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두 팔 벌려 中 환영했으나 시진핑은 구애 받아줄까

전문가들 "중, 서방과 러시아 사이 줄타기 이어갈 것" 예측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러시아에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방문에 서방은 중·러 밀착을 강하게 경계했지만 중국이 '줄타기'를 포기하고 러시아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속단은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극화' 관점에서 비서구 국가를 한 쪽 편에 세우려는 노력이 인도 등 신흥국의 관점과 어긋나며 지난 1년간 서방은 자체 결속은 다졌지만 국제적 영향력은 줄었다는 분석도 이목을 끈다.

22일(현지시각)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한 왕 위원을 문자 그대로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전날 모스크바에 도착한 왕 위원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회담 뒤 22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났고 이후 푸틴 대통령과도 회담을 가졌다. 회담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면에 미소를 띄고 왕 위원에게 다가온 푸틴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에선 허락하지 않았던 가까운 자리를 왕 위원에게 내주며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BBC 방송은 "푸틴 대통령은 긴 탁자를 정말 좋아한다. (긴 탁자) 양 끝에 너무 멀리 앉아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미지들로 유명하다"고 비꼬며 이번 왕 위원과의 만남에서 "악수가 가능한 거리"에 앉은 것은 중국과의 밀착을 "충분히 안전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된 상징"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 주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전면적으로 지원할지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이뤄졌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왕 위원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며 시 주석과 이를 "이미 합의한 바 있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이날 회담에서 왕 위원이 푸틴 대통령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태산처럼 견고하고 안정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왕 위원은 이날 중러 관계에 미국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3자"로부터의 "간섭이나 압력을 용인하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 22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궁)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전문가들 "중, 러시아 패하고 있는 상황서 서방 고립 택하지 않을 것"

BBC는 왕 위원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코앞에 두고 러시아에 방문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중립 주장이 퇴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0일 독일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우리 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중국이 러시아의 편에 설 땐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며 중국이 "실용적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희망했다.

그러나 중국이 푸틴 대통령의 전면적 구애를 받아들일지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전쟁이 아니다. 러시아가 명백히 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 및 서방과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중국이 푸틴 대통령의 말을 받아들여 전쟁에 더 깊숙하게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정찰 풍선 사태로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상태에서 중국이 푸틴 대통령의 조력자로 간주돼 유럽과도 멀어지는 상황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자국의 이해를 추구하는 '줄타기'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봤다.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자오롱 상하이국제문제연구소(SIIS) 선임연구원이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반서방' 연합을 구축할 생각이 없다"며 서방이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중국과 러시아 정상회담 당시 나온 '무제한 협력' 약속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위 '무제한 협력'이라는 것엔 명확한 전제가 있다. 각자의 전략적 위치 및 합리적 요구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아 노웬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중국 국방 정책 담당 선임연구원은 시 주석이 지난해 9월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을 지적하며 이를 "중국 정부가 (러시아와) 동맹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노력"이라고 해석했다고 매체는 보도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유지에 선임연구원은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경제적으로 중국은 혁신과 성장을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관계에 의존해 왔다. 따라서 '코로나 제로' 정책 파기 뒤 강한 경제 반등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 주석의 희망을 고려할 때 서방 집단으로부터의 고립은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왕 위원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평화계획'을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 외무부를 인용해 왕 위원과 라브로프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 내용이 논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달 내내 이어진 정찰 풍선 공방에 이어 지난 주말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중러 밀착을 경계하며 날을 세우고 있는 미국도 중국의 손을 놓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딩춘 상하이 푸단대 유럽연구소장이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 제공을 고려하고 있다는 블링컨 장관의 주장도 "진짜 비난 목적이라기보다는 중국이 (무기 제공을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말하게 하려는 미국 전략의 일부"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조국 수호자의 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핵위협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3대 핵전력은 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뜻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병을 기리는 조국 수호자의 날 기념 콘서트에도 참석해 내부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유럽 싱크탱크 "서방은 '양극화' 나머지 세계는 '다극화' 질서 전망…서방 결속 불구 영향력 줄어"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부전선 국가 간 안보 협의체인 '부쿠레슈티 9개국(B9)'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시작 전 발언에서 "나토의 동쪽 측면은 집단 방어의 최전선"이라며 나토의 집단 방위 조약인 "나토 헌장 5조는 미국이 한 신성한 약속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나토의 모든 부분을 방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전격 방문과 바르샤바 왕궁 정원 연설을 포함한 3일 간의 유럽 순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서방의 결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서방이 내부 단합에는 성공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하며 세계적 영향력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를린 등에 사무소를 둔 싱크탱크 유럽외교위원회(ECFR)가 22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실패의 배경엔 서방과 나머지 세계의 향후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차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비서구 국가들은 이미 한 나라, 혹은 두 축이 세계질서를 정의하지 않는 '다극화'된 세계를 예상하고 있는 데 반해 서방은 냉전식 '양극화' 세계질서가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짚었다. 양극화 관점에 빠진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은 인도나 튀르키예(터키)를 서방 편에 설 가능성이 있는 '스윙 스테이트'로 보지만, 이 국가들은 완전히 판단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ECFR 보고서는 서방이 외부 세계를 대하는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신흥 강대국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서방의 편에 설 것이지만 다른 문제에선 아닐 것"이라며 냉전 시대와는 달리 무역 파트너와 안보 파트너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심지어 신흥국들은 서방에 동의하더라도 종종 러시아나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이어 "서방이 인도·튀르키예·브라질 및 이와 비슷한 나라들을 한 쪽으로 끌어당길 대상으로 보는 대신 세계사의 새로운 주권 주체로 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에 걸쳐 EU 9개국과 영국 및 미국, 그리고 중국·인도·튀르키예·러시아 등 15개국에서 총 1만9765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뒤 "서방이 더 단결됐을진 모르지만 이것이 국제 정치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서방의 결속은 탈서방(post-Western) 세계로의 분열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일어났다"고 상기시켰다.

▲22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정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한 왕이(뒷모습)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긴 테이블을 이용해 상당히 먼 거리에서 진행됐던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과는 달리 왕 위원과의 회담은 "악수가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뤄져 이목을 끈다. ⓒAP=연합뉴스 
▲2022년 2월7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대통령궁(크렘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2023년 2월22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이뤄졌던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의 회담과는 달리 두 정상은 긴 테이블 양 끝에 앉아 있다.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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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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