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올리는 전세, 욕망의 '거품' 부동산 멈추면 사라진다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지금 필요한 정책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전세는 우리나라의 민간 임대주택 공급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였던 임대차제도다.

80년대 유년시절, 나는 작은 마당이 있는 서울 변두리 단독주택에 살았다. 방 3개, 욕실과 거실, 마당에 재래색 화장실이 있던 우리 집에는 3가구가 모여 살았다. 가능한 한 많은 방을 내어 전세를 줬다. 건넛방에는 중고생 아들 둘을 둔 아주머니네 가족이 살았다. 지하실은 원래 창고와 부엌으로 쓰던 곳이었으나, 간단한 공사를 거쳐서 방과 욕실 겸 주방으로 쓸 수 있는 간이공간을 들였다. 여기에도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이를 둔 한 가족이 살았다. 고작 이십 몇 평짜리 단독주택에 12명이 모여 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지하 방은 여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올 때면 방바닥으로 물이 들어찼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지하방의 세간살이를 우리 집 거실로 옮겨놓고, 양동이와 바가지로 물을 퍼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여름 장마철마다 빗물이 스며들어 물바다가 되었던 지하 방은 결국 세를 줄 수 없어서 원래대로 연탄을 쌓아놓는 창고로 사용하였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냉기가 돌고, 컴컴하고, 축축하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지하방에 들어가면 마치 동굴 탐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택은 부족했고 임대인도, 임차인도 돈이 없었으니,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공간마저도 어떻게든 수를 내어 전세를 줬던 것이다.

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고속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절, 제조업과 수출기업 육성을 위해 가계대출이 제한됐다. 집주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무이자 자금조달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임차인 또한 매월 월세를 납부하는 것보다 전세를 선호했다. 전세금을 맡겨놨다가 임대차계약 만기에 그대로 되찾아갈 수 있어서다. 목돈을 거치해두는 것은 일종이 저축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므로, 전세는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가 선호하는 제도였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구조조정되고, 기업대출이 위축되자 김대중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대출 및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고 부동산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를 통해 소비활성화와 내수진작 효과를 얻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는 노무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풀린 돈이 자산거품을 만들어냈다.

부동산 시장이 계속 침체했다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분양이 증가하고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미분양대책의 일환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하고 전세보증금에 대한 공적보증제도를 도입하였다. 당시 부동산 가격상승 기대가 줄어들고 주택가격 하락 위험이 커지자, 실수요자 또한 주택 구매를 미루고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전세가격은 폭등하였다. 주택가격은 정체 또는 하락하는데 전세가격만 폭등하였으니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좁혀지고, 역전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주택가격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임차인은 전세를 선호하는 반면 임대인은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그런데 전세가격은 아무리 폭등하더라도 매매가격보다 높을 수는 없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증금 미반환시 채권회수를 위하여 필요한 비용과 시간, 부동산가격변동의 위험 등을 고려하면 전세는 매매가격보다 낮아야한다. 따라서 전세가격의 상한은 매매가격이 되고,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가까울수록 매매가격은 시세차익(자본이득)을 배제한 사용가치(용익가치)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즉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택가격 하락세가 이어졌다면 전세가격은 궁극적으로 거품이 걷힌 주택 매매가격과 같아졌을 것이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전세는 부동산시장의 하락 안정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소멸해갈 운명이었다. 전세가격과 주택가격의 차이가 없다면 자금조달이 가능한 임차인은 굳이 위험한 전세가 아니라 주택 구입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상승 기대가 없고 다주택 보유로 인한 세부담이 크다면, 임대인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할 이익이 없다.

전세가 집값을 밀어 올리다

한편 다주택자는 월세를 통한 수입과 보유에 따른 비용을 비교하여 민간임대주택 공급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주택경기부양과 미분양해소를 위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각종 조세 감면, 규제 완화 정책을 폈다. 주택가격 하락을 막고 미분양 건설사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확대하고, 공적 보증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때 풀린 규제로 인해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다시 폭등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십여 차례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전세자금대출과 전세보증금의 공적보증을 더욱 확대하였다.

