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윤석열 정부, 외국 자본으로 적자 메우려는 전략인가"

[경제, 묻다] 임수강 경제학 박사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40일간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176억 달러에 달했다고 관세청이 밝혔다. 지난 해 같은 기간 무역적자액의 두 배에 달할 뿐 아니라,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6년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2023년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금융경제연구소, 경기연구원 등에서 연구 활동을 해온 임수강 경제학 박사는 14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수출 주도'인 한국 경제에서 무역수지는 곧바로 경상수지로 연결된다"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 정도 경상수지 적자가 난 다음에 IMF 외환위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물가 상승과 무역 적자의 원인은 모두 중국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분업 관계를 유지하던 '차이메리카'의 가장 큰 수혜국 중 하나였던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변화로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어느 때보다 실용적인 외교가 필요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경제정책 수장들이 '친미·반중'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임수강 박사는 또 윤석열 정부가 외환시장 개방 정책을 들고나온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무역 수지를 개선하기보다는 단기 외국 자본으로 그 적자를 메우려는 생각은 아닌지 걱정이다. 무역 적자가 늘어날수록 그것을 메우기 위한 단기 자금 유입량이 커지기 마련인데, 단기 자금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돈 아닌가. 자칫 나라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다음은 임 박사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임수강 경제학 박사. ⓒ프레시안(이명선)

"물가 상승과 무역 적자는 같은 요인…단기간 개선 어렵다"

프레시안 : 난방비와 장바구니 물가를 비롯한 생활요금은 오르고 있는 반면, 경상수지 규모와 무역적자 등 대외적인 경제지표는 추락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기대 심리와는 다른 모습인데, 얼마나 더 안 좋아질지 걱정이다.

임수강 : 물가가 오르는 요인과 무역수지 적자가 생기는 요인은 그 뿌리가 거의 같다고 본다. 2008년 이후, 더 멀리는 1990년대 초 이후로 물가가 오르지 않다가 지금 몇십 년 만에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 됐는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물가 체감률이 굉장히 높은 게 사실이다.

진짜 문제는 무역 수지의 적자다. 한국의 경제를 '수출 주도 경제'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 무역수지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무역수지는 곧바로 경상수지로 연결된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한 3년 정도 경상수지 적자가 난 다음에 IMF 외환위기가 왔다. 이번에도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데에도 무역수지 적자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체로 무역수지 적자,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 자산 가격이 떨어진다. 거꾸로 흑자가 나면 자산 가격이 오른다. 흑자가 난다는 것은 달러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인데, 유입된 달러를 원화로 바꾸게 되니 은행의 대출 여력이 풍부해져서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오르게 된다.

현 부동산 상황을 짧게 정리하면, 금리가 오르고 여기에 무역 수지 적자가 합쳐져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국면이다.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안타깝게도 단기간에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 2022년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5.1% 상승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식당에 붙은 공지문. 인건비 상승과 물가 인상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며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다. ⓒ연합뉴스

위험 경고 1. '중국 효과'가 사라진 지금, 尹정부의 '친미·반중 외교' 위험하다

프레시안 : 물가 상승과 무역 적자 요인이 같다고 했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임수강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물가가 지난 30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중국 효과' 덕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편입됐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필요도 있었지만 미국 자본의 필요도 강했다. 세계 시장은 당시 '과잉 달러'가 문제였는데, 과잉 달러와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결합하여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미국 자본의 요구가 있었다. 그렇게 중국과 미국이 일종의 분업 관계를 형성하면서 중국이 세계 시장에 저가로 공급하는 상품량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전 세계 물가가 장기간 안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 의존 관계를 금융학자인 닐 퍼거슨은 '차이메리카(Chimerica, China+America의 합성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한국은 여기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비교적 빨리 극복한 데도, 이 같은 중국 효과 도움이 컸다.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해마다 300~400억 달러씩 계속 흑자를 내면서 그 돈으로 에너지 부문의 적자를 메워왔다. 그 효과가 이제는 사라졌다.

최근에 미국이 중국에 대해, 그리고 중국과 가까워진 러시아에 대해 봉쇄전략으로 나오면서 국제 분업 관계가 흔들리고 이것이 세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역 적자 문제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요인의 뿌리가 같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중국 효과'를 누리면서 물가가 안정됐다고 했는데, 금융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임수강 : 중국과 미국의 분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물가가 안정되자,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물가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화폐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중앙은행들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쪽의 정책을 펴는 것이 가능했는데,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끌어올리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GDP에 대비한 자산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예컨대 미국 연준은 주식 가격이 올라가다가 꺾이면 개입을 해서 다시 끌어올리고는 했다. 이를 당시 연준 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이름을 따서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 또는 '앨런 풋(Yellen put)'이라고 한다. 금융시장 또는 경제가 크게 약세를 나타낼 때, 연방준비제도(Fed)가 적극적인 통화완화에 나서 시장을 떠받치는 것인데, 이 같은 '풋 옵션'은 2000년대의 양적 완화로 연결됐다. 우리가 '금융 세계화' '금융화', '세계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이와 같은 자산 자산 규모의 팽창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30년간의 상황을 보면, 외교적으로도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하고 있다.

