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현장에 기저귀 보낸 UN…"매몰된 아이에 무슨 소용"

WHO "2차 재앙이 직접 피해보다 클 수 있다"…4일 만에 구호품 받은 시리아 북부 '탄식'

지난 6일(현지시각) 발생한 튀르키예(터키) 및 시리아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 명을 넘긴 가운데 혹한에 생존자들의 건강에도 비상이 걸렸다.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생존자보다 주검이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시리아 반군 통제 지역엔 애타게 기다리던 구호 물자가 도착했지만 지진 이전 구성된 물품인 탓에 현지에선 탄식이 흘러 나왔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10일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이번 지진으로 이날까지 튀르키예에서 1만8342명이 목숨을 잃고 7만424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 피해 규모는 1만7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북서부 이즈미트 지진을 넘어 3만 명 이상이 숨진 1939년 북동부 에르진잔 지진 이래 84년 만에 가장 컸다. 지난 6일 새벽 시리아 북서부와 맞닿은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인근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반나절 뒤 발생한 규모 7.5 지진을 포함해 규모 4 이상의 여진만 100회 이상 이어지며 피해를 키웠다.

시리아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얀 헬멧'(시리아시민방위대·SCD)은 9일까지 이 지역 사망자 수가 2030명, 부상자 수가 295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시리아 국영 <SANA> 통신은 지진으로 1347명이 목숨을 잃고 2295명이 다쳤다고 밝혀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의 사망자 수는 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초기 10만 명 이상 사망 가능성을 14%로 전망했던 미 지질조사국(USGS)은 10일 이를 24%로 상향한 상태다. 초기에 국내총생산(GDP)의 1% 가량으로 추정했던 튀르키예 경제적 손실 규모도 1~10%로 열어 놨다. 2021년 기준 튀르키예 GDP는 8190억달러(약 1034조원)다. 지질조사국은 손실 규모가 1000억달러(약 126조원)를 넘길 가능성도 33%나 된다고 전망했다.

매몰 중 태어난 아기 입양 문의 쇄도…"희망 버리지 말라" 글귀 새기며 버틴 생존자도

구조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9일 <아나돌루>는 튀르키예 남동부 아디야만에서 매몰 82시간 만에 태어난 지 6달 된 영아가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남동부 디야르바키르에선 매몰 81시간 만에 8살 어린이가 무너진 건물 밑에서 구조됐다. 매몰 64시간 만에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구조된 24살 남성 도간 아코크는 매몰 중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글귀를 잔해에 새기며 버텼다. <아나돌루>는 아코크를 발견한 소방관들이 그를 구조하기 위해 잔해를 치우며 계속해서 그를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영국 BBC 방송은 시리아 북부 진디레스에서 지진 발생 10시간 만에 구조된 신생아에 대한 입양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매몰 중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이 여아는 6일 탯줄도 끊지 않은 채 출산 뒤 사망한 어머니와 함께 발견됐다. 시리아 국내 난민으로 알려진 아이의 가족은 이번 지진으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방송은 소셜미디어(SNS)에 수천 건의 입양 문의가 올라 왔고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병원에도 수십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병원 쪽은 아이의 친척을 기다리는 중이고 아직 입양을 보낼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생존자보다 주검 더 많이 발견…운동경기장이 '시신 안치소'로

그러나 희망의 빛은 점차 작아지고 있다. <AP> 통신은 9일 진앙 부근인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에서 수색이 계속됐지만 대부분의 실종자가 숨이 끊어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임시 시신 안치소가 된 카라만마라슈의 한 운동경기장에서 한 자원봉사자는 경기장으로 "주검이 2분에 한 번씩 도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시리아 북부에서 구조 작업 중인 하얀 헬멧도 트위터에 "지진 발생 뒤 90시간 이상이 지났다. 매몰된 이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사망자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간청했다. <AP> 통신은 9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재난의학 전문가 재론 리가 재난 발생 "5~7일 이후 생존자가 발견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드물다"며 "7일 이후에도 생존한 많은 사례가 있지만 불행히도 이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하에 야외서 버티는 생존자들…저체온증·콜레라·코로나19 등 위협 직면

생존자들의 건강에도 비상이 걸렸다. 피해 지역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가운데 많은 생존자들이 여진이 두려워, 혹은 가족의 매몰 현장을 지키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야외에서 추위에 떨며 지내고 있다. 주말까지 피해 지역 최저 기온은 영하 2도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보돼 있다. 통상적으로 대부분 피해 지역의 2월 최저 기온은 영상에 머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생존자 아흐메트 토크고즈가 정부에 재난 지역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킬 것을 촉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그는 "잔해에 깔려 죽지 않은 사람들이 추위로 죽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로버트 홀든 세계보건기구(WHO) 지진 대응 담당자는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재난 지역에 물을 비롯해 연료·전기·통신 수단 등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심각한 2차 재앙 위험"을 경고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8일 제네바 기자회견에서 이미 지난 8월부터 8만5000건의 콜레라 감염 사례가 보고된 시리아에서 추가적 위험을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료진들에겐 현 상황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혹한에 생존자들이 저체온증과 동상에 직면할 수 있고 대피소 등 밀집된 환경에서 코로나19를 포함한 호흡기 질환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 유행도 우려된다. 지진으로 의료 시설 또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기저질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료도 원활히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리아 북부에 지진 전 구성 물자 보낸 UN…하얀 헬멧 "매몰된 아이에 기저귀 무슨 소용"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던 시리아 북부 반군 통제 지역엔 9일 드디어 구호 물자를 실은 유엔(UN) 트럭 6대가 들어갔지만 구호품 내용을 본 하얀 헬멧 대원들 눈엔 눈물이 고였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지진 전 구성한 물품을 실은 해당 트럭들엔 이 지역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식량과 구조 장비 등이 충분히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엔과 세계 지도자들에게 구조대와 잔해를 들어 올릴 중장비를 요청해 왔던 하얀 헬멧 대원인 모하메드 알시블리는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는 이곳 주민들에게 현재 도착한 구호품은 쓸모가 없다며 "매몰된 아이가 기저귀로 뭘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지진 전 거의 매일 배송됐던 구호 물자로 버티던 이 지역엔 이곳으로 향하는 유일한 유엔 승인 국제 지원 통로인 바브 알하와 국경으로 통하는 도로가 지진으로 파손됐다는 이유로 6일부터 어떤 지원도 도착하지 않았다. 바브 알하와 국경통제소 쪽은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사망한 시리아인의 주검은 이 길을 통해 차량으로 6일부터 계속 시리아로 이송되고 있었다면서 도로 파손을 이유로 한 지원 중단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유엔 쪽이 시리아 북서부로 들어간 첫 물자는 도로 사용 가능 여부를 가늠할 "시험용"이었다며 이 지역에 최대한 빨리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시민방위대(SCD), 일명 '하얀 헬멧' 대원들이 8일(현지시각) 건물 잔해에서 여자 아이를 구조한 뒤 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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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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