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적폐청산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문 대통령께 드리지 못한 고언] 정치적 ‘킬러 문항’을 회피하는 민주당

라디오 출연을 하러 방송국에 갔다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안경호 팀장을 우연히 마주쳤다. 내가 국회 보좌진이던 시절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2기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입법을 함께 해내기 위해 자주 만난 사이였다. 그는 이번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뷰 출연을 하러 온 참이라고 했다.

영화는 시민과 전문가들이 모여 발굴단을 꾸리기로 결정한 2014년부터 거의 10여 년간의 발굴단을 좇는다. 2010년 이명박 정권에서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법적으로 허용된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아직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사건들은 그대로 창고로 가야 했고, 이제 막 시범적으로 몇 군데 시작해 본 민간인 학살지 발굴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은 민간 차원의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한 움직임을 이어가기 위한 일환으로 발굴단을 만들게 된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조력했지만, 평범한 시민들도 소정의 교육만 받으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남녀노소가 함께 발굴단에 참여했다. 국가폭력 희생자의 유족도, 한국전쟁은 그저 역사책에서 배웠을 뿐인 학생들도 각자의 부채감을 갖고 땅을 팠다.

우여곡절 끝에 2기 진화위 설립이 결정되었고, 나도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떠나 다른 의원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안경호 팀장과의 연은 계속되었다. 옮긴 의원실의 지역구인 대전광역시 동구에 '골령골'이라는 방대한 민간인 학살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골령골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우리 군과 경찰 등에 의해 집단학살돼 묻힌 사건이다. 7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묻힌 구덩이가 1킬로미터가량 이어져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긴 무덤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을 민간 발굴단이 몇 년에 걸쳐 하고 있었다.

한번은 의원과 함께 골령골 발굴 현장을 찾았다. 요새 같이 무더운 날이었다. 며칠간 이어진 비로 흙땅은 온통 질퍽거렸고, 때마침 내리쬐는 햇볕은 현장 전체를 한증막처럼 만들었다. 안경호 팀장은 이번 발굴에서 꽤 많은 유해를 발굴했다고 이야기했다. 70여 년 만에 지상으로 나온 수많은 뼈들을 보며, 나는 안 팀장의 말에 뭐라고 대꾸하는 게 적절할지 헷갈렸다. 어쨌든 발굴을 하러 온 거니 발굴이 잘 된 게 잘 됐다고 얘기해야 할까. 아니면 신나게 선거유세를 하던 길 건너에, 이렇게 많은 죽음들이 묻혀 있었다니 애통한 표정을 지어야 할까. 애통하기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지상에 나오신 걸 반겨야 하는 걸까. 나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발굴 현장의 특성과 의미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의원을 모시고 간다는 생각만으로 불편한 옷에 구두까지 신고 간 참이었다.

안경호 팀장은 늘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생이 어두운 피부인지는 여쭌 적 없지만, 내가 그를 만난 이후 그는 틈만 나면 발굴 현장에 가 있었기 때문에 타지 않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가 발굴 현장에 간다고 할 때마다 늘 응원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난 발굴을 왜 하는지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물론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유해를 이제라도 유족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그 자체로 필요하다. 하지만 저렇게 오랜 기간 이미 신원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뼈와 유품들을 찾기 위한 안 팀장과 발굴단의 집념은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이였다.

<206: 사라지지 않는>을 보면 좀 이해가 될까 싶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발굴단도 정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이라는 대한민국 출생의 비밀을 아예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진상을 밝혀내고 아쉬운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보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죽은 이들이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한 걸음, 한 뼘만큼의 진전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발굴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까. 국가폭력을 자행한 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질서는 여전히 건재한데 우리 사회는 치유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 고작 이 발굴을 위한 삽질로? 하지만 그들은 이 비극을 끝까지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치유해 보려는 그 마음이 그들을 뙤약볕 아래 선다.

▲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3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지지자=선한 사람?

영화를 보며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 정치적 '킬러 문항'을 대하는 정치적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6월 16일 당원 대상 강연에서 "기성 언론은 쓰레기 하치장"이라며 "좋은 SNS, 유튜브 많이 보시고 쓰레기 신문은 보지 말라"고 말했다. 기성 언론은 우리를 현혹시키려고 하니 우리 소리를 잘 전달하는 미디어인 SNS나 유튜브를 많이 보라면서 말이다.

