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여진이야!" 자다 깨는 아이들, 생존자 PTSD '심각'

로힝야 난민, 튀르키예 지진에 담요 모아 온정…구조 소식 잦아들며 생존자 구호로 점차 초점 이동

미얀마에서 박해를 받아 방글라데시에서 난민 생활 중인 로힝야족이 튀르키예(터키)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구호품을 전달했다. 구조 소식이 점점 잦아드는 가운데 어린이를 포함한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은 14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남부 난민촌에 거주하는 로힝야 난민들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을 모아 700개의 담요와 200개의 재킷을 구매해 기부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방글라데시 로힝야 공동체 쪽 대표인 사하트 지아 헤로가 "우리 자신도 난민으로서 기부와 지원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지만 로힝야 위기 발생 직후부터 "튀르키예는 주요 구호 제공자였다. 가장 소중한 친구가 엄청난 재앙에 맞닥뜨렸는데 우리가 어떻게 방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재정적 여력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보낸 구호물자가 "사랑의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미얀마군이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서 자행한 로힝야족 집단 학살 탓에 수십 만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등 인근 국가로 대피해 난민이 됐다. 불교 신자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아 왔다. 당시 학살을 주도한 군부는 20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상태다.

<아나돌루>는 이날 로힝야 쪽으로부터 구호품을 전달 받은 대외원조기관 튀르키예협력조정청(TIKA)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사무소가 감동으로 가득찼다고 전했다. 통신은 방글라데시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흩어져 있는 로힝야 공동체들도 튀르키예 지진 구호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 시리아 북서부와 접해 있는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발생한 규모 7.8과 7.5의 강진과 이어진 여진으로 14일까지 양국에서 4만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14일 레제르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 최소 3만5418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시리아 국영 <SANA> 통신은 보건장관이 사망자 수를 1414명으로 밝혔다고 보도했고 13일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반군 통제 지역이 포함된 시리아 북서부에서 44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고 밝혔다.

단백질 가루 먹으며 200시간 버틴 형제 등 구조 소식 들려오지만

지진 발생 200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적적 구조가 이어지며 희망을 줬다. <아나돌루>는 지진 발생 212시간 만인 14일 밤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77살 여성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매몰 207시간 만에 45살 남성, 201시간 만에 26살 여성도 구조됐다.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선 205시간 만에 35살 여성이 구조됐다.

카라만마라슈에서 지진 발생 뒤 거의 200시간 만에 구조된 바키 예니나르(21)와 무하메드 에네스 예니나르(17) 형제는 단백질 보충제 가루를 먹으며 일주일 이상을 버텼다. 아디야만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매몰돼 198시간 만에 구조된 무하메드 카퍼 세틴(18)은 구조 직후 따뜻한 식사와 물을 다급히 요청했다. 구조대는 부서진 집의 평면도를 보며 그의 매몰 위치를 추적했다고 한다. <로이터> 통신은 14일 튀르키예에서 최소 9명이 구조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골든타임으로 본 매몰 72시간 지난 뒤 생존 구조자 수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나돌루>를 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14일 생존 구조자 수가 "80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진 발생 하루 뒤인 7일 정부 발표 수치에서 크게 변동하지 않은 것이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카라만마라슈 구조 현장에서 주검이 쏟아지고 있다며 "도시가 거대한 묘지가 돼 가고 있다"고 15일 오전 보도했다.

14일 <로이터>는 유엔 당국이 구조 위주의 작업이 곧 종료되고 생존자의 주거·음식·교육 등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전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시리아 생존자 구호를 위한 3억9700만달러(약 5089억원)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생존자 의료 지원을 위한 4300만달러(약 552억원) 모금을 진행 중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초기 조사에서 지진으로 건물 4만7000채 내 21만1000곳 가구가 파괴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3월 초부터 주택 3만 채 건설에 착수할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아빠, 여진이야!" 자다 깨는 아이들…아동 심리 지원 시설 이용 급증

지진 생존자들이 신체적 부상에 이어 정신적 고통에도 시달리고 있다고 <로이터>는 14일 전했다.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에서 지진 피해자 치료를 맡고 있는 인도 의료 지원팀의 일원 비나 티와리 소령은 통신에 지진 "초기 환자들은 잔해에 깔려 부상을 입은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공황발작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튀르키예의 한 의료 관계자는 통신에 "사람들이 이 충격적 사건 뒤 이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감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에게도 심리적 상흔이 크게 남았다. <아나돌루>는 아디야만에서 어린이들의 심리적 상처를 돌보기 위해 마련된 임시 천막 놀이터에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몰리고 있다고 14일 전했다. 교육부와 군·경찰이 협력해 세운 이 시설엔 처음엔 20명 남짓한 어린이들만 방문했지만 이제 그 규모가 700명으로 늘었다.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 주민인 하산 모아즈는 그의 9살 아들 아마드가 "큰 소리가 들리면 겁에 질리고 자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아빠, 여진이야!'라며 깨어난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아마드는 유니세프가 아동들의 정신 건강 지원을 위해 시리아에 마련한 임시 시설에 머물고 있다.

한편 14일 유엔(UN)은 추가로 열린 시리아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 지원 통로 중 하나인 바브 알살람 국경을 통해 국제이주기구(IOM) 트럭 11대가 구호품을 실어 날랐다고 밝혔다. 전날 유엔과 시리아 정부는 튀르키예에서 시라아 북서부로 향하는 기존 지원 통로인 바브 알하와 국경 외에도 지진 구호를 위해 바브 알살람과 알라이 2곳의 국경을 3달 간 추가로 임시 개방하는 데 합의했다.

▲ 14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에서 강진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곰 인형이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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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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