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노조 채용 강요' 잡겠다며 '사용자 채용 갑질'엔 침묵

직장인 27%, 입사 시 계약서도 못 받아 …"채용 갑질부터 전면조사해야"

'노조 채용강요' 문제를 전면 부각하고 있는 정부가 '사용자 채용 갑질' 문제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6일 노동법률지원단체 직장갑질119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대해 "사용자의 채용 갑질에 대한 내용은 신고센터 신고대상 어디에도 없다"라며 "정부가 사용자의 채용 갑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지난 2일부터 노사 양측의 불법·부당 행위를 신고 받는 '노사부조리 신고센터'를 신설하고 운영 중이다. 노동부 홈페이지에선 노동자가 해당 센터에 신고할 수 있는 '신고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엔 "고용세습, 채용 강요 등 위법한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하는 행위 등"이 '노동조합의 불법·부당 행위'로 명시돼 있다.

반면 노동부가 신고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용자의 불법·부당 행위'를 살펴보면, 채용과정에서 사용자가 흔히 저지르는 사용자 채용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부는 채용 과정에서의 사용자 부당행위로는 '고용상 성차별' 문제만을 설명하고 있다.

일부 노조가 범하는 채용 강요 문제는 윤석열 정부 '노조 때리기'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꼽히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건폭'(건설현장 불법행위)이라는 줄임말을 만들어 발표하며 건설현장 내 노조 채용 강요 문제를 건폭의 대표적인 일례로 꼽았다. 같은 날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윤 대통령에게 노조 채용 강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신 형사처벌을 적용하는 채용절차법에 대해 보고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사용자의 채용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눈 감아온 정부가 노조 채용 강요 문제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이 노골적인 노조 때리기이자 일종의 '언론플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26일 "(노동 현장엔) 진짜 '갑'인 사장의 채용 갑질을 막아줄 수 있는 채용절차법 보완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사용자 채용 갑질 신고를 받는 익명 신고센터를 운영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현행 채용절차법 제4조는 '구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된다', '구인자는 구직자를 채용한 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가 이날 공개한 제보 사례에 따르면 노동 현장에선 △정규직 채용 공고를 보고 서류와 면접에 합격한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입사했는데,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인 경우 △채용공고에 있는 임금과 아예 다른 근로계약서를 강요하는 경우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경우 등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채용 갑질을 유일하게 제재하는 수단인 채용절차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으며, 현행법상 사장 채용 갑질 사례는 신고해도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부과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단체는 특히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당장 간절한 취준생들에게 현행 채용절차법은 제대로 된 보호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내용이 부당할지언정) 계약서라도 제대로 쓰고, 받으면 다행"이라며 "어떤 사장은 근로계약서를 아예 안 쓰기도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은 사장의 의무인데도, 근로자 지위를 입증해야하는 것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다투기도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로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받지 못한 노동자는 전체 응답자의 27.0%에 달했다.

상대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36.2%),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52.5%), 저임금 노동자(49.2%)가 특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현행 채용절차법, 근로기준법 등의 사각으로 꼽히는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이 채용 갑질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직장갑질119 소속 김유경 노무사는 "입사 과정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에 대해 취업 예정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으며,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현행 채용절차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어 채용 갑질이 빈번한 소규모 사업장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만큼 채용절차의공정화에관한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보다 앞서 정부가 사장의 채용 갑질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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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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