단위 선거구 지역에는 지금까지 대체로 3개의 주요 계층이 거주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층, 자영업자 층, 노인 층이 그들입니다. 선거 입후보자들은 이들 세 계층을 주요한 선거운동 대상으로 삼습니다. 노동자는 기업 소속으로 이른바 중앙의 공중전 선거 공약 대상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쪽수'인 노동자들이 지역 주민으로서 기후정치의 주민등록증을 새롭게 스스로 발급한다면 그것은 체제 전환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 주민들이 세상을 바꾼다

어떤 정치운동도 비옥한 토양 위에서 출발해야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독일 녹색당은 독일의 68혁명과 신사회운동이라는 거름 위에서 창당되었습니다. 오늘날 독일 녹색당은 소수당의 연정 전략을 뛰어넘어 주 단위에서는 집권을 넘보는 제1당으로 도약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의 기후정치 세력화는 무엇보다도 2016/2017 촛불항쟁이라는 역사와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권자 촛불항쟁을 보수 기득권 정권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진보' 기득권 세력의 고액 '어공' 일자리 나누기 권력 잔치로 말아먹은 문재인정부의 실패가 오히려 기후-불평등 정치운동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높은 기후위기 '선진' 악당국가이자 극단의 불평등 사회인 한국의 참혹한 현실이야말로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기후체제 전환과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 정치운동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체제 전환의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입니다.

여의도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주권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불평등 연대연합 정치운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드넓은 초록 공간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셈입니다.

약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 한국에는 여전히 활발하고 다채로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세력들이 중앙과 지방에서 꿈틀거리면서 도약과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구호,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자"는 디지털미디어 시대 만고불변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지침입니다. 주권자들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무지개연대가 지역에서부터 다시 신발끈을 질끈 동여맬 때,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이 뿌려놓았던 동학의 집강소 민주주의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박승옥, '갑오년에 돌아보는 집강소 민주주의', <녹색평론> 135, 2014년 3/4월.)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지금 여기에서 더 많은 우리로, 지역주민으로, 지역 노동조합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연발생의 민란 폭발은 수많은 인민의 희생만을 낳고 재난국가와 사회 체제 자체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직 먼저 각성한 소수가 조직화되고 그 소수가 다수를 주체로 세워 수많은 투쟁을 통해 체제 전환을 이룩해야만 인민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개발과 성장 경제체제를 순환과 공유경제 체제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탄소체제를 햇빛체제로 빠르게 혁명하지 못하면, 수천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기후학살을 피하지 못합니다.

인민의 기후학살을 막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후-불평등 정치세력 조직화를 꾀하는 주체들, 체제 전환의 촉진자-연결자 소임을 서원으로 세운 사람들의 과제일 것입니다.

바벨탑의 바깥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바벨탑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재난도 재난이지만 성장 기계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와 모든 천연자원의 고갈(Peak Everything)이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지구라는 닫힌 계 안에서 이미 50여 년 전인 1972년 도넬라 메도즈 등이 <성장의 한계>에서 제기했던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있는 체제가 전혀 아닙니다. 그냥 절벽을 향해 제동장치 없이 고속으로 무한 질주할 뿐입니다.

우선 당장 기후재난과 함께 들이닥칠 식량위기 사태에 대해 자본주의 산업농업은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개발국, 후진국이라고 비하되는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변방에서 기후위기에 적응-극복할 수 있는 기후농업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돼 전 세계로 퍼져나간 벼강화농업(SRI, system of rice intensification) 등이 한 사례입니다.

(* 벼강화농법: 볍씨를 하나씩 30cm 이상씩 드문드문 심고 물대기를 절반 이하로 줄여 메탄가스 발생을 줄이는 가뭄 대비 농법. 한국농어촌공사, <용수절약을 위한 SRI 벼재배 적용성 연구(Ⅱ)>, 2011.)

자본주의 산업농업은 자본이 주인입니다. 산업농업 체제에서 농민은 자본에 복무하는 농업경영인이자 농업노동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식량작물은 우리와 유전자를 함께 나눈 이웃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상품, 돈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은 팔리지 않고 돈이 되지 않으면 폐기처분 됩니다. 농민들이 배추 가격이 폭락했다고 멀쩡히 잘 자란 배추를 그냥 갈아엎는 까닭입니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김종철은 생전에 농민들이 쌀값 인상투쟁을 벌이면서 가을 수확 직전의 논을 갈아엎고 벼 나락을 불태우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깊은 슬픔과 분노와 연민의 심정을 여러 번 토로한 바 있습니다.

산업농업은 산업화 이전 전통 농업 시대 농법과 달리 다수확이 목적이 아닙니다. 더많은 돈이 목적입니다. 농업은 이제 풍년 대신 '풍쩐(豊錢)'이 제일의 목적인 '쩐의 농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 기업과 똑같이 올해의 이윤이 최대 목표이지 무슨 기후위기니 불평등이니 중장기 대안 마련이란 먼 나라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고, 이는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에 해당합니다.

체제 전환의 출발점은 거듭 강조하지만 다른 세계관입니다. 근대 산업화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기후위기 대안도 찾아질 수 없습니다. 산업체제의 바깥에서 전혀 새로운 기후체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기후 주권자들이 일어서야만 바벨탑 안에 갇힌 사람들이 바벨탑 바깥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먹거리 소비자인 도시 주민들이 먹거리와 농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 자신의 세계관, 즉 마음을 바꾸는 데서 출구는 찾아질 수 있습니다.