임수강 :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경제정책 수장들이 이념적으로 굳어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친하면 우리 편이고 미국과 대립하면 적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윤 대통령의 "이란은 UAE의 적"이라는 발언도 UAE는 미국하고 친하게 지내니까 우리 친구고 이란은 미국하고 갈등 관계에 있으니까 우리 적이라는 인식 아닌가.

사실 중국은 그동안 한국 경제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는데, 현 정부는 경제 문제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이념과 가치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굉장히 위험하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를 이명박 정부와 많이 비교하는데, 비즈니스맨이었던 MB의 외교는 실용주의였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임수강 :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이명박 정부도 윤석열 정부 못지않게 외교 정책에 문제가 있었지만, 경제 문제에서는 나름대로 실용적이었다고 본다.

중국에 대해서 우리가 상당히 얻을 게 많은데도 현 정부가 지금 이념적으로 접근하다 보니까 실제로 그 부정적인 효과가 불리한 무역수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 경제팀은 중국과 무역 수지가 악화한 이유를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탓으로 돌리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중국의 전체적인 교역 규모가 준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중국의 전 세계 수입량은 줄어드는 추세가 아니다. 반면, 한국의 중국 수출량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중국의 무역수지 감소가 코로나 봉쇄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정상이 3년5개월 만에 손을 맞잡았다. ⓒ로이터=연합

위험 경고 2. 외환시장 개방으로 무역 적자 메우려는 尹 정부, 위험하다

프레시안 : 지금 국내적인 요인보다는 대중국 관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적 요인이 큰데,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가들이 어떤 대안과 방향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다.

임수강 : 금융 면에서 보면 한국은행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이하 '연준')의 의사결정에서 독립하는 것, 그리고 외국자본이 장악한 은행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 자본의 유출입을 한국 경제 현실에 맞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개방·규제 완화는 그렇지 않아도 변동성이 큰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키울 것이다.

프레시안 : IMF 외환위기 이후 남아있던 빗장을 풀겠다는 것인데, 해외 송금 한도를 연간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확대하고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현행 오후 3시 30분에서 새벽 2시로 연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외환시장 개방, 특히 어떤 측면에서 걱정이 되는가.

임수강 : 전사를 조금 얘기하자면, 1980년대에는 실물 생산인 GDP 규모와 금융자산, 곧, 주식, 채권, 수익증권 규모가 1대 1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금융화' '세계화'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서면 GDP와 금융자산 규모가 1대 4 가까이 됐다. 20년 동안 금융자산이 엄청나게 팽창한 것이다.

금융자산의 팽창은 앞서 말한 대로, 미국의 자본력과 중국, 그리고 개도국의 노동력을 결합한 데서 생기는 효과를 반영한다. 미중 분업 관계의 발전은 미국 자본, 특히 금융자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지만 중국 노동력의 숙련도와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미국 전체 자본의 이해에 반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부 때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이라는 지니를 알라딘 램프에 다시 집어넣는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트럼프 정부 때는 미국이 직접 나서서 중국을 제재했는데, 바이든 정부 때는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동맹국을 앞세워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할수록 한국은 더욱 난감한 처지에 놓이고 무역 수지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단기 자금으로 무역 적자를 메우려는 전략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환 규제 완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부의 외환거래 전면 자유화 검토는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무역 수지를 개선하기보다는 단기 외국 자본으로 그 적자를 메우려는 생각은 아닌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무역 적자가 늘어날수록 그것을 메우기 위한 단기 자금 유입량이 커지기 마련인데, 단기 자금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돈 아닌가. 자칫 나라 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약간의 음모를 더하자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돈을 버는 사람은 더 벌겠지만, 반대로 돈을 잃는 사람은 더 잃는 것 아닌가.

