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의 '반성' "우크라전은 왜 '서방만의 전쟁'에 그쳤나"

유럽 식민주의·美 이라크 침공·트럼프 고립주의 등 뿌리 깊은 불신…중·러, 서방 공백 타고 아프리카 등 공략

미국 언론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돌아보며 서방이 러시아 제재에 대한 다른 세계의 동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반성'을 쏟아냈다. 미국의 전쟁 이력과 유럽의 과거 제국주의 역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와 코로나19 유행 때 서구의 봉쇄 정책이 더해지며 비서구 세계에서 신뢰를 잃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들은 서구 '공백' 속 러시아와 중국이 아프리카·중동 등에 적극적으로 파고 들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전 발발 뒤 "서방은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년 간 "서방의 핵심 결속은 단단하게 유지됐지만 나머지 세계에 러시아를 고립시킬 것을 설득하진 못했다"고 짚었다. 매체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초 유엔(UN) 특별총회에서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이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며 "서방이 압도적 국제 연합을 형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착각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193개 회원국 중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47개국이 기권하거나 투표에 불참했고 "중립을 표방한 많은 나라들이 이후 러시아에 중요한 경제적 혹은 외교적 지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매체는 지난해 결의안에 동조했던 브라질·튀르키예(터키)·아랍에미리트(UAE) 등 일부 국가들조차 이후 좀 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세계가 둘로 나눠지지 않고 (여러 조각으로) 분열"됐고 중립을 표방하는 나라들은 이 전쟁을 "유럽과 미국 문제", "유럽 전쟁"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서방이 전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 혹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는 데 반해 이 "방대한" 중립 집단은 "침공으로 인한 경제 및 지정학적 대격변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한계 보여줬다"

서방은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고 중국이 더 많은 자동차와 기계를 수출하는 등 비서구 지역 제재 동참 설득에 실패하며 러시아의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올랐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전망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에 전망치를 0.3%로 끌어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경제가 번영하고 있진 않지만 전쟁을 이어갈 만큼은 충분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WP)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분열"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 미국 영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짚었다. 매체는 23일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지난해와 같이 141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한 나라는 33개국에 불과하다며 현재 상황은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국제적 연합"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러시아에 동조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국가에 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구가 비서구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다른 나라는 믿을 수 없는 이유로" 여러 전쟁을 벌인 것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클레멘트 마냐델라는 매체에 처음엔 러시아 침공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청취자로부터 "여러 나라를 침공해 온 미국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세계 다른 나라로부터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냐델라는 "미국이 이라크나 시리아에 (전쟁을 위해) 들어갔을 때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그들만의 정당화 논리를 폈다. 이제 그런 그들이 전세계에 러시아에 등을 돌리라고 한다"며 불신을 표명했다.

또 서구 제국주의 역사가 당시 식민지였던 비서구 세계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매체는 인도 콜카타의 사무원 바스카르 두타가 서방 국가들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하며 "이들(서방)은 전세계를 식민지화 했다. 러시아가 한 짓(침공)은 용납될 수 없지만 동시에 전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남아공·케냐·인도인들과 대화해 본 결과 서구의 역사적 식민주의과 오만함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등 다른 지역 분쟁 해결 실패 전력까지 아우르는 뿌리 깊은 불신이 이들에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와 남미 비하, 반이민 정책과 최근 몇 년 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서구 많은 나라가 봉쇄 정책을 펴면서 이들 지역에 불만이 쌓이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이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중동·남미 지역에 파고 들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올 들어서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남아공·말리·이라크 등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을 활발히 오갔다. 남아공과는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되는 24일 전후로 해군 연합훈련을 벌이는 중이기도 하다. 이 훈련에는 중국도 참여한다.

"러시아가 식민지화 안 했다고 동조? 우크라 역시 아프리카 식민지화한 적 없다"

리우보프 아브라비토바 남아공 주재 우크라니아 대사는 러시아가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참여한 적이 없고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일부 해방운동을 지원한 적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설명했다. 매체는 남아공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당(ANC)의 여러 인사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시대에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아브라비토바 대사는 러시아는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적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카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적이 없다"고 매체에 토로했다. 

▲러시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3국 해군 연합훈련을 위해 22일(현지시각) 남아공 동부 리처드만에 도착한 러시아 고르쉬코프 호위함의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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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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