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가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가 있다?

[창비주간논평] "투기수요 자극하는 개발 아닌, 미래를 위한 대안적 개발 필요"

새 정부 들어 시민들의 상식과 다르게 단어들이 쓰이며 오염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 11월 11일 기획재정부의 발표도 그중 하나다. 정부의 '공공자산' 매각 방침. 공공자산이란 '공공이 보유한 국민의 재산'일 텐데 그것을 매각한다는 방침은 정부가 공공자산을 '공공이 보유한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 의아하게 들린다. 거기에 "공공기관 혁신 본격화한다"라며 혁신을 위해 공공자산을 팔겠다고 하니 더욱 혼란스럽다.

기재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까지 공공기관이 가진 14조 5000억 원 규모의 국유자산을 민간에 팔 계획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추가 발굴하여 지속"할 예정으로 현 정부에서 자산매각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활용하지 않는 '유휴' 토지 등 부동산을 민간에 파는 것이 더 '혁신'적인 '효율화'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유휴'라는 단어도 '쓰지 아니하고 놀림'이라는 의미이지만, 정부가 우선 매각 대상으로 결정한 부동산을 보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소위 '알짜배기' 부동산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매각된 석유공사 사옥이 퇴직한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들이 만든 '모피아' 기업에 팔려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것만 봐도 공공자산의 매각 방침이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님은 명확해 보인다.

특히 국유재산의 매각 방식이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다보니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서도 "2007~2018년 국유지는 민간 거래 가격보다 단위 면적당 약 18~23% 낮은 가격에 매각"됐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왜 하필 지금, 부동산 하락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 부동산 비중이 높은 공공자산을 매각하려는 것일까? 정부가 말하는 공공기관 혁신을 위한 자산매각이 공공성을 포기하는 민영화의 시작은 아닐까? 이같은 자산의 무분별한 특혜 매각을 통해 공공기관 민영화와 함께 민간 투기세력, 재벌기업, 정부‧관료들의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려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용산정비창 개발 공공성 강화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1월 24일 오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용산정비창 민간 매각계획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매각을 서두르는 대표적인 토지가 6조 3000억 원대로 자체 평가된 한국철도공사 소유의 용산역세권 정비창(이하 용산정비창) 부지로, 전체 공공자산 매각 규모의 43%나 차지하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는 10년 넘게 비어 있으니 '쓰지 아니하고 놀리는' 유휴 토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인식에 기인한 말이거나 실상을 감추는 데 단어가 오용된 또 다른 예다. 이 땅이 왜 '유휴'화되었는지, 그럼 이 땅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용산정비창 부지는 약 50만 제곱미터, 여의도 공원의 두 배가 넘는 면적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대규모 공공의 땅이다.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해당 부지를 '용산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땅은 부동산 투기개발의 복마전이 되었다. 대장동 도시개발과 같은 공모형 PF 방식을 적용해 민간사업자를 모집했고, 27개의 금융·건설기업들이 재무, 전략, 건설 부문 투자자로 나섰다. 사업비 31조의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 호들갑을 떨던 광란의 개발 폭주는 용산 일대의 투기를 촉발해, 2009년 1월 여섯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를 불렀다. 결국 2013년 최종 부도사태로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기'라는 오명과 함께 각종 소송전을 거치며 빈 땅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땅이 다시 그 쓸모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정부의 매각계획 발표에 앞선 지난 7월, 오세훈 시장은 또다시 직접 '용산정비창 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상'을 발표했다.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몰려드는 아시아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과 함께 공공개발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공공이 토지 기반시설을 조성한 후 민간에 팔아 민간개발로 분양형 업무지구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공공이 인프라를 미리 조성해줘 민간의 개발부담을 줄여주면서도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계획이 없어, 특혜 매각과 투기적 개발의 우려가 크다. 정부와 서울시 각각의 계획은 매각 시점을 두고 충돌할 뿐, 양쪽 다 가뜩이나 부족한 서울 도심의 공공토지를 기업의 소유로 고스란히 넘기겠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반면 이 땅의 다른 쓸모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작년 10월 초 세계 주거의 날, 용산정비창 부지를 잠시 점거한 이들은 '미래를 위한 점거'를 선언했다. 이 공간을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모두의 것으로 남겨두자는 선언이다. 화려한 조감도로 투기적 수요를 자극하는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아닌, 공공임대주택과 공공시설 등 미래를 위한 대안적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미래를 위한 점거 이후 구성된 모임을 통해 정비창 부지를 둘러본 청년주거단체 활동가는 "그동안 정부와 서울시에 속았다"고 탄식했다. 지(하)·옥(탑)·고(시원)로 대표되는 청년주거문제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가 내놓은 해답은 역세권 청년주택사업이었다. 하지만 주변 시세 대비 85~95%의 임대료라 해도 역세권의 신축건물을 기준으로 책정된 금액이다보니 청년들에겐 턱없이 비쌌다. 시세 대비 30%로 저렴한 공공임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이처럼 비싼 공공지원 민간임대 유형이다. 그동안 청년주택을 공공임대로 공급할 것을 요구할 때마다 정부와 서울시는 "도심에 공공의 땅이 없어 민간을 지원해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면적의 공공토지가 10년 넘게 방치된 것을 목격하니 '속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또 다른 이들도 있다. 쓰지 않고 놀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 땅의 쓸모를 계속해서 만들어왔던 사람들이다. 용산정비창 부지의 끄트머리 풀숲에는 20여 명의 홈리스들이 텐트촌을 형성해 마치 섬처럼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살고 있다. 이 땅이 갈등에 얽히거나 내팽개쳐져 있을 때도, 이들은 이곳을 아기자기하게 만들며 삶의 공간으로 20년 가까이 쓸모를 부여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 공공의 땅은 국가권력이 마음대로 팔아도 되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국민의 재산이고, 이 땅의 쓸모를 만들어온 이들의 것이며, 미래의 모두를 위한 쓸모를 요구하는 이들의 땅이다. 공공자산 매각의 핵심인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을 막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대한 불로소득 잔치를 벌이는 지금까지의 개발 방식을 이 땅에서부터 끝내야 한다. 소유로 귀결되는 부동산이 아니라, 주거권이 보장된 공간으로 땅의 쓸모를 바꾸어야 한다. 호화로운 분양아파트와 국제업무지구의 높은 마천루 빌딩 숲이 아닌,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집, 오늘의 삶에서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의 집, 장애가 있어도 가난해도 차별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집. 서울시민들이 서로 어울릴 공공의 공간을,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실현을 통해 만들자. 누구의 것도 아닐 때 모두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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