임수강 : 그렇다. 그럼에도 외환시장 개방·규제 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리고 외환시장 개방이 외국 자본들의 지속적인 요구를 반영하여 이뤄진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을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밝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외환시장 개방은 무역 적자를 단기 외국 자본으로 메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필요와 한국 시장에 들어와서 투기적인 단기 이익을 얻고 싶어 하는 외국 자본의 요구가 맞아떨어져서 이뤄진 측면이 있다. 그래서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 123층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나

프레시안 :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또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시기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임수강 : 2008년 미국 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자산 가격이 폭락하자,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샬롬 버냉키(Ben Shalom Bernanke)는 양적완화(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직접 공급하여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 정책을 펼쳤는데, 그는 '양적완화의 목표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양적완화가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양적완화의 효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우리나라도 박근혜 정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부터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미국 연준과 주요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효과 때문이었다. 만약 수요 공급 문제라면 부동산 가격이 우리나라에서만 올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세우게 되는데, 핵심에서 벗어난, 공급을 늘린다든가 청약제도를 바꾼다든가, 부동산 세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엉뚱한 대책으로 일관했다. 실제로는 어떤 걸 했어야 하느냐? 미국의 양적완화로 달러, 곧 투기성 자금이 많이 들어온 것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기 때문에 그걸 막는 걸 정책의 핵심으로 삼았어야 했다. 금융당국이 그걸 했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 때를 경험한 문재인 정부는 틀림없이 부동산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왜 문재인 정부의 금융당국은 단기 외국자본 규제에 소극적이었을까? 이명박 정부마저 신현송 경제고문의 제안에 따라 이른바 '거시 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규제·외환건전성 부담금·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를 도입하여 투기성 자본의 유입을 규제하려 했는데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은행의 정책에 개입하는 것도 극도로 꺼렸던 듯하다. 혹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관념에 강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결과 정부가 중앙은행에 협력을 구하는 데 거부감을 느꼈고, 결국 방임한 것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당시 이주열 총재(2014~22년까지 총재를 역임한 최장기 한국은행 총재)는 부동산 상황만을 고려하여 금리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발언은 마치 '부동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우리는 그걸 보고 금융정책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모두가 다 부동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다는 것일까.

한국은행이 담보대출을 늘리고자 하는 은행들이나 부동산을 많이 가진 기업, 부유층의 눈치를 너무 본 것은 아닐까? 담보대출은 사실 완전히 땅 짚고 헤어치기식 영업이다. 은행들의 압력 행사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담보대출이 늘면 늘수록 엄청난 이익이 발생한다. 은행들은 담보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인상했지만,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수신(예·적금) 금리는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너무 크게 인식한 결과 방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는데,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임수강 :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개념은 △정부와 정치에서 독립한다는 의미, △연준에서 독립한다는 의미, △시장에서 특히 은행들 입김에서 독립한다는 의미, 이렇게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행 독립성 하면 정치와 정부에서 독립하는 것만을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책 <바젤탑> 저자인 아담 레보어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이나 정부에서 독립은 금융자본이나 금융 세력이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건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상황에 비춰보면,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에서 독립하는 것, 외국 자본에 장악된 은행의 입김에서 독립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한국은행이 정부와 정치에서 독립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잘못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은행의 정치적인 독립, 이것만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까 시장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 연준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특히 시장에서 독립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떤 노력도 없었다.

프레시안 : 한국의 정치적·언론적 상황 감안했던 것 아닐까?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상황과 관련해 '연준의 역할'이라며 끊임없이 신호를 주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독립성 침해로 받아들일 것이다.

임수강 :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한국은행 독립성이 진보의 가치로 받아들여지기조차 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필요할 때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개입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겠는가, 아니면 집 없는 다수 서민을 보호하는 가치가 중요하겠는가?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임명으로 일종의 '개입'이 가능하다. 금통위는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부총재 △기획재정부장관 추천 1명 △한국은행 총재 추천 1명 △금융위원회 위원장 추천 1명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추천 1명 △사단법인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추천 1명 등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금통위는 정부 대표자와 금융자본 및 산업자본 대표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금통위에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농민·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없다. 결국 자본의 이해관계, 특히 금융자본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지지율도 높고 다수의 의석을 가진 문재인 정부가 금통위 의사 결정 구조를 바꿨다면? 그때도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이 부동산 부자 편향적이었을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은행법'은 금통위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 권한은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

▲ 서울 시내 한 부동산 모습.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최근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연합뉴스

"금융정책의 레짐이 바뀌고 있다. 국내 부동산도 미중 관계에 영향받아…"

프레시안 : 지난해 출간한 번역서 <바젤탑>은 각 나라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격인 국제결제은행(BIS)를 중심으로 한 금융 이야기를 다뤘다.(☞ 관련 기사 : "BIS 모르면 사회 양극화 이야기 할 수 없다") 이 책의 부제가 '금융이 무너지는 시기, 무엇을 할 것인가'로, 의미심장해 보인다.