▲ 2011년 4대강 사업으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우리 이대로 농사 짓게 해주세요"라며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팔당 유기농 단지'에서 농성을 부렸다. ⓒ프레시안

도시텃밭, 치유의 농업

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를 도시민부터 스스로 폐기하고 자유인으로서 자립하는 생태순환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도시텃밭에서 스스로 농부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도시의 빈땅이나 도시 근교에서 몇 평 정도의 채소 농사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도시텃밭 농사를 마음 치유와 공동체 복원의 근거지로 삼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 자체가 산업사회의 노동노예 생활과 경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생명은 그렇게 다른 생명과 공명하고 공생하고 서로가 서로를 돕습니다.

기후농업으로의 전환은 도시텃밭의 치유농업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시인들과 농민들의 직거래 협동조합이 더 많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한살림과 아이쿱, 행복중심 생협 등이 단순한 유통 협동조합 기업을 넘어서서 시군구 지역을 기반으로 이웃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은 그러므로 체제 전환운동에서 매우 의미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곧바로 식량위기임을 인식하는 노동자들과 도시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체제 전환은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북한과 쿠바의 공통점과 차이점

쿠바는 1980년대까지는 중남미에서 잘사는 사회주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2년 구소련이 무너지자 쿠바에는 구소련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공급받던 석유가 하루아침에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장도 멈추고 버스와 자동차도 멈추고 쿠바 전체가 산업화 이전 시대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석유농업을 하던 쿠바 농업은 트랙터도 쓸 수 없고 비료도 줄 수 없게 되자 생산량이 급감했고 쿠바는 곧바로 식량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쿠바 인민들은 '바리오'라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국유지건 뭐건 눈에 보이는 땅이란 땅에는 모두 닥치는대로 식량작물을 심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쿠바의 도시텃밭입니다. 쿠바 인민들은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굶어 죽는 사람들은 없이 국가 비상사태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구소련의 석유공급으로 쿠바와 마찬가지로 석유농업을 하던 북한이 식량위기 사태를 맞아 국제사회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고 수를 알 수 없는 아사자가 발생했던 것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북한은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훨씬 잘 사는 아시아의 사회주의 모범국가였습니다. 석유정점(Peak Oil)을 강제로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쿠바와 북한이 서로 다른 경로를 거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쿠바는 국가가 탈석유의 유기농업을 연구하고 준비를 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그런 준비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쿠바에는 인민의 자유와 함께 바리오 지역공동체가 이웃 민주주의의 강력한 사회안전망으로서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체제는 그런 지역공동체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오직 수령과 인민 개개인간의 직거래 지도-숭배와 지시명령-복종 관계만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수령과 국가가 식량과 생필품을 배급해주지 않을 때, 자유와 대안의 세계관을 잃어버린 수동형 인민들이 이제나저제나 수령이 배급해주는 식량을 기다리다 굶어죽는 사태는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구소련 몰락 후 식량배급이 끊긴 러시아 인민들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도시 텃밭인 ‘다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으로 런던에 식량 공급이 중단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런던 시민들은 집 앞의 정원(gardening)과 도시 곳곳을 도시텃밭으로 바꿔 승리를 위한 경작(Dig for Victory)으로 전시 식량 공급 중단 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 텃밭은 이렇게 생존의 젖줄로 바뀔 수 있습니다.

기후재난의 설국열차를 정지시키는 힘, 노동자 주민운동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말합니다. 그런 빈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 붕괴와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반증입니다. 위기를 정말로 기회로 바꾼 사례가 있긴 합니다.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전략과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카스트로가 1956년 12월 2일 쿠바 상륙 작전에서 실패한 뒤 살아남은 20여명과 함께 반공산당주의를 명확히 천명하면서 산속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쳐 마침내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게 그런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당의 세계관과 전략을 버리고 체제의 변방으로 들어갔기에 쿠바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그 같은 산 속이나 정글이라는 도피처를 전혀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기후재난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전략의 선택은 그러므로 거의 유일하게 오직 마음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꾸는 녹색전환, 인생전환의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절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 자본과 기득권 엘리트 권력의 설국열차를 정지시켜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인민들을 열차에서 하차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합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앞장섰던 청년 노동자들이 대거 은퇴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가 10여년 전부터 매년 70만~1백만 명이나 노년 세대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향이 농촌이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이 노년 신빈곤층으로 또다시 하향 취업해야 살아나갈 수 있는 비정규 노동노예 생활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이들부터 귀농귀촌하는 노동운동의 패러다임 전환은 세계관만 바꾸면 즉시 가능한 일입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기도 했던 노동운동 주역들부터 연대연합의 지역정치운동 초동 주체로 나서는 도원결의는 마음만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야말로 노동하는 자유인으로서 해방된 여생을 누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뒷방 '틀딱'(틀니 딱딱거리며 잔소리한다는 의미의 노인 비하 용어)을 벗어나 청장년의 뒷배로서 새로운 노년의 상을 창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생존의 근거지는 다름아닌 지역공동체입니다. 연대연합입니다. 체제 전환의 정치, 지역정치의 전환입니다. 기후농업입니다.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운동의 ‘앎’과 ‘함’의 전환, 그런 세계관의 대전환이 절박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끝.

(이 글은 한국ILO협회의 <국제노동> 255호[2023년 여름호]에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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