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강간죄' 토론하자는 한동훈, 이미 틀렸다

[해설] 지금 당장 '강간죄' 개정이 필요한 이유

"건설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동의강간죄는) 안 돼, 이런 말은 아니었다."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반대하는가"를 묻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날 한 장관의 태도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돼온 비동의강간죄에 대한 감정적 반발들과는 그 결이 조금 달랐다. 그는 해당 법안이 "억울한 (무고)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면서도 "동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확언했다.

즉 한 장관은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현행 형법상 강간죄가 '억울한 성범죄 피해자'를 만들고 있음을 인정하되,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아닌 '무고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타국에 비해 높은 국내 성범죄 유죄율 △기존재하는 성폭력 관련 특별법 등 구체적인 논거를 이날 쏟아냈다. 강간죄 개정 시의 "실익보다 위험성이 크다" 주장하면서, 법안을 둘러싼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신중한 토론을 시작'하자고 피력했다.

<프레시안>은 ①피고인 입증책임 전가 현상 ②국내 재판 현장의 높은 성범죄 유죄율 ③특별법을 통한 입법공백 보완 등 한 장관이 언급한 비동의강간죄 관련 논의사항들을 다시 살폈다. 연구현장에 쌓여왔던 반박 논리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해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전문가들은 비동의강간죄를 두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논의'만을 반복하는 정부의 태도가 "기만적"이라 입을 모았다.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두고 토론하고 있다. ⓒ국회방송 중계화면(류호정의원실 제공)

Q.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할 경우, '동의'에 대한 입증책임이 피고인에게만 전가된다?

A. 한 장관은 "강간은 당연히 동의가 없는 것(성관계)"이라면서도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될 경우엔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해당 피고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조문구조상 백퍼센트 그렇게 된다"고 지적했다. 명백한 증거가 남기 힘든 '동의'를 피고인이 직접 증명해야 하기에 무고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성범죄법을 통해 성폭력을 '동의없는 성적 행위'로 개념화한 영국은 '비동의'에 대한 판단기준과 입증책임을 구체적으로 조문화하고 있다. 법률에 따르면 형법이 인정하는 비동의란 '고소인이 피고인의 (성적) 행위에 동의하지 않으며, 피고인은 고소인이 동의한다고 합리적으로 신뢰하지 않은 경우'에 한정된다. 즉 '각서를 받아두지 않으면 강간'이라는 식의 일부 조롱과 달리 검사는 비동의 강간의 고의성을 입증해야한다. 

고소인의 신뢰(비고의성)가 합리적인지 여부는 "피고인이 고소인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취한 모든 단계를 포함하여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무엇보다 "결과의 추정은 오직 검사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피고인이 관련행위를 하였고, 제2항의 사정(비동의 및 고의성)이 존재함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할 때만 성립한다.

성폭력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입증 책임이 가해자에게 돌아가서 무고한 케이스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심신상실·항거불능 등을 입증하도록 되어있는 현행 준강간죄의 경우에도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행위였음을 기본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지금도 "피해자 측은 행위 당시와 전후 상황 등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제시하면서 그 '비동의'를 입증하고 있다"는 게 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어 그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폭행·협박이 없으면 강간으로 규정하지 않아온 사회적인 인식"이라며 "인식이 따라주지 않으니 비동의강간죄가 당장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판결 상의 관행은 유지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사가 피해를 먼저 입증하고, 피고인이 그에 대해 소명하는 것은 "모든 재판 과정의 기본 구조"며, 이는 성범죄 사건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사건 당시와 이전과 이후를 포괄하는 고소인과 피고인의 관계, 양측 진술의 신빙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그 합리적 추산에 의해 처벌 여부가 결정된다.

이 변호사의 지적처럼, 오히려 비동의강간죄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그 '평가와 추산' 과정엔 사회적 통념이 개입할 여지도 있다. 이 변호사는 "절도나 살인 같은 범죄엔 피해자의 행실이나 피해자가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식의 통념이 없지 않나" 되물으며 "오히려 왜 유독 성범죄에만 비동의 기준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지 되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 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Q. 성범죄 유죄율이 90%가 넘는 상황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과한 대처?