임수강 :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금융이 무너진다'기보다는 '금융자산 가격의 거품이 무너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BIS 화폐경제국장 자리는 각 나라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을 통일시키고, 통일된 정책을 다시 여러 나라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화폐경제국장이 최근 "금융정책의 레짐(regime)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1990년대부터 유지돼 온 금융정책의 레짐이 큰 틀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본력과 중국의 노동력의 결합으로 생긴 물가 안정 국면의 자산 가격 보호에 중점을 둔 금융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시기는 중앙은행들이 자산가 편향적인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시기였고 실제로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왔는데, 거기에서 금융세력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얻었다. 그런데 미국의 중국, 러시아 고립화 정책,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자산가격 중심의 정책을 더 이상 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저물가를 기반으로 한 자산격 유지 중심 금융정책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자산 가격의 거품이 붕괴하는 시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지금까지 쌓아온 금융자산의 가격이 무너질 텐데, 문제는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무너질 것인가'이다.

미국의 정책 금리가 이에 대한 하나의 판단 지표가 될 수 있다. 미국 금융자본은 중국과의 분업 관계 악화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아직은 대중국 정책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한계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점에서는 연준이 금융자본의 이익을 고려하여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미국 내 전체 자본의 이해와 금융자본 분파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책 금리가 결정될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이 아우성을 치고 연준이 정책 금리 기조를 바꾸는 국면까지는 자산가격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전 세계적인 경제 흐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금리가 문제인데….

임수강 : 이창용 현 총재가 "한국은행은 정부에서는 독립해 있지만 미국 연준에서는 독립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 연준이 정책을 수립하면 한국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은행이 연준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사실 한국의 금리 예측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미국의 금리를 예측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 미국이 금리를 거의 1% 수준까지 완전히 낮췄다. 이 같은 초저 금리에 대출 장벽까지 낮추면서 돈이 풍부한 상태가 됐다. 그러다 몇 년 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5% 선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형태로 거품이 터졌다. 이에 비춰보면, 미국의 정책금리 5%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미국 금리가 2007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4.50~4.75% 수준인데, 거의 위험 수위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일정 기간 가격 하락을 감안해야 할 것 같은데, 이 같은 침체기가 오래갈까?

임수강 : 부동산 가격 전망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금융 세계화 국면에서 부동산 시장은 사실상 금융시장으로 포섭된 상태다. 부동산 소유권의 많은 부분은 은행 담보대출에 묶여 있고, 부동산 담보대출은 증권으로 포장되어 금융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또한 '리츠(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라는 펀드가 부동산 소유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수요와 공급 이론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은 금융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준의 금융정책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결국 현 국면에서는 한국의 부동산 가격 역시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달려있다. 미국이 중국을 밀어낼수록 물가는 안정이 안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자산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프레시안 :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 '강남 불패',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또한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서민 입장에서 또 '영끌'한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진짜 열패감이 드는 상황이다.

임수강 :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한다고 규제를 완화하고 혜택도 주고 있는데, 당장의 가격 유지에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상승 국면으로 전환됐을 때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강남불패'가 신화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강남도 결국 떨어질 것이다. 좀 더딜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공포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얘기해야겠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보다 '영끌'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본다. 부채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한 40%만이 대출을 받고 있다. 60%는 대출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는 얘기다. 왜? 신용등급 낮기 때문에…. 특히 큰 금액의 대출은 상위 10%의 사람들에게 몰려 있다. 이들이 생계비가 부족해서 대출을 받았을까? 아니다. 부동산 구매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다. 결국 '영끌'해 집을 산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 수 있다. '영끌론'은 부동산 부자들이 정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둘러대는 허위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 지난 1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은행=공공재'라는 尹 대통령, '금융 배제' 포용해야…"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다"며 '은행의 돈잔치'를 경고하고 나섰다.

임수강 : 고금리 시대인 만큼 대통령이 은행을 때리면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겠나. 노동조합의 회계 장부를 요구하며 압박해 얻은 지지율과 같은 경우다. 실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은행을 공공재라고 규정한 만큼 이를 공공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외국자본이 장악한 은행들은 부유층 대상 담보대출에 주력하는 한편, 신용 등급이 낮은 고객은 적극적으로 쫒아 내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한 영업전략 때문에 '금융 배제' 문제가 생겨나고 은행 바깥에서는 고리채 사업이 번성하고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담보대출은 규제해야 하고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은행에서 밀려난 계층을 제도 금융으로 끌어들여서 포용금융을 실현해야 한다. 누구든 제도금융 이용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금융기본권에 대한 논의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신한지주, 하나지주 등 주요 은행지주의 외국 자본 지분율이 대략 70% 선이라는 점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사례는 동유럽 국가 몇 군데 빼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한국은행 또한 외국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공성이 실현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행 거버넌스 문제다. 은행이라는 기관이 주주만을 위한 기관은 아니다. 은행에는 노동자, 고객, 정부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관련되어 있다. 이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서 은행들이 주주들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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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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