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더 많이 가진 자'가 부담을 나눠야 한다

[연금개혁, 어떻게?] '연금약자 연대'는 원칙이지만 … 보장성 강화 없으면 미래세대도 부담

정부 재청추계상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 연금개혁은 불가피하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오는 10월 국민연금 계획안을 발표한다. 다만 그 방향이 어떻게 설계될지는 미지수다. 현장에선 소득대체율인상론(진보)과 재정안정화론(보수)이라는 양론이 평행선을 달린다. 한편 올 4월엔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이 출범하면서 기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노선을 달리 하는 진보진영 내 새로운 연금개혁론이 가시화됐다. 국민연금의 보장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두고 부딪히고 있는 진보 내 양측의 주장을 <프레시안>이 함께 싣는다.(편집자 주.)

진보진영 내 '연금개혁' 두 갈래 길?

"치열하게 생산적으로 토론하자." 연금개혁에 대한 3월 30일자 <경향신문> 칼럼 '진보의 연금개혁 새 흐름'의 마지막 문장이다. 노동조합에서 연금 문제를 담당하는 상근자에게는 짧지만 무거운 말이다. 압박감을 견뎌내고 토론을 시작해 보자.

연금문제를 다루는 진보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됐다고 한다.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유니온'(이하 연금유니온)이 그 주체다. 연금유니온의 출현으로 진보진영 내 연금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이 두 개가 되었고,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은 새 흐름의 출현으로 자연스럽게 옛 흐름이 되었다.

새 흐름의 입장을 알리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 입장과의 비교다. 예의 칼럼도 연금행동과 대비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새 흐름은 기존 흐름인 연금행동과의 차이를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과제를 달성하는 '방법의 차이'로 구분한다.

기존 입장, 즉 연금행동은 보장성 강화의 방법으로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반면, 새 흐름은 연금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며 여성, 실업자, 군복무자, 저임금노동자, 도시지역가입자 등의 실질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기에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새 흐름이 제안하는 '연금약자 연대'라는 지향에는 언제든 동의한다. 연대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금행동이라는 기존 흐름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 중에 하나도 바로 여성, 실업자, 군복무자, 저임금노동자, 도시지역가입자에 대한 실질소득대체율 인상이었다. 이를 마치 새로운 주장이고 다른 주장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 상대방의 입장을 납작하게 만들고, 가상의 논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생산적이지 않다.

또한 새 흐름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골고루 강조하는 반면, 연금행동은 국민연금만 강조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기초연금 확대에 앞장선 것도, 퇴직연금의 실질적 노후소득보장 기능 강화를 고민한 것도 연금행동이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연금행동은 '그럼에도'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강화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시작해야 비로소 생산적 논쟁이 가능하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출범식을 가진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청년유니온,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등 진보적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해당 단체는 이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 유지 △실질소득대체율 강화 △기초연금의 최저보장소득 전환을 통한 노인빈곤 대응 등을 연금개혁 정책안으로 제시했다. 반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측은 초고령사회 노인빈곤 대응 등을 위해 현재 40%인 소득대체율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프레시안(한예섭)

명목소득대체율 인상 통한 '보장성 강화' 없이 미래세대 부담을 덜 수 있을까?

2080년이 되면 한국의 노인인구가 47.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국민 절반의 삶이 달린 문제다. 그런데 국민연금 보장성을 지금처럼 두면 2085년 노인빈곤율이 3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릴 경우엔 25.5%다.(국민연금공단 연구원, 'NPRI 빈곤전망 모형 연구', 2021)

현재의 노인빈곤율(2020년 기준 38.9%)에 비하면 상당 부분 감소하는 것이긴 하지만, OECD 평균(13.5%)에 비하면 여전히 2배 이상이다. 압도적으로 높다. 노인인구 규모 변화까지 고려하면(20년 15.7% → 80년 47.1%) 노인빈곤율이 감소해도 전체 빈곤율은 증가할 수도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흐름을 주장하는 이들은 갈수록 무거워지는 노년부양 환경에서 '당시(미래세대)에 지출 총량이 결정되는 부과방식 재정의 의료비, 기초연금 등은 후세대에 의존하더라도, 현세대가 사실상 기여와 급여 수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연금에서조차 천문학적인 재정 불균형을 방치하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국민연금의 낮은 보장성을 그대로 둔 채 재정균형만 맞추면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낮아지면 결국 노인빈곤 문제는 심각해 질 것이다. 그러면 기초연금이든 기초생활보장이든 그 밖의 어떤 사회적 보장 수단이든 재정을 투여할 수밖에 없다.