민주당이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대해선 원래도 각을 세웠지만 이해찬 상임고문의 발언은 이제는 그냥 '기성 언론' 전체를 보지 말자는 주장까지로 확대되었다. '한경오'로 통칭되는 진보 언론마저도 충분히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민주당에 불리한 지적이나 의혹 제기를 한다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관점은 특정한 언론사의 기사의 왜곡 문제를 넘어 현대 언론의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 및 정치인이 언론에 계속 견제받으며 긴장감을 갖고 가야 한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설계 자체가 이제는 싫다는 것이다.

이해찬은 기성 언론이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등 SNS는 공영화라도 되어 있단 말인가? 기성 언론들은 신뢰성 자체가 주요한 자산이었지만 뉴미디어들은 다르다. 적은 투자로 시작할 수 있다는 뉴미디어의 특징은 언론 다양성과 민주성을 키우기보다는 더 파편화된 집단의 입맛에 맞춰 진실과 허구가 섞인 가짜뉴스의 세계를 창조하는 '가설 천막 서커스' 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임을 물을 방법 자체가 없는 뉴미디어들의 명멸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오늘날 기성 언론들의 책임성과 공정성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도 전통적인 정치적 편향성만이 아니다.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의 수익성에 대한 위협이야말로 점점 더 커지는 위협이다. 기성 언론은 'SNS처럼 더 무책임해져라. 그래서 더 돈을 벌어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기성 언론의 편향성과 불공정에 대한 이해찬의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그 대안이 SNS와 유튜브라는 건 기함할 일이다.

이해찬도 극악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 극우 유튜버들을 옳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민주당이 반국가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해찬의 주장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들은 선하고, 사리사욕도 없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이해찬의 발언은 'SNS나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종류가 아니다. 진의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이 만드는 미디어를 들으라는 것이다. 왜? 그들은 선하기 때문이다. 선하니까 민주당을 지지하고 비판하지도 않고, 민주당을 지지하니까 선한 사람들이라는 순환 논리가 작동한다.

결국 이해찬의 발언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을 옹호하기만 하는 미디어를 들으며 더 민주당을 견고히 지지하라는 뜻이다. 이교도와는 만나지도 말라는 종교적 아집 같다. 또 민주당 지지층을 신생아 인큐베이터 같은 무균 환경에 보호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세계 밖과는 접촉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 변하지 말라, 상하지 말라. 그것이 당신을 민주당이라는 선한 세계에 영원히 머물게 할 것이다.

물론 정당에 있다 보면 언론은 고마울 때보다 미울 때가 훨씬 많다. 그리고 몇몇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 허위 보도는 치가 떨리도록 분노가 인다. 하지만 언론은 애초에 그런 것이다. 정당은 늘 자신에게 권력을 주면 이 모든 문제를 쉬이 해결해주리라 단언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는 해결된 척을 한다. 언론은 이 문제가 쉬이 완벽히 해결되지 않음을 지적하는 역할을 한다. 정당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각도로 틀어보면 이 문제는 여전히 비뚤어져 있다고 비판을 한다. 언론은 언제라도 정당인들의 마음에 꼭 들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허구한 날 언론 탓을 하지 않는가. 언론은 정당과 정치인을 계속 괴롭힐 것이다. 정치인들은 매번 그 허들을 뛰어넘거나 걸려 넘어질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믿는 세계가 끝장나지 않는 한 말이다.

'줄타기'에 실패한 적폐청산론

이해찬의 주장은 민주당의 적폐청산론의 태생적 난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적폐'의 핵심은 상대 정당, 언론, 검찰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이것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이다. 상대 정당, 언론, 검찰 등 수사기관은 사실 민주 정치에서 한 정치세력을 괴롭힐 수 있는 전부와 같다. 정치세력이 저들의 견제를 받으며 제한된 권력 내에서 자신들의 정치를 하는 것이 결국 법치주의, 민주주의다.

