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크라로 중국은 러시아로…전쟁 1년 '정반대 방문'

중 "다자주의" 담은 독자적 안보 전략 발표…유럽에도 "전략적 자율성" 촉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가운데 유럽 순방 중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이번 주 러시아에 방문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앞두고 미·중이 정반대 방향의 방문을 진행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러시아와의 밀착을 미국이 거듭 경고한 직후 이뤄질 이번 방문으로 정찰 풍선 사건에 이어 미중 대립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0일(현지시각) 왕 위원이 지난 14일부터 시작한 유럽 순방의 마지막 여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매체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 대변인을 인용해 왕 위원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왕 위원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발발 1년을 앞둔 시점에서 상황이 여전히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한 평화 협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왕 위원은 지난 14일 프랑스·이탈리아·헝가리·러시아 정부 초청으로 4개국 순방에 나섰다. 러시아 방문은 22일까지 이어질 순방의 마지막 일정이다.

왕 위원의 러시아 방문은 주말 안보분야 연례 국제회의인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러시아와의 밀착을 거듭 경고한 시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더 눈길을 끈다. 18일 블링컨 장관은 왕 위원과의 회동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이 러시아에 물질적 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 뒤 19일 방영된 미 CBS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은 블링컨 장관 발언에 대해 20일 "전장에 무기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고 반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겨냥해 "국제사회는 누가 평화를 위해 분투하며 대화를 촉구하는지, 그리고 누가 대립을 부추기고 불난 데 부채질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며 중국은 평화 회담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서방의 결속을 다지고 중국은 곧 러시아를 방문해 밀착을 강화할 뜻을 밝히며 미중이 대립각을 더 뚜렷하게 세우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미 CNN 방송은 정찰 풍선을 사이에 둔 대립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앞두고 정반대 방향의 방문을 택한 바이든 대통령과 왕 위원의 모습을 두고 양국 간 "지정학적 단층선이 날카로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중국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독자적 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전날 "미국은 중국에 명령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비난한 중국은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제 안보 구상을 담은 '글로벌안보이니셔티브(GSI)' 개념 문건을 공개했다. 중국은 문건에서 GSI의 핵심 개념으로 "모든 국가의 영토 통합성과 주권 존중", "유엔(UN) 헌장의 목적과 원칙 준수" 등을 들며 "모든 국가가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건은 "냉전 사고방식, 일방주의, 블록 대결 및 패권주의" 또한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문건에서 "핵전쟁엔 승자가 없고 일어나선 안 된다"는 원칙을 재강조했다.

중, 유럽에 "전략적 자율성" 발휘 촉구…WP "바이든 키이우 방문은 누가 유럽을 이끌고 있는지 보여줘"

중국은 나아가 유럽을 향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왕 위원은 18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그가 "유럽에 있는 우리 친구들"이라고 칭한 유럽 지도자들을 향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행해져야 하는지, 유럽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체제가 필요한지,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연설에서 미국을 시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세력들"은 "우크라이나인의 죽음이나 유럽에 미치는 해를 고려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움직이며 "평화 회담 실현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이 안보 전략에서 아시아를 점차 중시하게 되면서, 또 중국과 러시아가 부상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화 하면서 최근 수 년 간 유럽에서 활발히 논의돼 온 '전략적 자율성' 개념은 우크라이나 전쟁 뒤 안보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커지며 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 논의된 전략적 자율성 개념은 군사·안보를 비롯해 산업·기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유럽이 미국과 독립적으로 언제, 누구와 협력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한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이샨 타루어는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와 폴란드 바르샤바 방문은 누가 유럽을 진정으로 이끌고 있는지 상기시킨다"는 제목의 해당 매체 칼럼에서 "분명한 것은 미국,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유럽 방어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루어는 피터 뉴먼 런던 킹스칼리지 안보연구 교수가 "언제나와 같이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속도를 설정한 것은 미국"이라며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수년 동안의 끝없는 컨퍼런스와 싱크탱크 보고서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우리는 미국이 이끌어 줄 때만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 CNN 등 미국 언론은 왕 위원의 발언을 두고 중국이 "미국과 유럽 사이를 이간질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바이든 출발 뒤에도 "우크라 방문 예정 없다" 연막…키이우선 "가장 즐거운 교통체증"

한편 외신들은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전격 방문이 얼마나 철저한 보안 아래 이뤄졌는지 전하기도 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를 참조하면 방문 최종 결정은 17일 저녁에야 이뤄졌고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새벽 4시15분께 비밀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 받은 <월스트리트저널>(WSJ) 및 <AP> 통신 기자 각 1명씩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소수의 보좌진만 이끌고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이륙했다. 일단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착륙한 바이든 대통령 일행은 이곳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폴란드 제슈프 공항으로 다시 떠났으며 착륙 뒤 기차를 이용해 키이우로 향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뒤에도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9일 공개된 일정엔 여전히 20일 저녁 7시에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로 떠날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우크라이나를 향해 떠난 시점인 19일 오전 방영된 미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계획이 없다"며 연막 작전을 펼치기까지 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교통 통제로 20일 키이우 시내가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렸지만 사업 컨설턴트인 세르히 코쉬만(41)이 "오늘은 독립 이래 키이우에서 가장 즐거운 장시간 교통체증이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왼쪽)과 페테르 씨야르토 헝가리 외교부 장관이 20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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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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