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빨페미, 메갈교사" … 성희롱 고발 교사에겐 '2차 가해'가 쏟아졌다  

'교원평가 성희롱' 온라인 2차 가해 사례 분석 … 여성·교사 둘러싼 '혐오의 늪' 보였다  

지난 2일, 세종시 ㄷ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으로 교육계가 들썩였다. 교원단체들은 교원평가의 익명 서술형 답안이 "합법적 악플"의 창구로 작동해왔다며 평가제 폐지 논의에 불을 붙였다. 언론도 이를 집중 조명했다.

평가제 존폐 너머에도 중요한 문제가 있다. 성희롱이라는 젠더 기반 폭력의 '맥락'이다. 교원평가는 피해를 유발하는 하나의 창구에 불과다. 지난해 기준 전국 여성 교직원의 60% 이상이 성폭력을 경험했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 교사들은 왜 성폭력에 취약할까?'

사건 공론화 이후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온라인 2차 가해는 그 맥락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여성 교사에 대한 2차 가해의 양상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흔히 겪는 전형적인 가해에 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빌미로 한 가해가 더해져 있었다.

<프레시안>은 "교사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2차 가해들을 수집해 분석했다. 제보 받은 61건의 사례와 포털 댓글 1201건을 수집해 유형별로 분류했다. 현재진행중인 피해자들의 고통과 더불어, '여성'이자 '교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혐오 양상을 추적했다.

ⓒ그래픽=프레시안(정은영)

"사상교육 시도하려던 XX 전교조X"

성희롱 피해를 고발했더니 되레 욕설이 쏟아졌다. 지난 2일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한 세종시 소재 ㄷ 고등학교 피해 교사들의 이야기다.

피해자들은 지난 1일부터 교원평가 결과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남긴 성희롱 발언을 인지했다. 즉시 학교 및 상급기관에 사건 처리를 요청했으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피해자 A 씨를 주축으로 온라인 공론화를 결심했다. (관련기사 ☞ '병가 쓰려면 대타 구해라' …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교사들 2차 피해)

4일, 사건을 인지한 교원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의 공론화 행동과는 별개의 행동이었다. 공론화 내용과 교원단체 성명을 바탕으로 '교원평가 존폐'를 주제로 한 언론보도도 이어졌다. 그리고 "예상은 했으나 예상을 넘어선 2차 가해 댓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희롱에 동조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들과 함께 "피해 교사들이 특정 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세뇌교육을 한 것이 교사 성희롱의 원인"이라는 추측과 비난이 들끓었다. "누가 교사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느냐"는 식의 조롱을 접하면서는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을까' 회의감마저 들었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피해자 계정으로 제보된 온라인 2차 가해 사례들을 살펴봤다. 네티즌 제보로 수집된 해당 사례들엔 네이버, 네이트 등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과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 '에펨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들이 별도의 기준 없이 무작위로 포함됐다.

총 61건의 제보 사례를 유형 별로 분류해 보니, 가해자의 성희롱 발언을 활용한 2차 성희롱(16건), '피해자가 사상교육을 했을 것'이란 추정과 비난(16건), 피해자의 공론화 행위 비난(15건) 등이 주를 이뤘다. 페미니즘·페미니스트를 비난(2건)하거나 여성 교사 채용에 반대(2건)하는 등의 소위 '백레시' 공격도 있었다.

교사이자 여성인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엔 특수한 패턴이 존재했다. '피해자 책임론', '피해 축소와 가해 두둔', '2차 성희롱' 등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흔히 접하는 2차 가해의 양상에 더해, 피해자가 교사라는 점을 빌미로 한 새로운 피해자 비난 유형이 겹쳐졌다.

피해 공론화 행위는 '교사로서 부적절한 행위'라는 지적이나, 가해행위가 피해자 혹은 교육계의 정치적 성향이 '학생들의 반발을 산 결과'라는 주장이 반복해서 포착됐다. 교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이 2차 가해의 또 다른 명분으로 작용한 셈이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피해자 계정으로 제보된 61건의 온라인 2차 가해 사례들을 7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네티즌 제보로 수집된 해당 사례들엔 네이버, 네이트 등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과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 '에프엠 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들이 별도의 기준 없이 무작위로 포함됐다.  ⓒ그래픽=프레시안(정은영)

여성·교사에 대한 이중혐오 양상을 선명히 하기 위해 사례를 확장했다. 사건이 최초 보도된 12월 4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발행된 7개 기사의 댓글 1391건을 수집했다. 욕설 및 성적 발언으로 삭제된 190개 댓글을 제외한 1201건 중, 피해자 비난 등 2차 가해 양상을 보인 댓글은 총 337건(28%)에 이르렀다.

하나의 댓글에서 복수의 키워드가 표현되는 점을 고려해, '좌빨·전교조·페미·메갈' 등 작성자가 비난의 의미를 담은 단어를 기준으로 2차 가해성 표현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재집계했다. 총 444건의 표현이 수집됐다. 이를 피해자 비난 및 성희롱(A, 61건), 피해자 책임론(B, 246건), 정치성향 추정 및 비난(C, 57건), 여성혐오 및 백레시(D, 21건), 교사 비하(E, 31건), 사건과 관계없는 특정 가치 비난(F, 28건) 등 6개 유형으로 대분류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B집군과 C집군이다. A집군이 성희롱 피해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고 E집군이 교사라는 집단 전체를 비하하는 경우라면, B와 C집군의 경우 그 둘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경우다. "전교조가 좌빨·페미 교육을 한 게 성희롱의 원인"이라는 말 속엔 노동조합 및 특정 정치성향에 대한 혐오정서와 함께 '교육자는 특정 정치성향을 가져선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8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피해 교사 A 씨는 "피해자 6명은 누구도 특정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서도 "설령 노조 소속 교원이거나 특정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성희롱 당해도 싸다'는 등의 비난을 당해선 안 되지 않나" 되물었다.

