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 시위'격화 페루, 집회·이동 제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전 대통령 축출 뒤 시위 이어져 최소 7명 사망…인접국 정부들 전 대통령 지지 성명 내며 긴장 더해

쿠데타 혐의로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격렬한 시위에 직면한 페루 정부가 결국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4일(현지시각) 페루 국영 <안디나> 통신은 루이스 알베르토 오타롤라 페루 국방부 장관이 국무회의 결과 전국에 30일 간 비상사태를 발령하기로 결정했음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오타롤라 장관은 시위대의 "기물파손과 폭력, 고속도로 및 도로 봉쇄" 탓에 이 같은 조치가 결정됐으며 "경찰이 군의 지원을 받아 내부 질서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타롤라 장관은 이번 조치로 집회 및 이동의 자유가 통제되고 통금이 설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페루의 정치학자 호세 고도이가 이번 조치는 "시민과의 대화보다 무력 조치가 우선임을 확인한 것"이라며 "현 정부의 신뢰가 손상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페루에서는 지난 7일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뒤 지지자들에 의한 격렬한 시위가 일주일째 계속되며 경찰과의 충돌로 10대 청소년을 포함해 최소 7명이 숨졌다. 지난해 7월 취임 뒤 정치적 무능과 부패 의혹으로 지속적으로 비판 받아 온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탄핵안 처리를 피하기 위해 의회 해산을 시도해 반란 및 음모 혐의로 탄핵된 뒤 구금됐다. 탄핵 뒤 카스티요 정부에서 부통령직을 수행한 디나 볼루아르테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제기된 부패 의혹을 "정치적 박해"라며 부인해 왔으며 영국 BBC 방송은 빈농 집안의 교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적고 인맥이 부족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통치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설명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 구금 해제·볼루아르테 대통령 사임·즉각적 조기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지난주부터 경찰서를 불태우고 활주로와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통신은 시위가 불평등 해소를 내세우고 당선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많은 지방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하며 사망자 7명 중 5명이 중남부 안다우아일라스에서 발생했다고 짚었다. 통신은 그러나 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관련해 어떤 정책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 원주민 단체, 농민 조합도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12일 국제앰네스티는 안다우아일라스에서 최소 2명의 10대가 사망했다며 페루 당국이 시위대에 대한 과도한 무력 사용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대선을 다시금 앞당길 것을 시사하며 시위대를 진정시키려 시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앞서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2026년으로 예정된 대선을 2024년 4월에 치르겠다고 한 데 이어 이날 추가로 4달을 더 앞당긴 내년 12월 대선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그러면서 "폭력이 존재한다면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했다.

다만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구금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제안이 시위대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4일 페루 검찰은 사법부는 반란과 음모 혐의를 받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에 대한 18개월의 구금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페루 사법부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에 대한 청문회를 17일 이전에 열겠다고 했다. 혐의를 부인 중인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12일 자필로 쓴 편지를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자신이 "페루의 헌법상 대통령"이라고 못박았다.

중남미 주변국들이 현 정부에 대한 언급 없이 카스티요를 "대통령"으로 지칭하며 발표한 공동성명은 이 지역에 정치적 긴장을 더하고 있다. 콜롬비아·볼리비아·아르헨티나·멕시코 정부는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비민주적 괴롭힘의 희생자"라며 투표로 그를 선출한 "시민의 의지"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카스티요 전 정부는 2018년부터 중남미에 차례로 들어선 좌파 정부 중 하나로 이중 많은 지도자들이 단합해 불평등 심화에 맞서고 정치 엘리트로부터 통제권을 빼앗아 오려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미주 담당 국장인 후아니타 고에베르투스가 이 성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걱정스럽다"며 "서로 다른 이념적 비전이 존재하더라도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기본적 약속은 공유해야 한다. 카스티요는 쿠데타를 시도했고 의회를 해산하려 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페루는 2016년 취임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2018년 수뢰 혐의로 물러난 이후 극심한 정국 혼란을 겪고 있다. 이후 대통령들도 부패 혐의 등으로 줄줄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며 2016~2022년까지 6년간 6명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14일(현지시각)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전 대통령의 구금 해제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이 수도 리마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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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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