물론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대의될 수 없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한 정치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거나, 언론과 검찰이 원래의 역할을 넘어 권력을 남용하게 될 위험은 언제나 있다. 이걸 개혁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적당한 선이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견제이고, 경쟁일까? 정치세력은 상대 정당, 언론, 수사기관이 늘 거슬린다. 적폐청산론의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부당한 것과 그들의 존재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 헷갈리기 쉬운 난점이 있다. 상대 정당, 언론, 수사기관이 존재하는 한 언제가 끝이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적폐청산론은 고도의 균형 감각과 성찰이 없다면 바로 무너진다. 특히 적폐청산론의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질수록 더욱 상대 정당, 언론, 수사기관을 향한 적폐청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된다. 논리적으로 여론 지형상으로도 점점 고립되어도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이런 자승자박의 결과는, 무엇보다도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이 잘 보여준다. 민주당의 적폐청산론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는 완전히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받아들여야 할 지적까지도 모함으로 취급할 때 정당은 퇴행한다. 정당으로서 해결해나가야 할 다양한 도전 과제 앞에서 언제고 강성 지지층의 품안으로 도망가는 정치,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춰 장사하는 목소리만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며 민주당은 퇴행하고 있다. 비판을 수용하고 사과하고 개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어른스러운'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민주당은 나이를 먹을수록 유아기로 퇴행하고 있다. 민주당의 발전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 믿었던 많은 이들일수록 더더욱 실망하고 있다.

나이 먹고 덩치만 엄청 커져서는 자꾸 품 안으로 숨으려는 이 정당을 어쩐단 말인가. 국민은 민주당을 우쭈쭈 달래줄 마음이 없다. 민주당은 어려운 문제에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고는 언론과 국민들이 민주당을 충분히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모든 정당은 어느 정도는 허풍쟁이가 될 운명을 타고 났지만 우리는 믿을 만한, 믿고 싶은 허풍을 꾸준히 제시할 기력도 잃어간다. 문제를 응시할 의지는 둘째 치고 말이다. 우리에겐 완벽한 해답이 있다. 국민의힘, 검찰, 언론만 방해를 안 하면 언제라도 이룰 수 있다.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문제를 없애려는 건 정치인의 욕심일 뿐

윤석열 정부는 수능에서 연일 '킬러 문항'을 없애자고 한다.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면서 말이다. 초고난도의 문제가 없어지면 입시 스트레스가 없어지나. 명문 대학을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나. 삶의 순간 중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나락 없이 미끄러지는 한국 사회의 안전망이 튼튼해지기라도 하나.

당장 결정해야 할 2024년 최저임금만 잘 결정해도 수능 잘 못 본 학생들이 훨씬 맘을 놓을 텐데, 대통령으로서 할 방법이 킬러 문항 없애기뿐인가. 문제가 쉬워지면 인생도 쉬워진다는 거짓된 환유가 어이없을 뿐이다. 이 쯤 되면 수능 킬러 문항을 없애 실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가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어떤가. 우리가 풀어야 할 정치적 '킬러 문항'들이 그냥 없어져 버리길,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자꾸 던지는 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 사라져 버리길 바라지 않는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풀어온 그대로이길 바라지 않았는가. 좀 틀린 답을 제시해도 무조건 맞다고 해주는 채점관들만 올바른 채점관,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추켜세우지는 않았는가.

쉬이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집요하게 들여다보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 문제 자체를 없애는 건 정치인들의 욕심일 뿐이다. 군경에 학살당한 민간인의 주검들은 계속 땅 속에 있을 것이다. 수능 성적이든, 스펙이든, 건강이든 뭐 하나 빠진다고 죄인 취급받는 아이들도 계속될 것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저 계속 답을 던지고, 비판을 받고, 개선하고, 또 욕을 먹고, 더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는 과정들을 통해 안간힘을 다할 때, 계속 바뀌는 이 난제들에 대한 답을 가까스로 잠정적으로나마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황두영

정치학을 공부하고 정치권 노동자로 온갖 실무를 해왔다. 국회인턴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정무조정실장까지 열심히 일했다. 정치권 안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던지고 합리적인 대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단행본 <<외롭지 않을 권리>>, <<후보단일화 게임>>을 썼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