이어 A 씨는 "성희롱 발언 중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라는 발언이 있었는데, 이를 빌미로 '해당 교원이 진보·페미니즘 성향의 사상교육을 했을 것'이란 2차 가해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다"며 "사상교육이란 말부터도 이상하지만, 평소교육 활동에 있어 (피해자들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1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6개 집군으로 분류한 2차 가해 댓글 분류표. 집군 간 중복을 막기 위해 ‘해당 키워드가 표현됐는가’를 기준으로 집군을 분류했다. 가령 ‘피해자 정치성향을 추정 및 비난’하더라도 “피해자의 자승자박이다” 등의 ‘피해자 책임론’을 명시한 경우 C집군이 아닌 B집군으로 분류했다. ⓒ그래픽=프레시안(정은영)

'사상교육'이란 키워드는 전교조 등 진보적 성향의 교원 노동조합을 비난하기 위해 주로 보수진영이 동원해온 해묵은 개념이다. 다만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여기엔 페미니즘 백레시라는 개념이 추가됐다.

지난해 9월 전교조가 전국 유·특·초·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11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교내에서 '메갈, 페미냐고 조롱하듯 묻는 행위',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비난 및 공격' 등 백래시 피해 경험이 하나라도 있다고 답한 여교사의 비율은 37.5%에 달했다. 백래시 피해 경험이 있는 여교사의 69.4%는 백래시 행위자가 학생이라고 응답했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교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해선 체계적인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성평등 등 특정 가치에 대한 언급 자체가 일부 학생들에겐 '공격의 빌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현상을 지적했다.

특히 "성폭력이나 백레시 공격의 대상자가 연차가 적은 20~30대 여성 교사들에게 몰려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그는 강조했다. 같은 조사에서 20~30대 여성 교사의 66%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 또한 전원 20~30대 저연차 여성 교사들이었다.

손 부위원장은 "연령대가 낮은 교사들은 학교 내에서 교권침해나 백래시 피해를 당해도 쉽사리 문제제기 못하고 피해가 덮어지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교사, 여성, 저연차 등의 취약성이 겹쳐질 때 온라인 댓글에서 보이는 교사 대상 성희롱 '2차 가해'의 양상이 교내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백래시 공격을 경험한 20~30대 여성 교사 중 61.4%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부분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였다.

▲2일 공개된 세종시 ㄷ고등학교의 '교원평가 성희롱' 가해 발언 중 일부.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의 이름을 특정해 "XX 크더라. 짜면 모유 나오는 부분이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남겼다. 전교조 조사 결과 전국 유·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사 6507명 중 30.8%가 '성희롱, 욕설, 외모비하 등 피해를 직접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트위터 계정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공론화'

중요한 것은 교육부 차원의 적극 대응이다. 손 부위원장은 "디지털 기반의 성희롱은 물론, 지난해 안산 선수에 대한 백레시 공격과 같은 젠더 기반의 조롱·비하·혐오들이 디지털 환경에 민감한 10~20대를 주축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교육부 차원에서 각 현장에 성평등 담당 부서를 설치하는 등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교원평가' 시스템의 개선이나 폐지를 넘어 성희롱·성폭력 및 2차 가해에 취약한 교육현장의 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개별 학교가 성폭력 사건이나 2차 가해 환경에 원활히 대응하기 위해선 "상급기관 차원의 총괄부서 및 매뉴얼 정비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부의 적극 개입'에 대해 피해자 A 씨는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교육부에선 (피해자에 대한) 어떤 접촉이나 언급도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지난 5일 "이번 사건을 통해 특수기호를 추가하는 등 금칙어를 변형하여 우회 저장하는 경우 필터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향후 서술형 문항 필터링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후 별다른 입장을 내보이고 있지 않는 상태다.

전교조 측은 교원평가 서술형 응답 성희롱 사례를 비롯한 '교내 디지털성폭력 전수조사' 등을 주장하고 있다. 8일 전교조가 공개한 '교원평가 자유서술식 문항 피해사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사 6507명 중 30.8%가 '성희롱, 욕설, 외모비하 등 피해를 직접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교원 대상 성희롱 등에 대한 당국 차원의 전수조사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최근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병가를 신청한 A 씨는 여전히 쉬지 못한다.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은 물론 댓글 2차 가해 수사의뢰를 위해 "하루 대부분을 경찰서 등을 오가는 데 사용하고 있다." 당국의 부재 속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쏟아 "각자도생의 생존"을 벌이는 꼴이다.

A 씨는 "벌어진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교육부가 이번 사건을 통해 '결점을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마치 실험쥐가 된 느낌까지 받았다"며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넘어간다면 범죄 방조나 은닉과 뭐가 다른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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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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