부동산 가격 폭등시장에서 정부가 아무리 담보대출을 규제한들, 전세자금대출제도로 인해 부동산시장에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우회적으로 흘러들어갔다. 임대인이 전세를 끼고(즉 임차인에게 돈을 빌려) 가격상승이 기대되는 부동산을 구입하는 갭투자가 창궐하였다. 허술한 전세자금대출제도와 보증으로 건설자금조달이 용이해지면서 조직적으로 신축빌라 가격과 전세가격을 부풀리고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편취하는 전세사기 문제가 폭증하였다. 결국 정부 정책으로 인해 전세는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집값을 밀어 올리는 뇌관이 됐다.

▲지난달 3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연합뉴스

부동산 부양과 전세의 관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월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세제도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장기 우상향 시장에서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므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없애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의 부동산시장이 금리 불안 등으로 인해 변동성이 커진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은 정부가 전세제도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문제다. 주택 매매가 침체하자 전세제도에서 파생하는 여러 문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원인은 결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전세자금대출제도, 전세보증금 공적보증제도, 다주택 장려를 위한 조세감면과 규제완화 정책에 있다. 어느 정부나 임차인 보호, 주거안정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건설·금융산업 지원과 부동산 부양정책이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인위적인 부양책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7일 정부는 민간건설사의 주택 인허가, 착공 실적 급감과 LH공사의 철근 누락사태 등으로 주택공급 부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공급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주택공급대책이라 하였으나 실질적인 내용은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 용지 전매허용, PF보증 강화, 대출만기 연장 등 금융지원과 비금융 규제완화다. 정책 내용 대부분이 주택공급자인 건설사를 지원하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옳지 않은 정책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을 통한 가격의 자율적 조절기능을 통해서 유지된다. 지금 발생하는 전세제도로 인한 혼란은 정부가 시장의 조절 기능을 무시하고 대출과 보증제도를 통해 건설사와 부동산 투기자의 부채를 국민과 공공기관에 교묘하게 이전하고, 건설·금융 자본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시장조절기능을 통하여 제품 가격이 조정되도록 해 거품은 꺼지고, 한계 기업은 정리되도록 하는 것이 시장 원리다. 이러한 경제순환사이클이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부동산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 가격이 문제가 될 정도로 높다면 시장의 가격조절기능을 통하여 투기수요로 인한 거품이 제거되고 가격이 조정된다. 이후 수요자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유사한 수준으로 수렴하면 거래량이 늘고, 부동산 경기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것이다. 아울러 전세제도는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전세 대신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나오는 시대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 대신 자본주의 시장조절 기능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시장에 참여하면서도 전세제도의 장점만을 취하면서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주택 공급방안이 있다. 바로 공공사업시행자를 통하여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전세제도는 주택공급자의 자금조달수단이면서, 임차인에게는 월세 부담 없이 주거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널리 활용되었다. 전세임차인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지 주거서비스를 누리기 위한 목적만 갖는 주택수요자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실수요자다. 따라서 전월세 시장의 가격형성원리를 기본 모델로 하여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설계해 투기수요를 배제한 진정한 의미의 실수요자를 위한 주거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토지임대부주택의 장점은 건물만을 분양하여 건축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보유하면 자산가치 상승을 방어해 장기간 안정적인 토지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공공사업시행자가 최대한 큰 수익을 얻고,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저렴하게 토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하락, 대출이자 상승으로 분양성이 낮아져서 사업성이 떨어진 택지를 공공사업시행자가 저렴하게 취득하면 된다.

바로 지금이 그런 때다. 정부는 국민 세금이 투입된 기금으로 PF보증을 강화하거나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등 금융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조정되고, 한계기업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도록 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택지를 확보하는 데 주택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공공사업자를 통하여 국민 평균 소득으로 부담가능한 수준의 양질의 주택 공급으로 이어진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부동산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결국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하여 현재의 소득과 조달금리 수준에서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의 주택가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방법 또한 간단하다.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주택이 모자라다면 국가는 시장원리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공주택 공급대책에 나서야한다. 추후 부동산 가격 상승기 시세차익 목적의 투기수요를 방지하면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거품 낀 부동산 가격에 필요한 조치는 부양이 아니라 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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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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