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라는 코끼리, 어떻게 옮길 것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미래세대 연금부담을 높이지 않는 안전장치 마련해야"

이번에는 연금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개혁의 방향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음에도, 왜 국민연금 개혁은 모든 정권이 회피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었을까? 어느 나라에서나 연금개혁 논의는 재정적 지속가능성 문제로 인해 촉발되고, 정치적 문제로 번져나간다. 공적연금은 재분배와 사회연대의 논리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폭발력은 여러 선진국에서도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안으로 인식되어왔다.

한국의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 기금소진 연도가 앞당겨졌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와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개혁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이라는 코끼리

'국민연금'이라는 코끼리를 옮기는 일이 유달리 어려운 것은 다양한 쟁점에 복합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인식부터 하나하나 분명히 하자. 우선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p로 OECD 평균인 18.4%p의 절반 정도다. 수지불균형이 심각하다. 개혁 논의를 촉발한 근원적 문제다. 적립식으로 운영하는 현행 제도를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 제도를 지속하기 위한 후세대 부담이 높아지거나, 재정적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 세대 간 형평성을 강조하든, 재정 역할을 강조하든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험료율 인상에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두 번째 쟁점은 국민연금이 노동 양태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 제도의 소득재분배 특성(☞ 관련 기사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낮다? 하후상박 특수성 이해 필요)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등 노동 양태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 기간, 기여 수준이 달라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들은 보험료 부담도 크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크레딧 제도 강화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 확대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대안에도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좁혀지지 않는 쟁점은 소득대체율 인상이다. 복지국가의 시민이라면, 시민권만으로 노후 빈곤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견이 없다. 노후 빈곤에 대응할 수 있는 소득보장 강화는 강조되어야 한다. 적절한 노후 소득보장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난한 청년과 가난한 부모가 사회보장의 울타리 없이 함께 시장에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숙의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한 청년과 가난한 부모가 노후 빈곤에 대응하는 사회적 협약을 함께 맺을 수 있는가 또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옮길 것인가

저출산 초고령화의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산업 양태의 변화로 복지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 복지국가는 사회적 협약에 기반하여 다양한 제도가 상보적으로 맞물리며 만들어지는 체제 수준의 기획이다. 단일 프로그램으로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아진다고, 복지국가 시스템이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금소진 등 제기되는 문제를 드러내어 해법을 다듬어내고, 이해당사자 간 협의와 이해 조정으로 사회적 협약을 맺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도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고 연금무용론을 극복할 수 있다. 먼 미래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 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등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제도가 지속된다는 국가만능론으로는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

더 많은 논쟁을 통해 다듬어나가야 하겠지만,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역할을 충분히 숙의한 다층연금체계를 제안한다. 혹자는 기초연금 재정부담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연금개혁을 하는 것인데, 다층연금체계가 기초연금의 역할을 높여서 재정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문이다.

이에 답한다. 필자는 적극적인 재정역할론을 수긍한다. 하지만 재정이 충분한 역할을 해서 시민들의 노후 보장을 해야 한다면, 하위 계층을 폭넓게 지원하는 기초연금에 투입되는 재정이 훨씬 더 정의롭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업에 대응하여, 제도 자체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노동의 양태를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면 국민연금은 중심부 노동 중심 제도일 수밖에 없다. 진보적 사회개혁은 명확한 가치지향을 지닌다.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이 평등한 사회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이 더욱 계층 정의에 부합하는 공공 부양의 제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대를 넘어서는 사회적 협약

연금개혁에 대한 세대 간 형평성 논쟁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복지국가는 단일 프로그램으로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강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 공적연금의 제도 간 상보성과 계층 정의에 부합하는 제도 본연의 역할을 고려하여 통합적인 시각으로 국민 노후 소득보장을 다뤄나가야 한다. 다층연금체계에 기초해 지속가능성과 급여적절성을 함께 달성하자고 제안한다. 초고령화 시대, 공적연금 제도 꾸러미에서 기초연금에 투입되는 재정 증가는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공적연금 제도 꾸러미를 위해, 스스로 재정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국민연금은 재정부담 경감으로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 목소리' 토론회. ⓒ(준)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 네트워크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 목소리'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석재은 한림대 교수는 "미래세대의 연금 불안을 해소하자는 주장을 보수적인 재정안정화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 연금부담을 높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세대 간 연대 노력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사안을 정리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싶다면, 여러 번 곱씹어봐야 하는 대목이다. 세대 간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세대를 넘어서는 사회적 협약을 이뤄내며, 전체 복지국가의 지속가능한 비전을 그려낼 수 있을 때, 복지국가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움직일 수 있다.

* 다층연금체계에 대한 심층 학습을 원하는 독자는 "오건호(2021), '한국 노후소득보장의 재구조화 연구: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정책>"를 참고할 수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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