A. 한 장관은 독일과 스웨덴 등이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한 배경엔 "너무 낮은 성범죄 유죄율"이 있었다며 성범죄 유죄율이 90%에 이르는 국내 상황이 해외와는 다른 경우라고 지적했다. 유죄율이 이미 90%를 웃도는 상황에 비동의강간죄까지 도입해 고소인(피해자)을 보호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해 국내 여성계는 '낮은 기소율과 신고율'을 '높은 유죄율'의 맹점으로 꼽아왔다. 재판으로 넘겨지는 경우 자체가 적다면 '유죄율'만으론 성범죄 현황을 평가하기 어렵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대한 1심 유죄율은 96.3%에 이르렀지만,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같은 해(2021년) 기준 검찰에 송치된 전체 성폭력 피의자(3만1991명) 중 기소된 이들(1만3740명)은 42.9%에 불과했다.

이는 살인(751건 중 68.8%), 강도(753건 중 66.9%), 방화(907건 중 53.8%) 등 같은 흉악범죄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기소율이다. 성범죄는 해당 범죄군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나 가장 적게 기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변호사는 "고소 건 중 얼마나 기소가 돼서 유죄로까지 이어졌느냐 전 과정을 세심히 살펴봐야 정확한 데이터"라며 "기소율이 높은 나라의 유죄율과 한국의 경우를 단순 비교한 한 장관의 말은 (비록 거짓은 아니라고 해도)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법사위 업무보고 당시 "한동훈 장관이 사용한 우리나라 유죄율 90%는 기소 대비 유죄율로, 독일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70% 수준"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 장관은 대정부질문 당시 독일의 성범죄 유죄율을 8%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에 더해 "성범죄 유죄율 안에 있는 선고유예, 벌금형, 집행유예 등의 통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성폭력특례법으로 내려진 1심 판결 4673건 중에선 1802건이 집행유예를, 1101건이 벌금 등 재산형을, 26건이 재산집유를 받았다.

여론에 비해 낮은 수위의 판결이 지속되고, 사회 통념 등이 그 판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성폭력 피해자가 법원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감정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등 형법 개정이 "그러한 통념을 형법체계 내에서 제거해 나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성폭력 상담 현장의 전문가인 김 소장은 특히 "성범죄의 경우 친고죄 조항이 폐지된 최근까지도 실태조사 상의 신고율이 10%대로 집계되고 있다"라며 "낮은 신고율과 기소율로 현장의 피해가 누락되고 있음에도, 현행 형법은 그 누락된 피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유죄율 90% 논리'의 맹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9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페미사이드 규탄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들고 있는 피켓. ⓒ프레시안(한예섭)

Q. 성폭력 관련 특별법이 이미 강간죄 '입법공백'을 보완하고 있다?

A. 현행형법이 '입법공백을 보완하고 있느냐' 여부는 비동의 강간죄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한 장관은 독일(51개)이나 일본(16개)에 비해 많은 국내 성범죄 관련 법률(150개)이 이미 "비동의강간죄의 필요성을 많이 메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그대로 둔 상태에선, 그를 보완하는 법이 신설된다 하더라도 재판 현장의 '최협의설'을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예로, 현행 강간죄의 공백을 메우는 가장 대표적인 법령은 형법상 준강간죄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하는 일을 준강간·준강제추행(제299조)으로 규정한다. 법령대로라면 폭행과 협박이 없는 성폭력 또한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같은 수준의 처벌이 가능한 셈이지만, 현장 전문가의 판단은 다르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8년 발간한 <젠더 폭력 관련 법체계 개선방안>에서 "강간죄의 폭행·협박이 성폭력범죄의 기본적인 유형이므로, 이와 동일한 법정형이 규정된 준강간죄의 경우 심신미약의 상태를 제외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협소하게 규정된다"라며 준강간죄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김혜정 소장은 "가령 피해자가 명백하게 술에 취해있는 상태였더라도, 재판부가 심신상실의 정도를 따지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굉장히 애매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걸음이 힘든 상태에서 숙박업소에 끌려가듯 도착했더라도 벽지색깔을 기억한다거나 가해자의 말에 어느 정도 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심신상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1년 대법원은 만취상태에서 벌어진 준강간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거나 저항행위에 대해 진술했다'는 이유로 그의 상태가 만취나 인사불성이더라도 심신상실에 까진 이르지 않은 심신미약의 정도라 판단한 바 있다.(2011도11518)

