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모론과 독일 극우 '위험한 결합'…독, 쿠데타 모의 25명 체포

무력 국가 전복 기도 및 숄츠 총리 등 '제거 대상' 명단…"팬데믹 동안 급증한 음모론이 극우에 활력"

독일에서 현 독일 민주주의 정부를 부정하고 미 극우 '딥스테이트' 음모론에 고무돼 국가 전복을 기도한 극우파 25명이 체포됐다. 주모자는 "왕자"로 자칭하는 독일 옛 귀족으로 체포된 일당 중엔 극우정당 전 의회의원과 현역 군인도 포함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급증한 음모론이 극우와 결합해 테러 위협을 증대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AP> 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을 종합하면 7일(현지시각) 독일 경찰은 독일 전역 16개 주 중 11개 주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일부를 포함한 130곳 장소를 급습해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국내 테러 조직의 일원이거나 이를 지원한" 혐의를 받는 25명을 체포했다. 이번 작전엔 경찰 3000명이 투입됐는데 이는 독일의 역대 극단주의자 대응 작전 중 가장 큰 규모다. 페터 프랑크 독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1월 결성된 이 단체의 목적이 "폭력과 군사적 수단을 이용해 독일의 현존하는 국가 질서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체포된 25명 외에도 경찰은 이 조직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27명을 추가로 조사 중이다.

검찰은 이 단체가 일종의 '그림자 정부'를 구성해 자체 군사 조직과 정부 조직을 꾸리려 했으며 자신들의 목표가 "군사적 수단과 국가 지도자들에 의한 폭력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청한 이번 작전에 정통한 인사를 인용해 이들 조직이 적으로 간주해 잠재적 처형 혹은 추방 대상으로 본 18명의 정치인 명단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이들이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이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극우 '제국시민(Reichsbürger)'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국시민'은 과거 독일 제국 존속을 주장하는 이들을 포함해 여러 믿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는 집단으로 공통적으로 현 독일연방공화국 체제를 부정하고 자신들에게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 반유대주의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집단의 규모는 2016년 1만 명 가량으로 추산됐지만 2018년 거의 2배인 1만9000명으로 불어났고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백신 음모론과 결합하며 세력을 불려 지난해 2만1000명으로 늘었고 최근 규모가 더 커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10% 가량은 폭력 성향으로 여겨진다.

검찰은 이들이 독일 극우 뿐 아니라 악마 숭배자인 소아성애자 집단이 미국을 물밑에서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미 극우 음모론 큐아넌(QAnon)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검찰은 이들이 독일이 나라를 물밑에서 통치하는 사악한 기득권 집단으로 상상되는 "딥스테이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뒤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력이 있다는 주장은 정부 및 체제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시민들이 공식적인 혹은 공인된 기관에서 발표되거나 조사된 정보를 불신하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유통되는 허위 정보를 신뢰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큐아넌 추종자들은 고위 민주당 지도자들이 악마 숭배 등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이를 막기 위해 출마한 것으로 믿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재임 중 물밑에서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언급하며 자신이 이 집단에 맞서고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 직후이자 이듬해 1월6일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한 미 의회의사당 습격 사건 직전인 2020년 12월 말 미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공동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17%가 큐아넌의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고 답했고 39%가 큐아넌의 핵심 주장인 트럼프를 약화시키려 하는 '딥스테이트'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체포된 단체의 주모자 격 인물은 "왕자"로 자처하는 독일 옛 귀족 하인리히 13세(71)로 그는 과거 독일 중부 튀링겐주 일부를 다스렸던 로이스 가문의 후손이다. 하인리히는 이들이 꾸린 일종의 그림자 정부 조직인 "평의회"의 수장을 맡았다. 그의 가문은 그를 "음모론자"로 봐 10년 이상 전부터 그를 멀리해 왔다고 한다.

검찰은 하인리히가 러시아와 접촉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체포된 일당 중 1명은 러시아인이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 대변인은 7일 이 사건이 "독일 내부 문제"이며 "러시아 개입이 없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체포된 이들 중엔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소속 전 의회의원, 전 특수부대원 등도 포함돼 충격을 줬다. 독일 특수부대 KSK 소속 현역 군인 1명도 체포됐다.

독일은 극우 극단주의자들을 국내 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엔 카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 납치 음모를 꾸민 극우 4명이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이 '제국시민' 및 백신 반대 운동과 연관돼 있다고 파악했다. 7일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체포된 일당들도 이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꼬리가 밟힌 것으로 보인다. 2019년 6월엔 네오나치라고 자처하는 극우파가 난민에 우호적인 정치인을 살해했고 같은 해 10월엔 유대인 회당 테러 사건이 있었다. 2020년엔 극우에 경도된 한 남성이 9명의 이민자 및 이민자의 후손을 살해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사건이 기존 극우의 주장이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을 타고 소셜미디어에서 급증한 백신 반대 음모론, 딥스테이트 음모론과 밀접하게 맞물려 일어났다고 분석하며 "코로나 대유행이 완화 돼도 음모론의 유산은 남아 비주류 집단이 현실 세계에서 행동을 취하도록 고무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고 우려했다.

▲7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를 받는 극우 집단의 주모자 격인 하인리히 13세(71)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이날 같은 혐의로 하인리히 13세를 포함해 25명이 체포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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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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