미래세대가 부과 결정을 해야 하는 사회적 위험을 줄이지 못 하고 막대한 지출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이 과연 '미래세대의 의사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일까? 오히려 보장성은 동결하고, 보험료만 인상하는 것이 미래세대의 부담은 부담대로 지우고 노후 빈곤은 외면하는 것 아닌가?

외면을 받는 대상은 60대생도 70년대생도 아니다. 어차피 이들에게는 지금 1년마다 0.5%씩 깎이고 있는 소득대체율 삭감이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차라리 그대로 놔두고 보험료를 안 올리는 게 이들에게는 이득이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와 그 이후 세대들이다.

보장성 동결, 보험료 인상이 미래세대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래세대의 빈곤을 방치하는 일이다. 연금보험료 부담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다른 사회보장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연금행동이 보장성 확대와 현세대 부담을 동시에 제안하는 이유다.

▲지난 1월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이날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의 제도 유지를 전제로 향후 70년의 재정수지를 추계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개혁 없이 현행 제도대로 유지될 경우 2041년부터 수지 적자가 발생해 2055년엔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연합뉴스

고소득자, 자본, 국가의 연금부담 높여야 … "더 가진 자가 져야 하는 정당한 부담"

마지막으로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재정 부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먼저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을 못 받는다고 하는 건 악의적 선동이다. (공교롭게도 그런 주장을 하는 당사자가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 전경련이 출자한 한경연이다.) 논의에서 빼는 것이 생산적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2070년에 이르면 부과방식비용률(국민연금이 소진될 시 연금급여지급을 위해 가입자들이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율)이 최소 29.5%에서 최대 42.0%에 달한다. 용어가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소득의 30~40%를 보험료로 내야 제도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45%인데, 그야말로 '초초부자'만큼 보험료를 내야 한다. 당연히 감당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의 GDP 대비 연금급여 지출 비중은 최소 7.7%에서 최대 11.2%로 나온다. 인구 절반에 달하는 노인의 소득을 보전하는데 우리가 생산한 부의 10분의 1을 쓴다는 말이다. 참고로 유럽은 인구 4분의 1 정도의 노인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GDP 10분의 1 정도를 쓰고 있다. 

인구 절반에 GDP 10%를 쓰는 것이 그렇게 큰 부담이라 할 수 없다. 소득의 3분의 1을 걷어 가는데, 그게 전체 소득 대비 10분의 1 밖에 안 되는 건 이상하다. 이는 부과방식비용률 추계와 같은 추계에서 나온 것인데 그렇다. 산수가 안 맞는다.

이유는 전체 사회가 모두 부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국가 소득의 3분의 1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30%~40%를 내야 하는데, 나머지 3분의 2의 소득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누구의 부담이 면제 받는 것일까?

고소득자와 자본소득, 그리고 국가다. 연금보험료는 모든 소득에 부과되지 않는다. 보험료가 부과되는 상한이 있다. 그 상한이 지금은 553만 원이고, 그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553만 원의 2배인 1106만 원을 벌면 보험료가 소득의 9%가 아닌 4.5%가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자본 역시 부담이 적다. 우리는 노사가 1:1로 보험료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프랑스나 독일처럼 사용자의 부담이 훨씬 큰 나라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산업구조 변화를 핑계로 자본은 사회보장 부담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 시기 승승장구한 각종 플랫폼 기업들이 그렇고, 다단계 하청과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대기업이 그렇다. 이들에게 사회보험에 대한 정당한 부담을 묻지 않으면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같은 '연금약자'의 부담은 늘고 보장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본만 사회보험 부담 회피를 모색할까? 아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도 그렇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부담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재정은 연간 100억이다. 연금공단 1년 운영에 들어가는 돈이 6천억에 달한다. 100억을 뺀 나머지는 모두 연금기금 운용수익으로 감당한다. 국민 노후에 지급되어야 할 운용수익의 일부다. 정부가 지출을 바짝 죄면, 국민이 가난해진다.

복지국가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다. 복지 확대의 역사는 재원 확보 투쟁의 역사였다. 더 많은 부를 가진 이들에게 정당한 사회적 부담을 요구하지 않으면, 복지국가의 길은 요원하다. 생산적이고 치열한 논쟁은 여기서 다시 이어져야 한다.

▲지난해 11월 주호영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위 2차 회의에서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 등 여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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