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 우위 과시한 비명계…의총서 '김은경 혁신안' 반대 봇물

"대의원제 아닌 대여 전략 논의해야"…이닉연도 지원사격 "혁신위, 엉뚱한 길에서 헤매"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親이재명)계와 비(非)명계가 16일 의원총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비명계는 이날 작심한 듯 줄줄이 발언을 자청해 "대의원제 논의가 아니라 대여 투쟁에 집중할 때"라며 혁신안 폐기를 주장했다. 친명계는 이같은 비명계의 집단 반발에 대해 "혁신안에 불평·불만 있는 분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이라며 의미를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지도부는 의원총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오는 28일 의원 워크숍을 거친 후 혁신안에 대한 입장을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날 공개 발언 가운데 반대 의견이 압도적 다수를 이룬 데다가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와 '민주주의4.0'까지 사실상 절반 넘는 의원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터라 지도부가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명계, 의총에서 '혁신안 반대' 집중포화…이낙연도 지원사격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은경 혁신위가 지난 10일 발표한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배제', '공천 룰 변경' 등 혁신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의원총회는 8월 임시국회 준비 차원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였던 만큼 혁신안이 정식 논의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광온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에서 혁신안을 언급하며 혁신안에 대한 논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박 원내대표는 앞서 모두발언에서 "혁신위가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 자체를 우리가 폄하하거나 할 필요는 전혀 없다"며 "다만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의견을 수렴하는 그런 과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서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지난번 쇄신의총 의결로 구성이 되었는데, 혁신위의 결과가 잘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의원총회에서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안들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무려 20여 명의 의원이 혁신안을 두고 찬반 논쟁을 벌였다. 세 시간에 걸친 토론이 끝난 후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적어도 오늘 발언한 20명 중에서는 '혁신안에 대해 토론할 때라기보단 윤석열 정권의 실정이나 헌법 무시 등 큰 문제에 대한 대여 전략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훨씬 더 대다수였다.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하는 분은 상대적으로는 몇 분 되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의원총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20여 명의 자유 발언자 가운데 혁신안에 대한 찬성 발언은 두어 명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내대변인은 핵심 쟁점인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배제' 문제와 관련해 "대의원제는 통상적으로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선출 제도에 관해 토론하고 정하게 된다"면서 "다음 전당대회 전까지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 우리 당 상황을 반영한 깊이 있는 토론을 해나가면 되지 않겠나. 총선 이후에 (논의하자) 하는 말씀도 있었고, 반대되는 말씀도 있었다"고 전했다.

혁신위가 '의원 평가 하위 평가자에 대한 불이익 강화' 방안을 제안한 데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이 원내대변인은 "(공천 룰은) 총선 1년 전 선거와 관련한 당내 규칙을 미리 확정하는 시스템 공천의 취지에 따라 특별당규로 확정돼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추후에 총선기획단이나 추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다른 기회에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심각한 헌법 무시, 민생 파탄에 책임을 묻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가 더 시급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고 전했다.

비명계는 의총에 앞서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다. 대표적 비명계 의원으로 꼽히는 김종민 의원은 이날 오전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대의원제를 무력화하는 혁신안은 '정청래 대표 만들기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그게 사실이면 진짜 엄청난 일이다. 당을 완전히 망하게 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정인을 위한 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어떤 결정이 나든 이번 전당대회 말고 다음 전당대회부터 실행한다'든가, 아니면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통 전준위가 꾸려지는데 그때 심도 있는 논의를 해서 고민해야 한다"면서 "지금 이걸 가지고 괜히 당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가짜 엄마 같은 느낌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친문계인 전재수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혁신위가 출범할 때 '당신들의 역할은 여기까지, 권한은 여기까지' 이런 광범위한 합의도 없이 돈봉투 사건이 터지고 위기로 몰리니 혁신위부터 먼저 출발시켜놓고 보자고 해놓으니 태생적 한계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이날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혁신의 핵심은 도덕성 회복과 당내 민주주의 활성화를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하는 것"이라며 "그쪽으로 가지 못하고 길을 잃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며 혁신위를 비판,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총리는 "(혁신위가) 가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길에서 헤맸다"며 "혁신을 한다는 분들이 도덕적 권위를 잃은 것도 뼈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나아가 구속 기로에 서 있는 이 대표를 향한 사퇴 요구도 나왔다. 친이낙연계 설훈 의원은 지도부 전원에 대해 "사퇴하라"고 공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책임 있는 모든 사람이 내려놓고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설명, 지도부를 향한 사퇴론이 나왔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종민 의원도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총선을 치르는 게 민주당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논의해보고 총선에 임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명계 "불만 있는 분들이 많이 이야기", "반대 이유 뭔지 궁금"

반면 친명계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주로 혁신안에 불평·불만이 있는 분들이 많이 이야기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정 최고위원은 "저는 대의원제 폐지를 10년 전부터 주장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 왜 지금 이걸 이야기하느냐'(하는데), 총선 룰은 1년 전에 정하자고 해놓고 전당대회는 왜 1년 전에 정하지 말고 반대로 하자고 그러느냐"고 주장했다.

또다른 친명계 최고위원인 장경태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지금 해야 되느냐 가지고 시기적인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해야 될 논쟁이었다"면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비율을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룰 자체가 당의 후진적 체계"라며 혁신안을 지지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SNS에 쓴 글에서 "혁신안에 대해 특히, 대의원 1인 1표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침묵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에서 혁신안을 두고 격론이 오간 데 대해 "의견들을 잘 모아나가야 되겠다"고만 했다. 이 대표는 '사퇴 요구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오는 17일 오전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 진술서 요약본을 올리며 "1원 한 푼 사익을 취한 것이 없다"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혁신안 처리 과정에 대해"당 내 선거제도나 공천제도와 관련해선 의원총회가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오늘 한 20분 정도 말씀주신 부분까지 반영해서 이 문제를 어떤 추가 조치 거칠지 아니면 다른 시점에 논의할지 여부는 별도 논의를 거쳐서 아마 지도부가 결정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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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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