반대로 피해자가 상황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엔, 블랙아웃(기억하지 못하나 의식이 있었던 경우)의 가능성 등으로 가해자의 고의성 여부를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김 소장은 "피해자가 피해상황을 기억하면 준강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데, 반대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엔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논리가 우세해지는 모순이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0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술·약물·수면상태 등을 활용한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피해 사례에서 법적대응을 선택한 피해자들은 38%(전체 65건 중 25건)에 불과했다. 법적 대응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처벌에 대한 불확실(30.8%) 때문이었다.

형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성범죄를 특별법 중심으로만 다루려 하면, 필연적으로 "실재하는 피해가 누락되는 기간"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형법은 제302와 303조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력으로써 간음'하는 죄를 명시하고 있지만, 위력관계의 범위는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302조), 업무 및 고용 관계(303조) 등으로 한정된다. 이 변호사는 "미투 운동 이후 위력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현재지만, 지금도 법률이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위력관계들이 현장엔 무수하다"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결국 가부장적인 강간죄 규정이 남아있는 한, '물리력이 극심하게 동원되지 않으면 피해자를 끝없이 의심하는 방식'의 판단기준이 변할 수 없다"라며 "특별법을 두텁게 할 때가 아니라 강간에 대한 사회적-형법적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0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술·약물·수면상태 등을 활용한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피해 사례에서 법적대응을 선택한 피해자들은 38%(전체 65건 중 25건)에 불과했다. 법적 대응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처벌에 대한 불확실(30.8%) 때문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Q. 법무부는 '비동간' 논의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하자는 것?

A. 형법개정은 민감한 문제다. 신중한 토론이 따라야 함이 당연하다. 다만 2023년 현재를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자고 말하기에는 상황이 다소 민망하다. 20여 년 간 이어져 온 논의가 이미 학계와 현장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말만으로는 어떤 논의도 시작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폭행·협박 요건에 따른 최협의설에 대한 비판은 90년대 초반 성폭력특별법제정운동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비동의강간(간음)죄'가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도 그때부터다. 최은순 변호사가 93년 <여성과 형사법>에서,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94년 <성폭력특별법과 피해자보호>에서 각각 '비동의간음죄의 신설'을 형법상 대안으로 언급했다.

김 소장은 "애초에 당장 이 법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게 오해"라고 지적한다. 법 개정을 위한 논의만 20년째 반복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법 개정을 통해 강간 통념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선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강간죄 개정은 실제 범죄현장에서 수사, 사법기관에 이르지 못하는 누락된 피해들을 조금이라도 가시화할 수 있는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 또한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최협의 폭행·협박만을 강간의 요건으로 보아왔다. 때문에 개정 이후에도 관행과 현실 간의 혼란이 잇따를 것"이라며 "그 혼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강간죄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강간죄) 개정 계획이 없다"는 법무부 발표 이후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 정책기본계획(2023~2027) 상의 비동의간음죄 관련 내용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해당 계획 상의 비동의간음죄 관련 내용은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지난 8일엔 당초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명시한 기본계획 내 문구에 '검토' 표현을 추가한 것조차 법무부의 의견에 따른 일이었다는 내용을 <한겨레>가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검토도 안 되는가'라는 비판에 대해 한 장관은 8일 "(법 개정이) 당장 추진되는 것으로 오해될 것 같아서 (반대) 입장을 냈다"고 해명했다. 반면 현장에선 '완전무결한 검토의 시간은 대체 언제인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 한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비동의강간죄) 논의를 막는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오해와 논쟁이 없는 '논의'는 드물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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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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