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극우 급부상 뒤엔 '극우 흉내' 기성 우파 기회주의

AfD 연이은 단체장 당선·지지율 창당 이래 최고…극우 주도 '반이민 정치' 영향 네덜란드 연정 붕괴

독일에서 극우 후보가 시장으로 선출되고 여론조사에서 극우 정당이 지지율 20%를 기록하는 등 극우가 다시 득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극우의 급부상은 독일 정부의 기후 관련 난방 정책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보이지만 기저엔 기존 우파 정당이 극우의 수사를 차용하면서 극우에 정상성을 부여한 것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이하 현지 시각)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라군예스니츠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한네스 로트가 시장에 당선됐다. 동부 튀링겐주 존넨베르크에서 AfD 소속 로베르트 제셀만이 지역 단체장으로 선출된 지 일주일 만이다. AfD에서 지역 단체장이 배출된 적은 이전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연이은 당선은 독일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번에 AfD 단체장을 배출한 지역들은 작은 선거구지만 이들 지역 뿐 아니라 구 동독에 속했던 독일 동부 주에선 AfD에 대한 공감이 유독 강하다. 독일 도이치벨레(DW) 방송은 독일 라이프치히대가 독일 인구 5분의 1이 거주하는 동부 5개 주(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를 대상으로 해 지난달 말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무슬림 이민에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또 해당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0%가 외국인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기 위해 독일에 온다는 혐오 발언에 동의했으며 3분의 1의 응답자가 유대인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연구자들이 연구 결과가 "극우 정당과 그들의 메시지가 이 지역 인구의 대다수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6일 발표된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Infratest Dimap) 조사에서 AfD는 2013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지지율 20%를 획득했다. AfD는 2주 전 같은 조사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소속된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꿰찬 지지율 2위 정당 자리도 유지했다. 해당 조사에서 AfD가 정당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2018년 9월 이후 약 5년 만에 처음이었다. 6일 발표에선 정당 지지율 1위를 차지한 기독민주당(CDU·28%)과의 지지율 격차도 2주 전보다 2%포인트(p) 좁혔다.

도이체벨레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9일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에서 AfD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극우 정당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유권자들의 공포를 이용해 세를 얻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에겐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fD의 최근 지지율 급상승은 올 봄 독일 정부가 발표한 인기 없는 기후 위기 대처 난방 정책의 반사 이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가구의 절반이 석유와 가스 난방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내년 1월부터 신규 석유 및 가스 난방 시스템 설치를 금지하고 기존 건물과 신규 건물 모두에서 65% 이상 재생 에너지를 통한 난방을 해야 한다는 계획은 야당인 기민당은 물론이고 자유민주당(FDP) 등 연정 내부에서도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연정 구성 정당인 녹색당은 탄소 중립을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지만 난방비 상승을 우려한 시민들은 여론조사에서 80% 가까이 이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현재 독일 정부는 중도 좌파 사민당, 신자유주의 성향 자민당, 친환경 정책을 추구하는 녹색당의 연정으로 구성돼 있다.

도이치벨레는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의 반대가 큰 상황에서 AfD가 정부의 에너지 및 기후 정책에 대한 가장 큰 반대자로 자처했다고 설명했다. AfD는 이번 정책을 "난방 대학살"로 부르며 "(난방비가) 감당이 안 돼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다"고 시민들의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매체는 AfD가 이민에 관용적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 시절엔 반이민을 내세우며 세를 불렸고 최근엔 녹색당을 겨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로 인한 연료비 및 물가 상승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 연정에서 제외되며 실제 통치 능력을 입증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극우의 순조로운 지지율 상승의 요인으로 꼽힌다.

극우의 영향력이 커지는 배경엔 이들의 포퓰리즘적 수사를 차용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기회주의가 깔려 있다. 기성 정치와 언론에 박해받는 피해자로 자처하며 변두리에 머물던 극우 정당의 수사를 기성 정당이 가져오면서 극우의 정상화 및 주류화에 기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지난해 9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복지 관광"을 하고 있다는 혐오 발언을 내뱉었다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민당 원로 정치인들이 이런 발언을 내놓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기성 정당이 극우의 수사를 차용하는 것은 극우의 메시지를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크게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에 따르면 이민 혐오 주장을 극우 정당이 낸 것으로 알았을 땐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연구 참여자들만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유사한 주장을 중도 우파 정당 명의로 제시할 경우 더 광범위한 공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체는 연구의 저자 중 하나인 비센테 발렌팀 옥스포드대 정치학 연구원이 "때로 '누가' 말하는지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중요하다"며 "이 연구는 민주적 정당이 극우의 특정 입장을 채택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성 우파 정당들이 극우 메시지를 차용해 지지율을 높였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메시지를 받아들인 이들이 이를 차용한 우파 정당을 지지하기보다 '원조'인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극우는 이미 유럽 전역에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이탈리아에선 지난해 10월 극우 정당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취임했고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단일 정당으로 2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선 극우 마린 르펜이 약진했다. 이달 말 치러질 스페인 총선에서도 극우가 세를 불릴 것으로 예상된다.

극우의 메시지 또한 유럽 정치를 좌지우지할 만큼 커졌다. 8일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 마르크 뤼터가 이끄는 연정이 이민 정책에 관한 논쟁 끝에 붕괴했다. 직접적으론 뤼터 총리가 제안한 이민자 가족 입국 제한에 대한 강경책이 연정의 지지를 받지 못한 탓이지만 외신들은 극우가 주도해 온 이민 담론이 유럽 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휘두르게 됐다는 데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뤼테 총리가 이번에 이민에 관한 강경책을 내놓은 것도 극우 정당이 이민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이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독일 동부 튀링겐주 존넨베르크에서 지역 단체장으로 선출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로베르트 제셀만.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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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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